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잘 사귀고 있어?

 

 

작년에 남자친구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는 친구가 문득 생각났다. 친구 K는 그 사건 이후로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동갑인 남자친구가 있다. 강남역 사건 이후로 수많은 커플이 결별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K와 K의 남자친구는 지금도 사귀고 있다. K의 관심사는 페미니즘이기도 하고, 남친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가끔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에는 ‘노코멘트’라고 답을 하는 사람이고 페미니즘 이야기를 해도 말없이 듣고만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사귀고 있는 걸까?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 혐오’냐, 아니냐에 대해 싸우다가 결별한 커플들은 정말 많았다. K는 어떻게 만남을 이어가는 걸까. 나는 외면하냐고 물었다. 남자친구가 ‘여성 혐오’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냐는 뜻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K의 쓸쓸함만을 담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K는 그들 사이에 좋은 대화의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덕분에 남자친구의 이야기까지 인터뷰에 담을 수 있었다. 사실 많은 걱정이 되는 인터뷰였다. 혹시 이 인터뷰로 두 사람이 외면해 오던 것을 마주하게 되어 헤어지면 어쩌지? 그러면 우리는 그 일을 축하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가.

 

 

예상치 못한 수락

 

 

(남자친구 C의 신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상황을 빠르게 접하지 못하는 사람임을 미리 밝혀둔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터졌을 당시의 둘의 생각은 어땠는지가 궁금하다.

 

 

K “사실 그때 당시에는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여성 혐오나 성별에 관련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가해자의 조현병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동시에 여성 혐오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회에 필요한 논의를 일으키니 그런 점에서는 좋다고 생각했다.”

 

C “처음으로 사건의 소식을 접한 건 K가 전화했을 때다. ‘강남역에 살인사건이 있었다. 어떤 남자가 여자가 올 때까지 기다려서 살인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K의 학교는 강남역 근처니까 ‘너도 조심해’ 정도로 이야기했고, 그 이후로는 나와 관계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K “명백한 여성 혐오 사건이다. 발생한 범죄사건의 성격을 규정할 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을까’라는 이유로 규정하는데,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은 ‘여성을 혐오해서’가 정답이다. 그러니까 명백하게 이 사건은 ‘여성 살인(Femicide)로 규정된다.”

 

C “나는 한국의 상황을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사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주기가 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본인은 페미니스트인가?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K “처음에는 ‘여혐’이라는 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페미니스트가 아니거나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여혐’이라든지 페미니즘을 하자는 말들이 공격으로 느껴질 것 같았다. 예를 들어서 ‘여배우라는 단어는 여성 혐오인 거 아느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여자를 혐오하는 게 아니라 그런 단어가 원래 존재했고, 나에겐 익숙해서 쓰는 것뿐이다’ 하고 반감을 표출할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의도’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에게 입맛을 맞춰주는 언어를 쓰는 게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할 뿐이다. 당장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멀어질 수 있더라고 아주 길게, 장기적으로 보면 굽히지 않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C “페미니즘은 하나의 사조라고 생각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엔 아는 것도 없고 활동하는 것도 없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도, 긍정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아, 그렇구나’ 정도의 감흥만 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은 무엇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나?

 

 

K “(당연하게도)아까도 말했듯이 여성 혐오 때문이다.”

 

C “사건만 보면 여성 혐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여성들은 “내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다”라고 말하면서 공감하고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일베와 언론, ‘남성혐오’를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강남역에 찾아왔고, 살해당한 여성을 추모하는 행렬과 충돌했다. 이 충돌에 대해서는 C씨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C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추모 행렬과 ‘남성 혐오’ 양쪽 다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이 사건에 대한 지식이 나에게는 잘 없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

 

K “그러면 C는 ‘여성혐오’라는 말이 남자와 여자를 ‘편 가르기’를 한다는 말 자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C “강남역에 찾아간 일베나 ‘남성 혐오’를 말하는 사람들이 ‘왜 편 가르기를 하냐?’ 이런 말을 추모 장소에서 꺼내는 건 나쁘다고 생각한다.”

 

K “나는 그 ‘편 가르기’ 자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편 가르기를 이야기하면서 ‘왜 이렇게 오버해? 한 명에게 일어난 개인적인 일을 왜 남자 전체로 확대해? 그건 여성과 남성의 갈등을 조장하는 거야.’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긴 시간이나 축적된 사건들을 보면 그 일들은 단순히 개인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다.”

 

C “K가 한 말에 동의하지만,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일에도 편 가르기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둘이서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처럼 갈등이 생긴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K “C가 페미니즘에 동의할 때도 있지만 핀트가 어긋나거나 명백히 잘못된 이야기를 하면 그냥 주제를 돌리려고 했다.”

 

 

C “그랬어?‘

 

K ”응. 이런 이야기를 해도 의미가 없으니까. 재미있지도 않고.“

 

 

앞으로 이런 의견대립이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K는 분명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참지 않을 텐데.

 

 

C “우리는 의견대립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다. 의견을 나누거나 토론하는 일들은 지금까지도 많았다. 페미니즘의 주제에 대해서도 나는 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것이고 K도 또한 자기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를 말할 것이다.”

 

K “만약에 내가 ‘C가 그렇게 생각한 건 어리석고 불성실한 거야’라고 말하면서 단순히 구름처럼 떠다니는 전시된 의견이 아니라, 그 의견에 대한 가치를 투입한다면?‘

 

C “그렇지만 우리 특성에 보통 대립이 있으면 누구 한 명이 물러나잖아. 물론 그 당시에는 화가 날지도 모르겠지만, 또 찬찬히 생각해 볼 것 같다. 그러나 갈등이 지속 되면 표면적으로는 ‘네가 맞는 것 같아’라고 해도 내적으로는 바뀔지 안 바뀔지는 확신할 수 없다.“

 

 

K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K “지금 머릿속에 ‘한남’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아직 C를 한남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만약에 이 사람이 ‘한남’이라는 단어로 규정되고, 내 마음속에 새겨진다면 인연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 엄청 힘들 것 같다.”

 

 

K의 주변은 어떤지 궁금하다.

 

 

K “나 페미니스트야 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지지는커녕 ‘페미니스트는 유난 떨잖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친구가 학교에서 엠티를 갔는데 별명을 부르는 술 게임이 있었다고 한다. 별명이 없는 애들은 무슨 과 전도연. 이런 식으로 얼굴 평가하는 말을 붙여준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재밌다고 한다. 또 학교에서 성추행사건이 터진 이후로 과 차원에서 엠티나 개총을 규제한다. 엠티에서 여자애들이 걸스데이 춤을 추려고 했는데 그걸 제재한 것 같았다. 나는 무척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위에서는 반대로 엄청 싫어했었다. 오히려 충격이었다.”

 

 

 

작년의 오늘 ⓒ강남역살인사건공론화 계정

 

 

 

K는 C를 보며 허탈한 듯 말했다. 그녀는 최근 모든 문제를 거의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페미니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어쩔 수 없다고도 이야기를 했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C는 사건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고 인터뷰를 하면서도 ‘여성 혐오’의 개념이나 질문의 의도도 파악하지 못한 게 많다고 답했다. 앞으로 우리 둘은 어떻게 될까? C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K가 “이 사람이 싫으면 이런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라고 한 말에 K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아마도 못 본 모양이다.

 

 

사실 인터뷰를 마친 이후 잠들지 못하는 새벽까지 갑자기 둘이 헤어졌다는 카톡이 올까 봐 걱정됐다. 왜냐면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본 C의 얼굴은 혼란스러워 보였고, K는 답답해 보였다. K가 나에게 “먼저 가”라고 말했던 목소리가 귀에 남았었다. 그날 밤, 헤어졌다는 공지 대신에, 카톡으로 두 사람은 카페에 남아서 페미니즘에 관한 토론을 계속해서 했다고 K는 전해왔다. 자긴 목이 쉬어버렸다면서. 강남역 이후로 줄곧 여성들은 남자에게, 남친에게, 구남친에게 목이 쉬도록 외쳐오던 것들이 있었다. 그건 쓸쓸한가? 전혀 쓸쓸하지 않다. 고립된 그녀들에게 쓸쓸함을 느낄 정도로 혼자 있던 시간은 없었다. 아직도 여성들의 시간은 강남역 새벽 오후에 멈춰있었으며, 발걸음은 10번 출구에 멈춰있다. 그러나 아무도 외면하지 않았다. 목이 쉬었다는 증거이며, 우리가 일 년을 더 살아온 방식이었다.

 

 

글. 타라 (kim_ny@naver.com)

대표이미지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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