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반만 올리면 병X 같아 보이잖아.”

 

 

즐거운 마음으로 콘서트를 관람하던 Y씨는 순간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무대 위의 연예인이 수만 관객을 향해 ‘병X’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그는 웃으며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자신이 뱉은 단어가 문제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객석 곳곳에서는 웃음과 함성이 터졌다. 관객들은 욕설을 서슴지 않은 연예인을 향해 환호를 보냈고, ‘병X’이 되지 않기 위해 팔을 번쩍 들었다. 이태원 프리덤, 이태원 프리덤. 열광하는 대중들 사이에서 Y씨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떠올랐다.

 

지난 8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SM TOWN LIVE 콘서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UV의 멤버 유세윤은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팔을 반만 올리면 XX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여성 및 장애인 비하, 사고 희생자 비하 등 온갖 막말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유세윤은 다시 한번 그와 같은 논란에 휩싸였다.

 

사건 현장에 있던 Y씨가 경험했듯, 유세윤의 발언에 대해 심각하게 인지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러한 분위기는 온라인상에서도 이어진다. 유세윤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예민하다”,”장애인을 비하하려고 한 발언이 아니다.”,”다들 한 번씩은 쓰지 않냐” 와 같은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병X’라는 단어를 단순한 농담으로 치부한다.

 


ⓒ네이버 댓글 갈무리

 

과연 이는 ‘단순한 욕설’인가? 수 만 명의 관객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그 단어를 내뱉은 유세윤과, 그 단어를 농담 삼아 즐기고 있는 이들을 향한 비판은 ‘오바’일까?

 

우스갯소리에서 지워진 사람들

 

대다수 콘서트 및 공연장은 장애인석을 확보하고 있다. 이번 2017 SM TOWN 콘서트 역시 별도 예매를 통해 장애인들이 어려움 없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유세윤이 ‘병X’이라는 말을 거리낌없이 내뱉은 순간, 그 말을 듣고 있는 수 만 명의 관객중에서는 장애 당사자들이 섞여 있었다. 관객뿐만이 아니다. 2017 SM TOWN 콘서트는 희귀 질환으로 시력을 상실한 가수 이동우씨가 포문을 열었다. SM TOWN 콘서트는 지난 시즌부터 첫 무대를 이동우씨에게 맡겨왔다.

 

SM TOWN 콘서트 무대에 오른 이동우씨 ⓒ세계일보

 

유세윤이 오른 무대는 시각장애인이 포문을 열고 장애인석을 10년 전부터 확보해 온, 장애인들의 참여가 당연히 예상된 콘서트였다. 수많은 막말 논란과 자숙기간을 거친 그가 이러한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고도 이와 같은 발언을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세윤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청중’ 안에 장애인을 포함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장애인을 지워내는 발언을 일삼고도 ‘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비장애인이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비장애인이 중심이 되는 권력 관계 안에서 유세윤의 발언을 파악할 때, 그의 동료 뮤지의 해명은 더욱 놀라워진다. 뮤지는 “유세윤의 즉흥적인 의견이 아닌, 콩트를 조금 더 재밌게 구성하고자 사전에 논의된 발언이었다. 뒤이어 무릎을 꿇고 사과할 생각이었다.” 며 비하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나섰다.

 

‘병X’라는 단어가 사전에 논의된 발언이었다면 그건 더욱 큰 문제다. ‘무릎을 꿇고 사죄할 생각이었다’는 말에서 이미 ‘잘못인 줄 몰랐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병X’이라는 단어가 장애인에 대한 비하와 멸시를 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죄해야 할 만한, 잘못된 발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혐오발언을 공식 석상에서 당당하게 할 수 있었을까? 청중에서 장애인을 지워낸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으로 이 발언을 해석할 수 있을까? 이는 ‘장애인이 아닌’ 사회의 다수가 무의식중에 형성하고 있는, 비장애인이라는 권력이 작동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뮤지 인스타그램

 

비단 유세윤과 뮤지 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동이 미숙하거나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게 ‘병X’이라 칭하는 것은 아주 ‘일상적’이다. 대학가에서는 술 게임을 틀린 사람에게 ‘병X샷’을 외치며 술을 권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세윤이 개그의 소재로 장애인 혐오적인 단어를 택한 것은 ‘일반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 단어를 우스갯소리로 소비할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는 사회적 ‘소수’라는 미명하에 지워졌다. 이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다수는 이것이 우스갯소리라고 믿고 싶었을 뿐이다. 말 그대로 자신들의 ‘웃음’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 뜻 아니라고요? 그런 뜻 맞습니다

 

욕설을 사용하는 자리에 장애인이 없었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장애인 사이에서 병X이라는 욕설이 통용되는 것은 어떤 윤리적, 사회적 문제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이와 같은 욕설을 쓰는 사람들은 평소 그 단어에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도를 담아 쓰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비장애인 사이에서 통용되는 ‘병X’이라는 욕설은 장애인이 아니라 욕설의 대상을 단순히 모욕하는 데서 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욕설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병X’이라는 단어는 장애는 열등한 것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비장애인에게 ‘병X’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 혐오성을 상대방에게 부여함으로써 상대 역시 ‘열등한’ 대상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같다. 단어 자체에 장애인 혐오가 담겨 있는 것이다.

 

언어는 사람의 사고를 규정하고, 그 사고방식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열등한 것, 실수, 잘못된 것을 ‘병X’이라는 단어로 규정하고 입 밖에 반복적으로 내뱉을 때, 장애인을 속되게 지칭하는 단어는 그 혐오성을 가중한다. 문장 맥락 속에서 단어가 지칭하고 비하하는 대상이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를 모욕하기 위해 사회적 소수를 멸시하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병X’이라는 단어가 욕설로 통용될 만큼의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은 곧 그 단어가 지칭해온 대상에 대한 혐오가 만연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막말’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동아일보

 

늘 그래왔듯 유세윤은 다시 TV 속에 등장할 것이고, 무대에 오를 것이다. 지금도 어느 대학가에서는 ‘병X샷’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을 지워내면서 자연스럽게 ‘병X’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병X’이라는 단어와 장애인에 대한 혐오는 분리될 수 없다.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곧 사회적 소수를 지워내는 것이고, 단어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혐오를 가중하는 것과도 같다. 무대에 오른 유세윤과 ‘병X’이라는 단어를 욕설로 사용해온 대중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지워낸 것은 무엇인지 분명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

 

 

특성이미지  ⓒYTN

글. 망고 (quddk9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