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염 샌드위치 2개, 바나나, 낫토, 덮밥 도시락, 알감자, 매실 장아찌, 저칼로리 컵라면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 권혁수가 다이어트 중 아침 식사로 해치운 음식이다. 권혁수의 먹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다시 <나 혼자 산다>에 등장한 권혁수는 생일을 기념하며 아침 식사 한 끼로 딸기 케이크 한 판을 해치웠다. 뒤이어 닭가슴살을 꺼내먹으며 영양균형을 맞추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노라 말한다.

 

 

그 누구도 날 말릴 수 없쒀 ©나 혼자 산다

 

 

 

‘그만 좀 X먹어라.는 아버지의 구박이 무색하게 권혁수는 행복해 보인다. “불행은 체중 순이 아니다.”라며 밝게 웃는 권혁수는 현재 상황에 충실하며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있다.

 

 

 

 하지만 나는 권혁수 처럼 살 수 없었다. 

 

 

 

행복한 그의 모습에 웃다가도 이내 웃음을 멈추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여성인 나는, 권혁수처럼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맛있게 먹은 뒤 ‘칼로리 버닝’을 위해 집안일을 하고 인형 뽑기에 매진하는 권혁수가 재밌는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늘 구박받으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권혁수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우리에겐 그만 먹어야 한다며 손톱만 한 젤리를 내려놓는 친구가 더 익숙하다.

 

 

 

하루에도 열번씩 고민한다 ©편의점을 털어라

 

 

  

그녀의 체형이 어떤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여성이라면 먹고 싶은 음식을 참아야 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어쩌면 매 순간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와 여성의 몸

 

 

전통적인 가부장제는 여성과 육체를 동일시한다. 역사 속에서 여성이 권력 자체를 가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여성은 권력을 가진 남성에게 의존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확보해야만 했다. 여성은 시대가 요구하는 아름다운 육체를 통해서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 여성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정교하게 발달해온 미용기술이 바로 그 증거다.

 

 

이러한 양상은 신자유주의에 들어서면서 심화된다. 신자유주의의 근간인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시켜 최대의 이익을 얻는 데 집중한다. 과거에 상품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물질적, 비물질적 가치들이 시장경제로 편입되었다. 아름다움 역시 이를 피해갈 수 없다. 여성의 육체는 그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을 넘어서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대중매체는 끊임없이 ‘가늘고 날씬한 여성’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주입했다. 아름다움의 기준에 부합하는 여성들이 상품화되어 소비되기 시작했다. 외모가 곧 자본이 되는 시대다. 상대적으로 아름답지 않은 여성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회 기조는 여성으로서의 정체감을 만드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며, 대다수 여성이 외모 억압을 겪는 원인이 된다.

 

 

 

그럼 ‘예쁘지 않은’ 여자는요?  ©KBS 안녕하세요

 

 

 

‘살을 빼고 예뻐져야 한다(관련 기사 링크) 에서 이야기하듯, 이것은 좀 더 ‘예민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외모억압으로부터 비롯된 외모 코르셋은 개개인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여성에 대한 외모억압은 일상적이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1> 속 통통한 체형을 가진 연습생은 ‘팔뚝살’ 등으로 불리며 끊임없이 인신공격을 받았다. 그녀는 다이어트를 통해 날씬해진 모습으로 데뷔 무대에 오른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하고 있는 모 개그우먼은 자신의 체형에 대해 쏟아지는 엄청난 인신공격을 본인의 SNS에 공개했다.

 

 

 

미디어뿐은 아니다. 단체 카카오톡 방 성희롱 사건부터 일상 대화까지 쉴 새 없이 외모 평가가 진행된다. 매 신학기가 시작되면 ‘XX 과에서 A가 원탑이고, B가 제일 별로다.’ 따위의 말들이 돌아다닌다. 사회화 과정 속에서 여성들은 이 모든 것을 여과 없이 지켜보고 겪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자본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사고방식을 체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여성들이 10대부터 무리한 다이어트와 외모 가꾸기를 시도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냥 예쁘게 살면 안 돼?

 

 

 

이 모든 것이 개인적인 만족을 위함이라고 반문할 수 있다. 정말로 자기 자신을 가꾸기 위한 개인의 노력일 수도 있다. 문제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자기를 옥죄는 모든 여성이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비물질적 가치들이 자본화됨에 따라 경쟁의 영역으로 올라선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아름다움 역시 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아름다움을 위한 ‘자기관리’는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일종의 노력이 된다.

 

 

 

 

재능으로 성공한 그녀도 외모자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힐링캠프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은 곧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 앞에서 여성들의 화살은 갈 곳을 잃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향한다. 분명히 나 자신을 아끼기 위해 시작한 자기관리인데, 자기관리를 위한 노력조차 못 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가 발생한다. 다이어트를 그만 두거나 요요현상이 올 경우, 사회 전반의 경쟁구조에서 뒤처진 낙오자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 자기관리가 과도한 “자기억압”으로 번지는 과정이다. 외모 평가의 정점에 서 있는 아이돌 걸 그룹에게 거식증이 유독 자주 나타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걸 그룹 ‘오마이걸’의 멤버 진이는 얼마 전 거식증으로 인한 활동 중단을 선언 했다.

 

 

여성들도 권혁수 같이 행복할 수 있을까

 

 

 

여성도 자유롭게 먹으면서 사회의 혐오대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못생기고 뚱뚱하다고? 그건 네 문제야!(관련 기사 링크)’에는 외모지상주의 세상을 고발하고자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박강아름씨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달라지는 외모에 따라 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관찰하던 박강아름씨는 결국 중간에 촬영을 그만둔다. 그녀는 뚱뚱하고 못생긴 자신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고, 자신 역시 외모지상주의를 내재한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내 모습을 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지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역시 타인의 시선이 내재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꾸준히 질문해야만 한다. 몇 번 움직이지 않은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이, 작은 젤리 하나에 망설이는 것이 정말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자기관리라는 명분 하에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고 혐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한다. 그 생각의 끝에 있는 것이 여전히 사랑스러운 당신이라면 괜찮다. 억압에 고통스러워하는 당신이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질문해 봤으면 한다.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있다. 내가 그러했기 때문에 ©pixabay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이 기사가, 먹어도 행복한 권혁수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끝에는 어떤 모습으로든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만이 남기를 바란다.

 

 

 

글. 망고(quddk97@gmail.com)

특성이미지. ©MBC 나 혼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