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그거’ 했어.”

 

 

여느 때와 같은 저녁이었다. 엄마는 인터넷 게임을 하고 나는 그 옆에서 공부하는 척 수다를 떨고 있었다. 대화 중 불현듯 나와 남자친구는 섹스도 하는 사이라고 이야기해버렸다. 섹스란 표현은 ‘그것’으로 대체했다. 나의 기습공격에 당황한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마우스만 딸깍거렸다. 미리 준비한 고백은 아니었다. 그동안 쌓여왔던 답답함이 터진 결과였다.

 

 

엄마와 나는 평소 모든 걸 공유하는 단짝친구 관계다. 오늘은 누구와 무얼 했는지, 요즘엔 어떤 고민이 있는지 속속들이 이야기한다. 당연히 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과 그 사람과 어떻게 지내는지 엄마는 알고 있다. 나의 연애에 관해 수많은 대화가 오갈 때 섹스 이야기는 쏙 빠져있었다. 말할 타이밍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섹스에 가까워진다 싶으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애써 화제를 피하는 일은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어떤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부끄럼보다는 미안함 때문에

 

 

섹스를 포함한 성적 행위는 사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모 자식간이 아니더라도 대화할 때 흔히 오르내리는 주제는 아니다. 어쩌다 이야기를 꺼내려면 괜히 주위를 한번 둘러보게 되고 목소리도 낮추어 소곤소곤 말할 정도로 낯 뜨거운 것으로 인식된다. 우리 부모님은 성적인 행위를 드러내는 것에 굉장히 거부감을 갖고 있다. 드라마에서 가볍게 키스하는 장면만 나와도 혀를 차며 채널을 돌릴 정도이니 이야기를 꺼내기가 더욱 어려웠다.

 

 

그 동안 내가 나의 경험에 대해 말하지 못한 것은 부끄럼 이상의 미안함 때문이었다. 조금 더 깊은 교감을 나누기 위해, 아니 어쩌면 그저 순간의 쾌락을 위해 ‘처녀성’이라 불리는 것을 포기한 것이 마치 부모님에 대한 배신같이 느껴졌다. 자라면서 부모님 속 한번 썩인 적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난 나름 말 잘 듣는 ‘착하고 예쁜 딸’이었다. 중고등학교 땐 공부에 매진하느라 화장을 하거나 교복을 줄이는 것, 노는 것 따위엔 관심이 없었고(없는 척했었고), 대학에 와서도 노는 건 적당히 공부는 열심히 하는 딸의 연기를 꽤나 잘해냈다. 섹스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착하고 예쁜 딸’에 대한 환상이 깨질 것 같았다.

 

 

‘걸레’로 보일까 무서웠다

 

 

부모님 앞이 아니라도 당당하긴 어려웠다. 스무 살 첫 경험을 할 당시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단순히 처음이라서, 아픔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섹스를 하고 나면 그 전과는 다른 내가 될 것 같았다. 관계 후 돌이킬 수 없는 큰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욱신대고 따끔대는 그곳의 아픔보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더 생생했다.

 

 

 

두 번째 남자친구를 사귈 때도 나의 ‘이력’이 신경 쓰였다. 본인이 첫 상대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실망하면 어쩌나 걱정됐다. 관계하다가 들키느니 미리 말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창피하다는 듯이 그 사실을 밝혔다. 그 사람은 상관없다며 나를 다독였고 그것에 안심했다. 어린 나이에 경험이 있어도 문란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해해주는 남자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을 하면서 종종 보이는 ‘걸레’라는 단어는 볼 때마다 불편했다.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인 것도 이유였지만 사실 내가 그 ‘걸레’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겁을 먹었던 것 같다.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도 n명밖에 안 만나봤으니까 이 정도면 ‘아직’ 괜찮은 수준이라며 어느새 나 자신을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 평가가 잠재적으로는 내가 정한 기준을 벗어난 여성들을 ‘걸레’로 치부하는 것이란 사실을 모르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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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미안하고 싶지 않다

 

 

 

여성은 섹스를 한 번도 하지 않았을 때, 혹은 처녀막이라 불리는 성기의 일부 조직이 손상되지 않았을 때 사회로부터 ‘순결’이라는 가치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허상에 불과한 그 ‘고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회는 열렬히 여성의 순결을 지지한다. 가족 내에서부터 관리는 시작된다. 부모의 소유물과도 같은 딸은 항상 몸가짐을 조심하고 노출을 삼갈 것을 강요받는다. 이는 성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으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결국 남는 것은 ‘여성은 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순수한 모습을 해야 한다’는 엉터리 신념이다. 여성에게 있어 자신이 처음이기를 바라는 욕심, 그리고 처음이 아닐 때 더럽다고 조롱하고 경멸하는 시선 또한 여성을 성에 있어 소극적인 존재로 만든다.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책해야 하고, 정상 범주 안에 들어가기 위해 누군가를 더러운 존재로 만드는 모습의 일상이다.

 

 

엄마에게 치부를 공개한 날 밤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며칠간 어색해서 눈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얼마 후, 엄마는 자유롭게 관계를 가지되 피임을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다. 나의 자유를 인정해준 엄마에게 고마웠다. 없던 자유가 새로 생겨난 것 같았다.

 

 

마음이 완전히 홀가분하지는 않다. 가부장의 끝판왕 격인 아빠에게는 경험을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앞으로도 들키질 않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 스타일부터 화장, 옷차림 내 모든 것을 지적하는 아빠가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반쪽의 홀가분함과 반쪽의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며 생각한다. ‘처녀’가 아닌 것에 대해 더 이상 미안해지고 싶지 않다고.

 

 

글. 동그라미. (dkffjq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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