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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관심을 가져야 할 22.8%

20대 총선 즈음으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친척들이 외할머니댁에 모였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주제는 총선으로 옮겨갔다. 저녁을 먹기 전, 뉴스를 틀어놓고 보던 와중에 이모가 던지신 한 마디.

 

“그놈이나, 그놈이나. 다 똑같아.”

 

다 똑같지는 않을 텐데. 내 생각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 그런 사람이 원내에 들어가면 나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텐데. ‘모두가 똑같지는 않다’며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모가 살아오신 수년 간의 삶이 바로 그 한 마디에 집약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 pixabay

 

“2002년에서 2003년 즈음에 어땠냐고? 음… 힘들게 살던 시기지. 월드컵 했던 때네. 돈을 벌러 다녔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식집에서 일을 했어.”

 

민주화 운동가로 유명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고, ‘서민 대통령’이라고 불리던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한 그 시기에, ‘서민’인 이모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남편과 따로 살기 시작했고, 아들은 군대에 갔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했다. 그런 막중한 노동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기억밖에 없다고 이모는 회고한다.

 

“서민 대통령, 서민 대통령 그러긴 하지만… 글쎄. 사실 그때 투표를 안 했어. 아니, 못했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누군가는 쉽게 ‘서민인 자신을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다. 투표하는 것이 곧 나의 삶을 바꾸는 것이라며 다그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모에게는 정치에 관심을 두는 것조차 크나큰 ‘사치’였다.

 

“일하다가 슬쩍슬쩍 TV를 보니깐 노무현을 막 탄핵한다고들 하더라. 그런가보다, 했지. 일하기도 바쁜데 어떻게 그거 생각만 하고 있니.”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기억밖에 없다고 이모는 회고한다 ⓒ Theodor Hensolt (Flickr)

 

그래도 이모의 삶이 조금 더 나아졌더라면, 정치라는 영역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비교적 진보적인 정당’이라고 여겨지는 당의 사람이, 그리고 ‘서민 대통령’을 표방한 사람이 집권했기에 정치의 영역에 조금 더 기대를 걸 수 있지 않았을까.

 

“정확히 무엇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시간이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버는 것에 비해서 물가는 오르는 것 같고.”

 

설령 전반적인 경제 지표가 좋아진다고 한들, 이모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오히려, 그녀가 느끼는 삶의 전반적인 수준은 개선되지 않았다. 더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정치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무엇이 아니었다. 팍팍한 삶 속에서 정치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7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어. 그때는 투표가 중요하고, 정치에 참여해야 하고 이런 것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 정치로 뭔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아닌 것 같고. 사실 나 같은 경우는 야간 고등학교를 나왔어.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셔서 돈을 벌어야 했거든. 내 밑으로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가 있었고. 하여튼, 그래서 낮에는 농협중앙회 있지? 서울에 있는 곳. 거기 나가서 돈을 벌었고 밤에는 학교 가서 수업을 받았어. 그러니깐 정말 힘들더라. 학교에서 수업 들을 때도 정말 힘들고, 일할 때도 힘들고.”

 

정치가 우리 삶의 영역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지 인식하는 데에는 삶 속에서 느끼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에 관해 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모가 학교에 다녔던 시절에는 ‘국가에 충성하라’는 식의 교육은 몰라도,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하는 정치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 설령 그런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한들, 학창시절 이모의 삶 속에서 그 배움에 몰두할 수 있었을까. 온전히 학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사람만이 그 내용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깐 정말 힘들더라” ⓒ pexels

 

약 두 달 전, 대선이 있었다. 지금까지 치러졌던 여타 대선과는 달리 보궐선거로 치러졌기에, 투표 시간도 오후 8시까지 늘어났다. 정치 영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이번 대선에서 사람들은 자연히 ‘높은 투표율’을 기대했다. 80%를 넘길 것이라고 예상된 투표율은 77.2%에 머물렀고, 탄식의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터져 나왔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투표하지 않을 수 있느냐’면서.

 

하지만 나머지 22.8%의 사람들을 쉽게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들’로 매도할 수 있을까. 그중 누군가는 나의 이모와 같은 사람일 것이다. 팍팍한 삶 속에서 정치에 눈을 돌리는 것조차 숨 가쁜 사람.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 참여가 나의 삶을 바꾼다’는 구호는 다양한 삶의 궤적들을 품지 못하고, 가볍게 외쳐지고 있다. 그런 구호를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정치의 영역에 눈을 돌릴 만큼의 여유가 있는, 혹은 정치 참여에 대해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기득권’이 아니던가.

 

22.8% 속 누군가는, 우리 이모 같은 사람들은 단순히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정치‘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정치가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생활 영역에서 잠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이 관심이야말로 민주정치 영역에서 ‘배제’된 그들의 목소리를 다시금 들리도록 하는 ‘정치의 본령’이 아닐까?

 

글. 박다울. (daul.park73@gmail.com)

특성이미지. ⓒ pixabay

박다울
박다울

순간의 포착

1 Comment
  1. doyh

    2017년 7월 6일 01:03

    와 뼈저리게 공감하고 갑니다.
    갠적으로 무지가 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을 무지하게 만든 사회에게 더 큰 죄가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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