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나는 수원 시민이다. 올해 6월부터 시행되는 서울시 청년수당(청년활동지원금)과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수원 사람이 이런 글을 쓰는 건 청년수당의 우수함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함이 아니다. 청년수당을 만들고, 정지된 청년수당을 다시 집행하기까지의 과정이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서다. 예산이 얼마고, 몇 명에게 줄 예정인지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얘기했으니 다른 얘기를 해보고 싶다(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에 방문하면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청년수당은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청정넷)에서 만들고 서울시에 제안한 정책이다. 요즘 말로 거버넌스, 협치의 전형적인 예다. 2015년, 청년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청정넷에 모였다(청정넷은 청년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청정넷에 참여한 청년은 취업 성공 패키지 같은 정책으로는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새로운 정책을 상상했고, 서울시는 받아들였다. 기존 정책의 ‘구린’ 점이 너무 많기에 가장 ‘구린’ 점 하나만 꼽아보겠다. 정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나의 불쌍함을 증명해야 했다. 자존감은 계속 깎이고,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시혜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수당은 돈을 ‘공짜’로 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민으로서 누려야할 권리를 사야한다는 말인 걸까? ⓒpixabay

 

 

 

2016년 청년수당 참가자가 “처음으로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2016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백서)”라고 말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그깟 기분이 뭐라고, 성과가 더 중요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안정감이 몹시 중요하다. 사회로부터 시혜받는 ‘불쌍한 나’와 사회로부터 보호받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나’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무엇보다 청년에서 성인으로 이행하는 이행경로가 다양함을 넘어서 거의 해체된 현시점에서 취업을 강요하는 건 능사가 아니다. 강제로 취업을 강요하다 보면 오히려 ‘묻지마 취업’(또는 하향취업)의 늪에 빠지게 된다. 첫 직장을 어디서 시작했는지 중요한 한국에서 성급하게 취업 성과를 요구하는 정책은 청년을 늪으로 밀어 넣는다. 반면, 청년수당은 취업 성과를 요구하지 않고 청년이 경로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원하는 교육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금전적 여유를 지원한다.

 

 

 

청년수당을 되살리기 위해 청년뿐만 아니라 비청년도 나섰다 ⓒ투데이신문

 

 

청년수당이 복지부에 의해 직권취소 됐을 때 수많은 청년과 청년단체가 나서서 반대한 이유는 청년수당과 같은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정책이 있다면 나서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 겨울부터 이어졌던 대법원 앞에서의 1인 시위와 기자 회견은 청년수당이 청년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근거 없는 확신은 아니다. 서울시는 정책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2016년 청년수당 참여자 2,831명 중 10명을 선정해서 3개월간 50만 원을 지급했다. A와 B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에는 사용 용도에 취업 용도로만 제한을 두고, B그룹에는 사용 용도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열심히 취업 용도로만 돈을 사용한 A그룹이 돈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만족도가 높았을 것 같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애초에 ‘취업용’이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취업 학원에 가기 위한 교통비, 공부 하다가 배고파서 사용하는 식비는 취업용인가 아닌가?

 

 

청년수당이 탁월한 점은 이 지점이다. ‘취업비용’의 지평을 대폭 넓혔고, 청년의 삶 자체를 지원하기 시작한다. 식비, 교통비, 교육비부터 시작해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공간비용, 네트워크 비용까지 청년의 삶 전반을 지원한다. 청년의 삶이 곧 취업을 위한 삶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준 첫 정책이다.

 

 

 

청년수당은 취업 지원에서 더 나아가 청년의 삶을 지원한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그렇다고 청년수당이 돈 줄 테니까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물질만능주의적 자본주의 냄새 짙은 정책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청년수당에 참여하면 참여자 간에 교류할 기회가 생긴다. 청년활동지원센터는 지역을 권역별로 나누어서 청년수당에 참여하는 청년 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일단 모여야 뭐라도 같이 하고, 같이 해야 뭐라도 결과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이 정책에 깃든 적이 과연 있었던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수원 사람인 내가 서울시의 청년수당을 응원하는 이유는 청년수당 같은 정책이 다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청년의 문제는 누구보다 청년이 더 잘 안다는 당사자성에 기초한, 청년이 만든 정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대법원이 서울시의 손을 들어준 뒤로, 청년수당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지자체에서 청년수당을 기획하거나 실험하기 시작했고, 대선주자들은 모두 청년수당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의 전형이었지만, 어느새 보편적인 급식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청년수당도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청년 정책은 더 이상 취업 정책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청년의 삶 전반을 돌보는 사회안전망으로 자리 잡혀 있지 않을까.

 

 

 

글. 참새(gooook@naver.com)

대표이미지. ⓒ나, 다니엘 블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