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이하 ‘루루루’)>가 화제다.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시즌2가 만들어진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한 여학생의 자살 사건, 그리고 그 자살을 만들어낸 13가지 이유들로 에피소드가 이루어진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매 화를 시청하면서, 한국에서 <루루루>가 만들어졌다면 인기를 끌지 못할 것은 물론, 그전에 아예 만들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불편해서? 아니다

 

<루루루>는 단언컨대, 불편하다.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과 맥락이 다르지 않다. 여학생들이 얼굴, 가슴크기로 평가당하는 일, 작은 소문, 작은 사진으로 시작하는 학교폭력, ‘걸레’라고 불리는 여학생들은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즉, 이 드라마에서 한 학생의 ‘자살’ 이유라고 표현되는 것들이 여느 평범한 한국 시청자가 학창시절에 가해자로서 숱하게 행해왔던 일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하지만 시청자가 본인이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드는 ‘불편함’이 <루루루>가 한국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 이유일까? 아니다. 한국의 많은 시청자는 본인이 한국의 또 다른 해나를 죽인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을 것, 불편함을 느끼지도 못할 것이라는 점이 한국판 <루루루>가 진짜 불가능한 이유이다.

 

강간을 강간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한국사회

 

<루루루>에서 해나의 친구였던 제시카는 술에 많이 취해서 거부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브라이스에게 강간을 당한다. 해나는 이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성범죄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브라이스의 강간범죄를 알고 있던 다른 캐릭터들은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강간은 절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트위터 @LeadTheFightOn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드라마에서 ‘쓰레기’로 그려지는 캐릭터들조차 어떤 장면에서도 ‘거부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 성관계는 강간이다’는 것을 전혀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누구도 ‘그 여자애가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래’, ‘그러니까 술을 좀 적게 마시고 옷도 얌전하게 입었어야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최소한 이것이 명백한 ‘범죄’이며 피해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일단 한국판 <루루루>가 정말 현실적이라면 브라이스의 친구 캐릭터가 ‘그러니까 여자애가 술을 좀 적게 마시고 옷도 얌전하게 입었어야지’라고 성폭력 범죄를 두둔할 확률은, 굉장히 높다. 드라마 남주가 여주의 거부 의사 표시에도 불구하고 “웃기고 있네. 이렇게 더듬는 거 싫었으면 아까 벌써 일어났어. 너 아직도 나 좋아하지?”라는 말을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킬-조이] ‘질투의 화신’, 이게 로코 남주라니요).

 

술에 취한 여성은 ‘골뱅이’라고 불리며 강간 포르노로 소비된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술을 마시지 않은 여성의 ‘NO’도 ‘YES’로 둔갑시키는 강간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성폭행 피해 여성이 술에 취한 상태였다면? 한국 사회에서 강간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피해자 책임론으로 귀결된다. 술에 취한 여성을 강간하는 영상이 ‘골뱅이’ 포르노로 쉽게 소비되는 한국에서, 제시카가 당한 강간은 ‘그러게 누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래?’와 같은 2차 가해적 대사로 마무리될 확률이 높다.

 

악역 캐릭터가 성범죄 2차 가해적인 말을 함으로써 악역의 역할이 더 강화되고 시청자들에게서 비난을 받는다면,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한국의 현실을 잘 지적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어난 많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여론을 봤을 때 그렇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은 더 큰 문제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확고하지 않고 강간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루루루>는 한국 시청자가 본인이 가해자였을 수도 있다는 ‘찔림’이나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 어렵다. 오히려 성폭행 가해자 캐릭터에 이입해 ‘여자애가 그렇게 취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라는 면책 사유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몰카’는 범죄다

 

<루루루>의 또 다른 장면을 들여다보자. 극 중 타일러는 해나를 스토킹하고 그녀가 키스하는 모습을 몰래 사진으로 찍어서 퍼뜨린다. 얼굴이 나와 있지 않고, 나체가 나온 것도 아니지만 (놀랍게도) 이 드라마의 거의 모든 캐릭터가 이것이 명백히 ‘범죄’이며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쳤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해나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조차 타일러의 범죄에 분노하며 타일러의 집 창문에 돌을 던진다.

 

ⓒ넷플릭스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에서 여자 화장실, 모텔 및 기타 숙박업소 등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된 사례들은 한두 번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런 도촬들이 포르노로 소비되는 ‘소라넷’의 회원 수는 100만 명이 넘었었고 17년간 지속되었다. 몰카가 하나의 유흥 수단으로서 단톡방에서 낄낄거리며 파일을 돌려보는 ‘재미있는 것’으로 소비되는 이 사회에서, 몰카 범죄에 대한 <루루루> 캐릭터들의 분노가 과연 ‘공감’을 살 수 있었을까? 아니다.

 

여성이 옷을 벗고 용변 보는 모습, 샤워하는 모습, 성관계를 하는 모습 등이 모자이크조차 없이 포르노로 소비되고, 이 과정에서 여성이 성욕 해소 도구로 이용되는 곳이 한국이다. 과연 한국 사회는 ‘해나가 옷을 다 입은 상태로 키스하는 모습-그것도 얼굴조차 보이지 않음-을 찍고 유포한 것’이 정말 큰 범죄임을, 해나가 자살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말 그들의 분노에 ‘공감’할 수 있을까.

 

ⓒ경찰청

 

<루루루>가 만들어질 정도만 되는 사회라도 되기를 바라본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나는 <루루루>를 보면서 공감, 분노, 슬픔 후에 ‘서글픔’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루루루>라는 작품이 공감과 반성의 감정을 유발하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만들어지지조차 못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해나가 자살하게 된 두 가지 큰 원인이 한국에서는 명백한 ‘범죄’라고 인식되지조차 못한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제시카, 술을 적게 마셨어야지. 여자애가 조신하지 못하게’, ‘얼굴도 안 나온 사진 때문에 그렇게 고통받는 게 말이나 되니? 네가 예민한 거야’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

 

<루루루>에서는 하물며 쓰레기 캐릭터조차 몰카와 동의 없는 섹스가 범죄인 걸 안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며, ‘한남’이라는 말에도 부들대는 한국사회는 아직 멀었다. 한국사회가 <루루루>가 만들어질 정도만이라도 되기를 바라본다.

 

 

글. 모킹버드 (sinjenny97@naver.com)

특성이미지.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