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부드러운, 안심이 되는.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우리는 낯선 폭력의 모습을 본다. 폭력은 때때로, 혹은 자주 일어나기도 하며, 어떤 집에서는 날선 말들로, 또 어떤 집에서는 퍼런 멍자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너무나 다양하고 ‘사적이어서’ 폭력이라고 불리지 못했던 우리의 경험들을 돌아본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맞벌이로 항상 바빴다. 자연스레 오빠만 편애하던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아침마다 현관에서 출근하는 엄마를 붙잡고 오늘은 집에 있어달라며 울면서 졸랐다. 할머니 손을 뿌리치고 차들이 속도 높여 달리던 도로로 뛰어드는 나를 우연히 목격한 엄마는 물론 여러 사정이 겹쳤겠지만, 마침내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앞으로는 엄마와 종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엄마에게 사랑받는다는 그 느낌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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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이 된 사랑

 

엄마와 함께 있다는 데서 오는 행복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희미해졌다.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에 대한 보상 심리였을까. 나에 대한, 특히 내 성적에 대한 엄마의 집착은 유별났다. 중고등학생 시절 내내 내가 받아온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면 엄마는 눈을 부릅뜨며 화를 내고, 사정없이 때리고, 눈앞에 보이는 걸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성적표만 나오면, 다정하던 엄마는 온데간데없었다.

 

하루는 “엄마는 공부를 잘해서 얼마나 잘난 사람이 됐길래 나한테 이러냐”며 대든 적이 있다. 크게 혼이 날 줄만 알았는데, 엄마는 “너 때문에 일을 그만둬서 못난 사람이 되었다”며 펑펑 울기만 했다. 그날부터 나는 항상 엄마한테 평생 갚지 못할 빚을 진 느낌이었다. 내가 철없이 할머니를 피해 다니지 않았다면, 아침마다 엄마의 출근길을 무겁게 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었을 텐데 내가 다 망쳐버린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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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한 후 잠시 수그러들었던 엄마의 기대 또는 집착은 내가 대학원에 가겠다고 선언하자 다시 폭발했다. 엄마는 내가 졸업하면 당연히 번듯한 회사에 취직해 당신을 자랑스럽게 해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대학원을 취직 못 하는 애들이나 가는 곳 정도로만 여겼던 엄마는 내게 섭섭함을 쏟아냈다. “지금 내 인생에 남은 건 너밖에 없는데 너는 나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배신자”라고 욕을 했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 내가 싫었다. 얼른 돈을 벌어야 엄마가 몇 년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여행도 보내드리고 예쁜 옷도 사드리고 좋은 것만 드시게 하면서 조금이나마 빚을 갚아나갈 수 있을 텐데, 나는 왜 남들 다 하는 취직이 하기 싫을까. 왜 뚜렷한 미래도 보이지 않는 공부가 하고 싶을까. 엄마는 날 위해 인생을 통째로 희생했는데 나는 왜 조금도 양보하지 못할까. 온갖 자책이 몰려왔다.

 

사회가 정해준 좋은

 

엄마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용납할 수 없어 일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좋은 엄마란 가정에 충실하고 자녀 교육에 헌신적인, 모범 엄마 그대로였다. 동시에 엄마는 내가 ‘좋은 딸’이 되기를 바랐다. 학창 시절에 공부 잘하고, 대학 졸업하고는 돈 잘 벌어서 효도하기를 기대했다. 엄마는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가정에 머무르며 육아에 전념해야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건 아주 못된 거짓말이다. 모범 학생에서 모범 회사원으로 이어지는 사회와 엄마의 기대를 단계별로 충족해야만 ‘좋은 딸’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엄마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거나 나에게 부당한 요구를 했다는 식으로 쉽게 말하고 싶진 않다. 오히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일하느라 아이에게 소홀해졌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엄마의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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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고 가장 미워하는

 

내가 줄곧 엄마를 이해만 했던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를 자신의 기대에 맞추려고만 하는 엄마를 맹렬히 미워하기도 했다. 가해자인 줄만 알았던 엄마에게서 피해자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내 분노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을 뿐이다. 엄마는 아빠 못지않게 교육을 받았고 경제력도 있었다. 그런 엄마가 나를 통해서만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인 건 온전히 엄마의 선택이었을까? 아이와 함께 있어 줘야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사회의 강요에 가까웠을 거다. 아빠는 육아를 위해 자신의 성취를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더 어려웠다.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너도 ‘좋은 딸’이 되어야 해”라는 엄마의 요구는 맞받아치기 미안했고,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했다. 이미 잔뜩 사랑은 받아놓고 돌려줄 줄은 모르는 ‘못난 딸’이라는 자기 혐오에 시달렸다. 여기에 엄마의 비난이 더해질 때면, 엄마의 사랑이 굴절되어 나를 찌른 건 엄마의 탓도 아니지만, 나의 탓도 아니라고 되뇌어야 했다. 그럴수록 엄마를 상처 입히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보이고 싶었다.

 

사랑은 고스란히 갚아야 할 빚이 아니다. 엄마가 당신의 삶을 바쳐 사랑했다고 해서 엄마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꾸려야만 보답이 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애초에 준 만큼 받아내려고 엄마가 나를 사랑한 것도 아닐 거라 믿는다. 사회에서 정해놓은 ‘좋음’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위해주는 방법을 찾고 싶다. 엄마와 내가 생각하는 ‘좋음’이 다르다는 걸 얘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아직은 너무 어렵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틈만 나면 싸우지만, 지난한 연습을 거치고 나면 엄마도 나도 서로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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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진(bibigcom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