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eoul International Women’s Film Festival)의 공식 트레일러 문구는 “여성들이여 스크린을 점령하라!”다. 그동안 청년 문제는 항상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성의 얼굴로, 여성이기에 겪는 청년 문제들을 여성영화제의 상영작들 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청년 여성 영상 제작 프로젝트>를 포함하여, 청년 여성에 의해 만들어진, 청년여성의 목소리를 다루는 작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그중 몇 가지를 꼽아보았다.

 

 

몸을 탐색하다

 

 

영화 <육체미소동> ⓒsiwff

 

 

#육체미소동(정서인 감독) 나는 내 몸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 젊은 여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주변의 시선과 압박을 받으며 다이어트를 해본 적만 있을 뿐,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보지는 못했다. <육체미소동>이 가진 문제의식이다. 서인을 포함한 허약체 4명은 자신의 몸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학내 여성 축구 동아리에 들어간다. 그러나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고, 운동하는 여성에 가해지는 시선은 불쾌하기만 하다. 보람은 고된 훈련을 견딘 끝에 차츰 찾아왔다. 서인은 치열하게 몸을 써보는 경험을 통해 더 이상 몸이 ‘짐’이 아닌 ‘나’ 자신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영화 <여자답게 싸워라> ⓒsiwff

 

 

 

#여자답게 싸워라(이윤영 감독) “싸우고 싶다.” 갑갑한 고시원 생활, 떼어먹힌 임금 등으로 속이 갑갑해지니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윤영은 주짓수 도장에 등록한다. 작은 체구로도 큰 상대를 이길 수 있어 여성에게 더욱 매력적인 주짓수. 그러나 윤영은 결국 시합에서 자기보다 작은 체구의 상대는 이기고, 큰 체구의 상대에게는 졌다. ‘여자라서’ 약하다는 자기혐오를 멈추기 어려웠던 윤영은 진짜 ‘여자답게’ 싸우는 법을 배우기 위해 국내 유일 주짓수 여성 블랙벨트 이희진 관장을 찾아간다. 그녀로부터 “(여자답게) 힘이 아닌 기술로 승부하라”는 조언을 듣는다. <여자답게 싸워라>는 우리에게 강해지고 싶은 욕망과 여성성은 배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강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여성성을 진정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연애하다

 

 

 

영화 <영화학개론> ⓒsiwff

 

 

 

#영화학개론(최서윤 감독) ‘그 썅년’으로 상징되는 남성중심적 연애서사에 환멸을 느꼈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받아치는 <영화학개론>에 통쾌함을 느낄 것이다. 영화는 여성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연애 서사를 담아낸다. 너는 나를 ‘썅년’이라고 했지만, 너는 데이트폭력과 스토킹을 일삼은 ‘썅놈’이었다. 진실은 여성이 영화를 찍기로 결심하며 제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밝혀진다. 그러나 영화가 끝내 통쾌할 수 없는 이유는, 밝혀진 진실 속 여성의 연애가 몹시 여성 억압적인 현실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썅년’과 ‘썅놈’은 어떻게 다른가. 남성들의 자기 위로적 서사에서 여성은 남자의 고백을 거절하거나, 다른 남자와 관계 맺는 것만으로도 쉽게 ‘썅년’이 된다. 여자를 쟁취하지 못한 남자들의 이야기에서는 찌질함마저 공감 요소가 되지만, 여자들의 이야기에는 결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몰카에 대한 걱정, 임신과 낙태에 대한 고민, 데이트 폭력, 개념녀가 되라는 억압 등, 여성이 연애에서 경험하는 실제적 위협과 차별은 그렇게 묻힌다. 여성들의 말하기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며, <영화학개론>이 의미있는 이유이다.

 

 

 

노동하다

 

 

 

 

영화<수성못> ⓒsiwff

 

 

 

#수성못(유지영 감독) “마! 치열하게 살아라, 치열하게!”라고 동생한테 소리치는 24살 희정은 과연 자신의 말 그대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대구 수성못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동시에 틈틈이 편입시험 준비를 하고 집에 가서도 또 공부한다. 그런 희정 앞에 나타난 자살카페 회장 영목. 희정은 그를 이해할 수 없고,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모두 “노력도 안 해보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부끄럽지 않게 노력한 희정 역시 결국 predicament, 곤궁(극 중 희정이 계속 외우는 영단어)에 빠진다. “내가 뭘 좀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하고 말하는 희정에게 “선택할 수 없는 게 왜 없냐”는 영목의 말은 솔깃한 유혹처럼 들린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자살각’, ‘한강수온체크’ 등 자살을 암시하는 표현을 농담처럼 사용하는 청년들의 한탄을 과연 농담으로만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유희하다

 

 

 

 

영화 <방해말고 꺼져!: 게임과 여성> ⓒsiwff

 

 

 

#방해말고 꺼져!:게임과 여성(새넌 선-히긴스 감독) 2016년 넥슨 ‘클로저스’의 성우가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남성 유저들의 민원을 받고 계약을 해지당했다. 이에 분노한 여성 게이머들은 그간 겪었던 남성 중심적 게임문화를 폭로하기 시작한다.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캐릭터 디바를 모티브로 삼은 ‘전국디바협회’, 게임 중 성희롱 발언을 아카이빙하여 고발하는 ‘옵치하는 여자들’이 대표적이다. ‘한국 남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2년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방해말고 꺼져!: 게임과 여성>은 비디오 게임 개발자와 기자, 학자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게임 내 여성 캐릭터 문제, 게임 산업에서의 여성의 지위, 여성 게이머가 성희롱당하는 현실 등을 고발한다. 여성들은 이제 단순히 게임 ID를 ‘비여성적인’ 것으로 바꾸거나, 스스로 게임 세계를 떠나는 등의 방식으로 문제를 피하기만 하지 않는다. 게임은 더 이상 ‘남성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정치하다

 

 

 

영화<오늘은, 여기까지> ⓒsiwff

 

 

 

#오늘은, 여기까지(박수현 감독)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루머와 그로 인한 모욕을 고스란히 맞은 사람들이 여기 또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는 세월호 유가족 형제자매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거리에 나가 서명을 받는 일이 그녀들에게 역시 처음이었고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적 영역에 던져진 그녀들은, 평범한 20대 여성으로 사는 삶을 편히 살지 못하고 유가족이라는 이름을 안고 3년을 살아와야 했다고 고백한다.

 

 

 

영화 <시국페미> ⓒsiwff

 

 

 

#시국페미(강유가람 감독) 여성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을 촉구하며 ‘병신년’, ‘강남아녀자’ 등 혐오 발언을 내뱉는 촛불 혁명의 한가운데에 ‘페미존’이 생겼다. 함께 분노하기 위해 나간 광화문에서 “예쁜 아가씨들이 이런데도 나오고 대단하네”와 같은 반응을 들어야 했고, 성추행도 당했다. 동등한 위치의 시민이 아닌 그냥 여자로 소비 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분노하고 싶고, 연대하고 싶었다.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이후의 변화는 대단했다.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함께 시국 선언도 했고, 집회 주최 측으로부터 사회자의 여성 혐오 발언에 대한 사과도 받았다. 더 이상 여성혐오 발언은 대의를 위해 참아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낸 것이다. <시국페미>는 ‘페미존’을 만들어 분노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한곳에 모아낸 당사자들의 증언을 모았다. 이제 여성들은 남성중심적인 집회현장을 떠나거나 혼자 참지 않는다. 우리는 ‘페미니스트답게’ 정치한다.

 

 

 

6월 7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막을 내렸다. 그래도 아쉬워하지 말자. 곧 개봉되어 상영관에서 볼 수 있는 작품도 있고, 다른 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모든 영화는 ‘아카이브 보라’를 통해 대여해 볼 수 있으니 참고하자. 좋은 영화를 다 같이 볼 수 있도록 널리 알린다면, 영화는 우리가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글. 다정(tsb02319@gmail.com), 달래(sunmin5320@naver.com)

사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홍보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