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겨울, 성인에 들어서기 직전 그 어디는 참으로 어색했다.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으로 세상이 허락한 여유로움에 당황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자연스럽게 아르바이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꼭 해보고 싶었다. ©스타벅스 코리아

 

 

아르바이트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던 아르바이트생, 편의점에서 바코드를 찍는 아르바이트생. 스스로 노동을 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런 아르바이트생이 될 수 있었다.

 

 

가장 쉽다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몇 군데 알아보다 포기했다. 시급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내가 살던 지역은 당시 4,000원대 시급을 줬다. (당시 최저시급 6,030원) 편의점 시급 혼자 2014년을 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앱에 ‘시급 협의’라 적어둔 편의점에 전화를 걸면, “4,800원부터 시작해서 올려주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담합이라도 한 듯 근처 편의점의 대답은 전부 똑같았다. 손님이 적어서 시급을 다 쳐줄 수 없다는 거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편의점 알바를 더 알아보는 것을 그만뒀다.

 

 

그럼 왜 편의점 근무를 하죠? ©스포츠 경향

 

 

얼마 지나지 않아 집 근처 식당에서 자리가 났다며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소고기 식당에서 첫 알바를 시작했다. 근로계약서가 필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2주가 지나도록 사장님은 근로계약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계약서도 없이 사장님과의 ‘인간적인’ 관계 하나만을 믿고 일해야 했다. 주휴수당도 당연히 없었다. 시급 6,500원을 쳐주던 사장님은 (당시 최저시급 6,030원)이 정도면 다른 곳보다 훨씬 많이 주는 것이라 했다. 그 시급을 웃돌 만큼 식당일은 힘들었지만 ‘다른 곳보다 시급이 세다.’는 말에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내 노동 강도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6,500’이라는 숫자는 가시적이었다. 돈을 많이 주는 아르바이트라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주휴수당도 사라졌다.

 

 

 왜 내가 먼저 요구하지 않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내 전임자는 주휴수당을 요구한 뒤 일을 그만뒀다. 사장님과 주방 이모님들은 내게어린 것이 돈 밝혔다.’고 전임자를 욕했다. 내가 주휴수당 혹은 근로계약서를 요구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했다. 나는 대학에 가기 전에 돈을 벌어야만 했다. 주급 정산을 했을 때 5,000원가량이 빠져있었지만, 그것 역시 말하지 못했다. ‘돈 밝히는 어린 것’ 소리를 듣는 것보단 돈을 조금 덜 벌고, 계속 버는 것이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이도 어린 “놈”은 돈 벌면 안되나요? ©시사인

 

 

 

지금 나는 모두가 ‘꿀 알바’라 부르는 교내 근무 아르바이트를 한다. 최저임금 이상 제때 지급, 정시 출퇴근, 갑질 없음이 갖춰진 아르바이트다. 근로계약표준법에 의하면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장하는 사업장을 찾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이마저도 주당 15시간 이상 주휴수당 없이 근무를 시키다 소송당한 이후로 15시간 미만 근무로 전환한 것이라고 한다. 즉, 지금의 나는 주휴수당을 ‘안’ 받는 것이다.

 

 

학교는 주휴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학생들의 근무를 한 시간 깎는 것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나를 비롯한 교내 근무 학생들은 14.5시간씩 근무하고 있다. 근무시간이 15시간 턱 끝에서 멈춰있는 기이한 현상이다. 학교에게 마저 꼼수를 당하고 나니 어쩐지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학교도 안 지키는데 누가 지키겠어요 ©알바천국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실체가 상대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그 가치에 대한 평가는 절하된다. 최저임금, 주휴수당, 근로계약서 등은 사람을 고용하면서 당연한 것이 아닌 부수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부수적인 것을 요구하는 젊은 노동자는 돈을 밝히거나, 사회생활을 잘 모르는 철없는 사람이 된다.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가치 역시 마찬가지다. 갑은 을의 노동과 돈을 1:1로 교환하지 않는다. ‘갑질’에 따른 을의 감정노동까지 얹어 자본과 교환한다. ‘내가 갑이니 이렇게 행동해도 돼.’ 라는 인식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용자들의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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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동 가치 절하 속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적은 젊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가장 큰 희생양이 됐다. ‘잘 모르는’, ‘대응 능력 없는’ 이미지의 젊은 알바 노동자들은 빈번하게 갑질과 임금 후려치기를 당해왔다. 실제 청년 노동자 중 근로기준법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아르바이트를 기대하고 일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청년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에서 세워 현실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그 기준은 법적 기준에서 한참 뒤떨어진다.

 

 

 

‘기본’ 이다 ©알바천국

 

 

 

내 친구는 지금 5,100원 받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 약속한 3개월이 지났다고 500원 인상을 요구했다가 ‘싸가지가 없다.’라는 폭언을 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17년 5월 1일, 노동절이다.

 

 

 

글. 망고(quddk97@gmail.com)

대표사진. ©알바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