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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그 후] ‘강남역’을 둘러싼 세 가지 논쟁

 

강남역 이후 1년, 아직까지 첨예한 세 가지 논쟁 지점을 되짚어 본다.

 

 

1. 여성혐오는 소수의 정신병력이다?

 

 

우리는 쉽게 “(가해자와 같은) ‘미친놈’이 아닌 이상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와 같은 말에 마주친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조현병 환자였다는 점은 이러한 주장을 더 쉽게 유통시킨다. 말 속에 담긴 정신 질병 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일단 제쳐두자. 여성혐오 심리란 여성에 대한 비정상적인 증오나 (행위를 답보하는) 살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아래에서 추동하는 좀 더 근본적인 (그리고 더 흔하고 일상적인) 무엇을 ‘여성혐오’는 지시한다. 즉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정복적 태도, 멸시, 편견 등과 그로 인해 여성에게 주어지는 역할, 기대, 보상(여성숭배)과 징벌, 그 일련의 과정까지를 총칭한다.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찬양하며 그렇지 못한 여성을 평가 절하한다면 그건 여성혐오다. ‘요리 잘하는 여성’ ‘상냥한 여성’이란 이미지를 상상하고 ‘요리하지 않는 여성’ ‘무뚝뚝한 여성’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면 그건 여성혐오다. 자위를 이야기하는 여성이 경박해 보인다면 그건 여성혐오다. 섹스를 많이 한 여성이 더러워 보인다면 그건 여성혐오다. 자신의 소비 규모나 욕망에 따라 자본주의를 향유하는 여성에게 된장 냄새를 느낀다면 그건 여성혐오다. 주변의 여자를 연애대상으로 설정하고 내 기대에 따르지 않는 그에게 “왜 안 만나줘” “썅년” 등 불평한다면 그건 여성혐오다. 신체적 약자이기 때문에 ‘내가 너를 언제든 제압, 통제,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을 여성에게 투영한다면 그건 여성혐오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서 지속적인 힘을 가지기 때문에 여성혐오 ‘구조’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두고 “여성혐오”라 말한다. 그 구조라는 ‘지속적인 힘’이 사건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서두의 문장을 다시 써본다. “미친놈이 아닌 이상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미친놈이 아닌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로 해석된다. ‘미친놈과 여성혐오’ 사이의 오류에 대해선 위에서 지적했다. 정신의학과 전문의 서천석 씨는 인터뷰 당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조현병 환자의 환청이나 망상의 내용은 사회적 맥락을 가진다” 이제 ‘미친놈’이 아니라는 누군가에게 묻는다. 여기서 ‘사회적 맥락’이란 무엇인가? 

 

 

 

ⓒ 고함20

 

 

2. 모든 남성이 그런 건 아니다?

 

 

강남역 이후 1년, 아직 많은 남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남성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맞다. 현행 강력범죄의 피해자 중 87.2%가 여성이라지만 그렇다고 모든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거나, 강간하거나, 혹은 그럴 계획을 세우거나 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히 유용한 명제인가?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누군가의 말은 강남역 사건을 둘러싼 남성과 여성의 시각 차이를 정확하게 관통한다. 데이트 폭행, 광범위한 성폭력, 사이버 성범죄, 지인에 살해 혹은 강간, 살해와 강간을 포괄하는 가정폭력, 이별한 남편이나 애인으로부터의 테러,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묻지 마 폭행, 강간, 살해까지 각양각색의 여성 대상 범죄가 만연하다. 오랜 역사를 거쳐 견고한 구조로 굳어진 사회에 공포와 분노를 느끼는 여성에게 개인의 무고함과 정의로움을 역설하는 것은 전혀 유용치 않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실질적인 안전망 내지는 최소 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다. 남자인 당신에게 “나는 살인범, 강간범이 아닙니다”를 증명하란 말이 아니다. 남자인 당신을 여자로부터 격리하겠다는 말도 아니다. “강남역에 내가 있을 수도 있었다”는 ‘공유된 경험’에 당신 한 사람이 범죄자인지 아닌지는 중요치가 않다. 중요한 건 사회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란 말을 ‘논리적 비약’이라 평하는 일 또한 이 지점에서 무효해진다. 누군가는 강남역을 두고 ‘우리 남성들이 여성을 죽이고 있다는 말이냐’며 화를 내고, 그 ‘남성’에 포함되는 자신에 대한 도덕적 타격을 두려워하지만 그건 오류다. ‘여성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강남역 이후의 문제의식은 ‘어떤 특정한 조건이나 상황이 갖추어졌을 때, 여성혐오 구조는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를 빈번하게 만들어낸다’에 가깝다. 올 4월의 한 사건을 상기해보자. 한 남자가 말다툼 끝에 여자 친구에게 우산을 던져 살해했다. 데이트 폭력으로 3일에 한 명꼴로 여성 사망자가 발생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 구조는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여성에 대한 상식 이상의 분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분노에의 통제력 약화’ ‘물리적 행위를 통해서라도 여자 친구를 통제하려 드는 욕망’ 등을 추동한다. 그것은 던져진 우산이 우연히 급소에 날아가 맞았다는 특정한 상황을 통해 여성 살해로 이어졌다. 이 ‘특정한 상황’에 무엇이 들어 가냐에 따라 같은 과정은 황산 테러 피해자에게, 성폭행 피해자에게,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그리고 강남역 살인사건에 유사하게 적용된다.

 

 

 

“밤늦게 다니지 마라, 술 먹지 마라, 남자를 조심해라” 등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면서까지 특정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라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현대사회의 의무다. 신체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여성이라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 헤테로 남성 성욕의 대상인 여성이라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 (다양한 의미로) 부당하게 멸시받는 여성이라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 ‘감히’나 ‘괘씸한’ 여성이라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 그런 가능성을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줄여낸 사회 말이다. 그 사회의 첫 문장은 당신이 2016년 5월 17일 이후로 아마도 익숙하게 접해왔을 그것이다. “여성혐오를 멈춰라”

 

 

 

 

오마이뉴스 수록 / 김예지

 

 

 

3. ‘여자라서’가 아니라 ‘신체적 약자’라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범죄의 용이함을 위해 신체적 약자를 특정한 것일 뿐 성별과는 상관없다” 이러한 주장은 여자가 자신을 무시해서 죽였다는 가해자의 범죄 동기와 별개로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여성 대상 범죄(주로 신체적 제압을 요지로 하거나 ‘묻지 마’식 폭력을 전제하는)를 젠더 폭력으로 해석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어떨까. 신체적 약자인 여성이 범죄 대상으로 선별된 것은 여성혐오와 상관이 없을까? 상관이 없다고 보는 시각은 두 가지 조건을 전제한다. 1) 수많은 신체적 약자 중 여성이 특정된 건 우연이라는 것이고 2) 범죄의 용이성을 위한 가해자의 선별 작업을 여성혐오로 연결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 다 틀렸다. 혐오범죄란 가해자가 인종, 성별, 국적, 종교, 성적 지향 등을 근거로 특정 집단에 혐오심리를 가지고 그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 행하는 범죄 행위를 말한다. 다시 말해 위해가함의 가능성이 인종, 성별, 국적, 종교, 성적 지향 등을 근거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사회적 필연(혐오심리)이다. 대입하여 1) ‘신체적 약자’란 특성을 인종, 성별, 국적, 종교, 성적 지향 등을 근거로 판단하고, 2) 다시 그를 근거로 상대에 대한 자신의 제압, 통제, 위협의 용이함을 인지한다면 이는 사회적 필연이고 혐오심리다.

 

 

 

가정해보자. 신체적 약함이 학교폭력의 주요요인으로 작용하는 학교에서 신체적 약함을 근거하(한다고 생각되)는 장애인이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빈번히 선택된다면 그건 필연이고 장애인 혐오다. 학교는 학교폭력 자체의 근절과 별개로 장애인 학생의 안전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고 인식개선에 힘써야한다. 경찰이나 사회에 대한 위협 정도가 용의자 사살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는 서구 사회에서 위험함과 사악함을 근거하(한다고 생각되)는 이주민이 경찰 발포의 빈번한 피해자가 된다면 이는 필연이고 이주민 혐오다. 국가는 이주민 사살에 대한 통제체계와 이주민에 대한 인식개선에 힘써야 한다. 마찬가지로 신체적 약함이 묻지 마 폭력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할 때 (‘여성이 자신을 무시해서’를 위시하여 다른 수많은 요인들을 제쳐두고서도) 신체적 약함을 근거하(한다고 생각되)는 여성이 그 폭력의 피해자로 빈번히 선택된다면 그건 필연이고, 여성혐오다. 이 대목에서 “그게 어떻게 ‘혐오심리’냐”고 묻고 싶다면, 이 글의 1번으로 되돌아갈 것을 추천한다.

 

 

 

글. 인디피그(ghin2800@gmail.com)

인디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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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하다 비겁맨!!!!!!!!!

3 Comments
  1. 잘 읽고갑니다.

    2017년 5월 24일 12:30

    유치원 여교사들의 아동학대 행태는 무엇인가요? 분명히 현실에 실재하는 형사범죄인데 이거 두고 여자들 다 자기보다 신체약한 아동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말하나? 그런 말 듣기 원합니까? 아동혐오증이라는 말은 안만들어내나? 사람이 죽은 일인데 자기 정치노선 개진하는데 이용하지 맙시다. 관련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이 문제라고 합니다. 정신질환자가 한 말을 근거로 혐오현상을 읽어내겠다? ㅎㅎ 너무 심하다 정말.

  2. VROOM

    2017년 5월 26일 05:45

    흠.. 저자의 분석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글을 읽고서 그런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다는 것은 오히려 성별 간의 갈등을 악화시키고 논의를 부진하게 만들 것 같군요. 글에서는 일련의 개인 간의 사건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회 구조에 만연할 수 있는 혐오(왜 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이해는 가지만 저는 실용 및 전략적으로 유효하나 싶습니다)의 존재를 근거들과 함께 제시합니다. 댓글 단 분의 예시 역시 이런 틀에서 해석이 될 수 있죠. 실제로 “유치원 교사”들의 아동 혐오까지라고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구요. 나아가 이 글의 저자라면 이 예시를 분석할 때 단순히 사건들의 사실만 보는 것이 아닌 저변에 자리한 유치원 교사의 근무 환경 등의 사회적 및 구조적 원인들을 찾으려 하겠죠. 정신분석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은 진위여부를 차치하고 사람들이 굉장히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이기 쉬운
    것입니다. 조현병 환자가 사람을 죽였다로 이런 논쟁이 불편한 분들에게는 문제가 쉽게 해결되니까요. 이와 반대로 사건을 사회문화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모호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됩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해석 상의 가해자의 집단에 속하게 된다면 이해관계가 개입되죠. 저는 이 글이 꽤나 괜찮은 근거를 제시하며(하지만 그 근거들이 전문성이나 대표성을 가진 출처를 지닌다면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주장을 전개해나간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반대편의 치부를 공격하듯 비판하는 댓글보다는 글의 근거가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여성혐오 논쟁과 젠더 간의 논쟁을 더 건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3. Vendetta

    2017년 6월 1일 21:13

    이러한 글을 올릴때는 근거와 출처가 필수인데, 근거와 출처가없는 데이터는 그야말로 트럼프가 아무숫자나 부른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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