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부드러운, 안심이 되는.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우리는 낯선 폭력의 모습을 본다. 폭력은 때때로, 혹은 자주 일어나기도 하며, 어떤 집에서는 날선 말들로, 또 어떤 집에서는 퍼런 멍자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너무나 다양하고 ‘사적이어서’ 폭력이라고 불리지 못했던 우리의 경험들을 돌아본다. 

 

그는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아빠였고, 아내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잔인한 남편이었다.

 

언뜻 보면 말이 안 되는 문장 같다. 앞의 표현은 따뜻하지만, 뒤의 내용은 무섭고 소름이 끼친다. 공존할 수 없는 특징이 나열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문장이 아니다. 아들딸은 자기 자신보다 아끼면서, 아내에겐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들은 결코 적지 않다. 나의 아빠는 그들 중 하나였다.

 

좋은 아빠이자 나쁜 남편

 

아빠는 그야말로 딸바보였다. 없는 살림에 무리하면서까지 비싼 것을 먹이고 비싼 것을 입혔다. 우리를 놀아주는 일에도 충실했다. 집 안에선 튼튼한 팔다리로 ‘비행기’를 태워줬고, 전축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올드팝송을 들려주기도 했다. 애정표현은 차고 넘칠 정도였다. 스킨십이 어찌나 과격하던지, 뽀뽀를 너무 세게 해 얼굴에 빨갛게 자국이 남곤 했었다. 덕분에 흐뭇하게 떠올릴 수 있는 추억들이 많다.  

 

그렇다고 그가 완벽하게 좋은 아빠였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잔소리가 급격히 늘어났다. 매일같이 공부해라 과외를 해봐라 나를 들들 볶았다. 아빠의 잔소리는 공부뿐 아니라 나의 모든 것에 적용되었다. 아바타처럼 아빠가 원하는 대로 머리를 자르고, 아빠가 골라준 옷을 입어야 했다. 그래도 날 먹이기 위해 서툰 솜씨로 간식을 만들고, 내가 맛있게 먹으면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 메트라이프 광고

 

아빠는 좋은 아빠였던 동시에 한편에서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매번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엄마를 폭행했다. 자신의 자존감, 나아가 남성성을 훼손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비스업을 하는 아빠는 일터에서 종종 손님들로부터 무시를 당했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다. 엄마는 평소엔 고분고분하게 아빠의 말을 따랐지만, 가끔 아빠가 무리한 요구를 할 때면 거절했다. 그때 아빠는 감히 엄마’마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가 맞을 때마다 난 왜 하필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억울해했다. 나에겐 가족의 평화가 깨졌다는 것 자체가 화나는 일이지, 누가 그랬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서 다시 아빠가 엄마를 ‘용서’하고 둘이 ‘화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바람은 다행히, 아니 불행히도 항상 잘 이뤄졌다. 아빠는 며칠간 뚱해 있다가 어느샌가 멋쩍어하며 엄마와 나에게 와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했다. 외식을 하면 분위기가 풀렸고 다시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나밖에 모르던 내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해피엔딩이었다.

 

화목한 가족, 안정된 가정은 없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엄마가 일을 나가면서 폭력은 줄었다. 여전히 엄마 아빠의 관계는 수직적이었지만, 물리적인 폭력이 없는 것만으로도 가정이 평화로워 보였다. 언제든 기댈 수 있는 가정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고 참 좋았다. 밖에 나가선 우리 가족이 화목한 편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진심으로 그런 줄 알았다.

 

대학교에 들어온 후 안정된 가정과 화목한 가족에 대한 환상은 깨졌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을 인간 대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자식의 입장에서 ‘나의 엄마 아빠’로 이해하기보다는 ‘개인’으로 인식하게 됐다. 내가 누리던 안식은 누군가의 인내 위에서 유지되어왔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가정폭력의 가해자. 새삼스레 깨달은 이 사실에 아빠가 다르게 보였다. 아빠는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맞벌이를 하고 있으면서 엄마에게 떳떳하게 밥상을 차리라고 시키고, 시도 때도 없이 집이 지저분하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기분이 특히 안 좋은 날에는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여전했다. 평소에는 그저 ‘별로’라고만 생각했던 아빠의 행동에 이제는 화가 났다.

 

아빠와 가해자를 바라보는 시선

 

엄마는 아빠를 두고 ‘그래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사는 게 힘들어서라고 감싼다.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 적도 있다. 가해자도 ‘그럴 만한’ 배경이 있었으므로 그걸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그가 나의 아빠이기 때문에 마음껏 미워하지 못한 것뿐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아빠와 나의 관계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마음 속으로 가해자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며 분노하는 동안, 일을 마친 아빠는 나에게 먹일 과일 거리를 고르고 있었다. 아빠가 손수 깎아 먹여준 과일은 참 달았다.  

 

이제 와서 아빠에게 죄를 묻는다 해도 바뀌는 건 없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기득권을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불과 몇 달 전 내게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므로 나중에 시집가면 남편을 잘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준 사람이다. 애초에 이야기를 꺼낼 엄두도 나지 않는다.

 

부모님에게 딱지를 붙이는 건 여전히 내게 어려운 일이다. 여전히 아빠는 아빠, 엄마는 엄마일 뿐이다. 우리 가족에게 있었던 일은 기억 속에 해프닝으로 남았다. 언젠가 아빠는 엄마에게 또 일방적으로 권력을 휘두를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소심한 반항 외에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최소한 잊지는 않으려 한다. 우리에게 일어났던 것은 분명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엄마가 받았을 상처를. 가족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이 허용될 수는 없다는 걸 기억하며 이젠 아빠가 아닌 엄마를 감싸 안고 싶다.

 

글. 동그라미(dkffjq5@naver.com)

특성이미지  ⓒebs 다큐 ‘아빠의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