“사장님 저 이번 달까지만 일하겠습니다.”

 

 

속으로 수십 번 연습했던 문장을 입 밖으로 꺼냈다. 끝나고 잠깐 이야기하자는 사장님의 대꾸에 ‘네-’라고 대답했다. 말을 꺼냈다는 기쁨이 앞서서 사장님이 무슨 얘기를 꺼낼지는 뒷전이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알바를 했고, 그만두겠다는 말도 그만큼 했다. 그런데도 그만두겠다는 이 말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마 그만두는 이유를 물어보는 게 무서워서 그렇겠지.

 

 

이번 편지는 제가 알바로 일했던 점장님, 사장님께 쓴다. 그동안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내면서 말씀드린 이유는 ‘취업준비’가 고작었다. 하지만 취업준비라는 이유는 핑계였다. 나는 그냥 당신들이 지배하는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좋은 기회를 빌려서 그동안 당신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야 말한다.

 

 

1. T 커피 전문점 사장님께

 

 

사장님 안녕하세요. 지금이 2017년이니까 근 4년 만에 인사드리네요. 전역하고 군기가 덜 빠져 바짝 긴장한 저를 보고 체대생이냐고 물으셨죠. 전역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말하니 “일 잘하겠네~” 하고 웃으셨던 사장님의 얼굴이 기억나네요. 카페에서 일하게 됐다는 기쁨에 사장님 뒤에서 군기 바짝 든 여성 알바 노동자는 그냥 스쳐 봤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미래의 저의 모습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신의 카페는 유사 군대였습니다. 남들은 전역하면 군대 가는 꿈을 꾼다던데, 저는 전역하고 또 군대에 간 셈이네요. 덕분에 군대 꿈은 안 꾸고 카페 꿈을 꿨으니 고맙다고 말씀드려야 하나요? 한 번 말한 건 모두 ‘숙지’해야 하거나, 인사를 크고 밝게 하거나, 기대고 서 있지 않는 건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그건 다른 알바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제가 힘들었던 건 인격적인 ‘갈굼’이었습니다. 실수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갈굼이 이어졌습니다.

 

 

“내가 그렇게 가르쳤냐?”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했어?”

“xx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바빠서 헷갈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바쁘면 틀려도 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이런 식이었죠. 그렇게 갈군 뒤 “다 장난이었던 거 알지? 다음에 잘하자~”라는 말이 저를 더 무너뜨렸습니다. “아, 나는 그냥 그렇게 장난쳐도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1년 먼저 일했던 이름 모르는 알바 선임아. 나한테 과제 해달라고 ‘부탁’했던 게 생각난다. 나 일 그만둔 뒤로 과제는 네가 알아서 잘 했니?

 

 

한국은 일종의 병영사회다. 군대 문화가 모든 곳에서 통용되고 있다. ‘까라면 까’가 사장님이 품고 있던 좌우명이었다고 확신한다. 그 와중에 군대 문화가 낯설어서 ‘까지 못하는’ 여성 알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여성’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2. A 패밀리 레스토랑 점장님께

 

 

안녕하세요. 점장님! 얼마 전에 일 하고 계신 직장이 뉴스에 거하게 보도됐는데, 매출은 안녕하신지 모르겠네요. 매출 떨어졌다고 또 알바 꺾기(계약한 시간보다 일찍 퇴근 시키는 행위) 하시는 건 아니죠? 아니면 ‘트레이너(계약직 노동자로 알바 노동자보다 한 계급 위)’ 10시간 씩 굴려 가면서 알바 채용을 미루고 계신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

 

 

어찌 됐든 점장님. 점장님이 주신 건 아니겠지만, 그동안 떼 가신 급여는 잘 받았습니다. 89,000원. 조금 비더라고요. 아, 서론이 너무 길어졌네요. 본론을 말하겠습니다. 제가 그만둔 이유는 공무원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그때도 지금도 저는 공무원에 관심 없습니다. 그만 둔 이유는 4,800원(2014년 최저임금 5,210원)을 받고 계속 일할 수가 없어서였어요. 한 달 내내 일했는데 50만 원 남짓 받았을 때 그 기분을 아시나요?

 

 

 A 패밀리 레스토랑이 속한 그룹의 외식사업부가 나에게 줄 돈. 고기 사먹을 거다.

 

 

6개월만 일하겠다고 말한 저에게 사장님은 계약은 1년으로 하되 6개월만 일하라고 제안하셨죠. 회사 방침이 1년 계약이 원칙이라 어쩔 수 없다고요. 1년 계약을 하면 수습 3개월을 해야 하는데, 일 잘하면 3개월보다 빨리 ‘정직원(수습 뗀 알바)’이 될 수 있다고 하셨죠. 당장 일해야 하는 저는 ‘네-’라는 대답 말고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점장님, 5개월 내내 수습은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제가 일을 못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핫 파트(Hot Part ; 불을 사용해 조리하는 코너)와 쿨 파트(Cool Part ; 과일 및 케익을 진열하는 코너)를 둘 다 볼 수 있는 알바 노동자는 제가 유일했으니까요. 점장님도 일 잘한다고 저 좋아하셨으니 괜한 핑계는 안 대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참 점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 수습은 주휴수당 못 받나요?

 

알바천국이 공개한 2016년 설문조사에서 주휴수당을 받는 청년은 38%였다. 고용주의 75%, 알바생의 83%가 주휴수당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보아, 고용주는 알고서도 안주고 알바 노동자는 알고서도 못 받는 현실이다. 5인 사업장은 퇴직금을 안 줘도 된다는 거짓말로 노동자를 속이는 경우도 있다. 덧붙여서, 수습 알바 노동자도 주휴 수당 대상이다.

 

 

3. P 쌀국수집 사장님께

 

 

안녕하세요. 이제 매장이 슬슬 더워지고 있겠네요. 사장님은 사무실에 계셔서 잘 모르겠지만, 매장은 주방 열기로 3월만 돼도 부글부글 끓는답니다. 부디 올해는 손님이 없을 때도 알바를 위해서 에어컨을 틀어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더워서 일을 그만둔 건 아닙니다. 저는 일하기 딱 좋은 가을에 그만뒀잖아요.

 

 

당시 페이스북에 더위를 호소하는 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사장님 그거 다 성희롱이고 성추행이에요. 지나갈 때 제 엉덩이 만지는 거, 얘기하다가 제 성기 툭 치는 거 다 성추행입니다. 여성 알바한테는 안 하는 거 보니 그게 잘못된 행동인건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근데 그거 남자한테 해도 성추행입니다.

 

 

그리고, 그때 기억나세요? 제가 더우니까 남자 알바도 반바지 허락해 달라고 했잖아요. 물론 사장님은 남자가 반바지 입으면 보기 흉하다고 안 된다고 하셨죠. 그러면서 여성 알바를 보면서 얘가 입으면 보기 좋고 예쁘잖아 하셨죠. 그것도 성희롱입니다.

 

 

고등학생 쓰기 싫으면 애초에 고용하지 마세요. 고등학생 고용하고 ‘X고딩’이라고 부르면서 욕하지 마시고요. 알바 노동자는 사장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사장님 동생도 아니고, 아들딸도 아닙니다.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2014년 청년 유니온 아르바이트 청년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의하면, 69.2%의 노동자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에 더 자주 노출된다고 느꼈다. 일하면서 감정과 기분에 상관없이 웃거나 즐거운 표정을 짓는 노동자가 85.4%라고 하니, 많은 사장님이 자신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장의 행동을 지적하는 날은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사실은 나이가 어린 노동자도, 나이가 많은 노동자도 알고 있다.

 

 

부디, 사장님, 점장님들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이상 편지를 줄입니다.

 

 

p.s. 제가 언급 안 한 사장님이 있습니다. 일을 그만둔다고 하니까, 자기가 월급을 더 준 것 같다고 뱉으라고 하셨죠. 사장님. 당신 앞에서는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연신 조아렸는데, 뒤로는 청년 유니온에 상담 받고 있었습니다. 사장님께 드리는 편지는 아래 캡쳐로 갈음합니다.

 

청년유니온 상담 내용을 공유한 내 페이스북 캡쳐

 

 

그만두겠다는 말과 함께 매장을 나왔고, 나는 또 책임감 없는 놈이 됐다. 왜 항상 책임은 나의 몫일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용노동청에 전화를 걸어서 그들이 나에게 다하지 않은 책임에 대해 두 건의 진정을 넣었다. 하나는 임금체불, 하나는 주휴수당 체불. 임금체불은 잘 마무리되었고, 주휴수당은 진행 중이다. 기회가 된다면 고용노동청과 함께한 ‘진정 대모험’의 짜릿한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겠다.

 

 

글. 참새(gooook@naver.com)

대표이미지. YOUTUBE 캡처(https://youtu.be/m-KTUvkMEIw)

*이 글은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와 공동 발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