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나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대다수의 남성은 여성을 ‘동등한 주체’보다는 ‘소비 가능한 공공재’ 내지는 ‘자신들이 조종 가능한 아이템’으로 인식해왔다. 이러한 인식은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시스템으로 견고해졌고, 성차별이 재생산되는 악순환 구조는 끊임없이 지속하여왔다.

 

 

1년 전, “나는 잠재적 가해자입니다” 라는 손피켓 릴레이가 SNS를 통해 진행된 적이 있었다. 워딩의 엄밀성에 대한 지적과 별개로. 이 손피켓 릴레이를 처음 제안한 이의 의도는 남성들이 위와 같은 성차별 구조에서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살아가는 남성이, 일련의 폭력에 침묵하는 것은 그에 동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직접 밝힌 점이 그 이유다.

 

 

나 역시 이 의도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릴레이에 참가했다. 단순히 좁은 관계로 형성된 내 SNS에 올리는 것보다는, 현실 세계에서 이런 목소리를 내는 남성이 있다는 현상을 직접 보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다. 손피켓을 작성해 강남역에 섰다.

 

 

피켓팅을 하는 것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남성’ 이라는 하나의 ‘젠더 권력’을 부여받은 수혜자였기에, 기울어진 젠더 권력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물리적인 타격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시간에 나한테 시비조로 말을 거는 몇몇 남성들은 있었다. 귀갓길 2호선에서는 몇몇 남성들이 계속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괜히 예민하게 느낀다고 생각했다. 이날 이후 지인들의 제보를 통해 이 느낌이 단순히 ‘예민함’ 때문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강남역에 있던 일베 유저 중 누군가가 나의 사진을 올렸는데, ‘핑크 코끼리 폭행사건’의 관련 인물로 지목한 것이다. 그 날은 회사에서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대에 강남역에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사정과 상관없이 내 사진과 추측성 포스팅은 삽시간에 일베 베스트 게시물로 등록이 되었다. 이후 일베의 많은 유저들은 추측성 포스팅을 통해 모욕성 발언들을 쏟아내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 또한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것 말이다. 이것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상) 나에 대한 조리돌림의 시작으로 추정되는 일베 포스팅 중 일부, (하) 피켓팅 이후 5월23일에 올라온 한 일베 포스팅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당시 나에게 시비조로 말을 걸어온 남성들, 온라인상에서 나를 조롱한 남성들이 나를 두고 한 말은 ‘보빨남’ 이라는 단어였다. 일간베스트, 오늘의유머, 디시인사이드, 클리앙 등 성향과 관계없이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서, 성차별과 현재 기울어진 젠더 권력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남성을 지칭하는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 현재까지도 이 단어는 커뮤니티 전반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 당시 나를 ‘보빨남’ 이라고 했던 이들의 반응을 정리하면, 내가 한 피켓팅은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전략’으로 한 것이며, 나는 ‘자신의 능력으로 여성을 정복하지 않는 비겁한 존재’ 이자 ‘같은 남성으로 인정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아마도 그들은 나를 ‘비겁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잠재적 소유물을 강탈하려는 경쟁자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남성성을 제거하고, 자신들의 사회에서 추방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경쟁자를 제거해 나가려 했을 것이다. 댓글로만 보면 충분히 그렇게 인식된다.

 

 

상단 사진의 5월23일자 일베 포스팅에 달린 댓글 중 일부이다.

 

 

그들의 의도가 어느 정도 먹혔을까? 강남역 사건을 접한 기점 이후로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작게는 내가 일하거나 활동하는 집단에서, 넓게는 내가 오다가다 마주하는 모든 곳에서 보이는 차별적인 언행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현실을 봐야 했고,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나는 그 집단으로부터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심한 경우는 이런 주제로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배제당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다녔던 직장에서 강남역 사건에 대해 ‘여성혐오로 인해 생긴 범죄’ 라는 의견을 꺼냈다가 상사로부터 ‘여성 상위시대에서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적도 있었고, 성차별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던 동창 카톡방 에서 나는 표현의 문제를 지적했다는 이유만으로 ‘예민충’ 이 되었다. 지금은 그 카톡방을 나가버렸다. 그렇게 나는 ‘이상한’ ‘남성’으로 사회에서 살아 남아야 했다.

 

 

아주 잠깐은 그냥 예전처럼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때로 돌아가면 어떨까 생각도 했다. 성차별에 맞서던 남성이 어느 순간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고 다수의 젠더 권력으로 ‘전향’하여도, 별다른 피해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강남역 사건 이전에도 보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나 또한 지정 성별 남성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다수의 세계로 돌아갈’ 여지가 있었고 지금도 있다. 눈 딱 감고 다수의 젠더 권력의 입맛에 맞추면 되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고통의 증언들을 들었고, 그 고통을 외면하는 건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내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기울어진 젠더권력을 수평으로 맞추려는 문제의식, 그리고 그것이 ‘배제’ 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특히나 지정 성별 남성으로서 믿음을 견고히 하려면 ‘이 의식을 가진 남성들과의 연대’ 가 절실했다.

 

 

여전히 불안하다. 하지만…

 

 

강남역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내가 피켓팅을 했다가 처음으로 느낀 불안에 대해 고민한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나는 ‘불안’ 하다. 정권이 바뀌고 많은 이슈에 변화가 생기고 있지만, 젠더 이슈만큼은 여전히 ’남성에게 권력이 기울어진’ 상태이다. 언제 어디서 젠더 감수성 없는 사람들과 만나서 성차별 발언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것이 직접 관계된 거래처나 유관 단체에서라면 더더욱 불안해진다. 1년 전 강남역에서 느꼈던 불안은 ‘물리적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었지만, 그 기저에는 ‘주류 사회에서의 배제’ 로부터 오는 불안이 깔려있었다.

 

 

1년 전과 다르게, ‘젠더 권력’ 으로부터의 배제를 두려워하진 않는다. 내 불안감을 덜어줄 믿음, 그 믿음의 기초인 ‘남성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역 사건 이후로 많은 남성의 인식에 변화의 싹이 트기 시작했고, 세대를 막론하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남성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는 1년간 느꼈던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나의 불안’ 혹은 ‘나 같은 남성들의 불안’ 만을 제하여줄 뿐, 여성들이 가지는 불안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강남역’으로 상징되는 불안은 여전히 공기처럼 부유하고 있다.

 

 

글. 쌔미(sam8662i@gmail.com)

[강남역, 그 후] 기획. 인디피그, 참새, 타라, 쌔미, 도이니  

대표이미지 출처. 장성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