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옥자>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넷플릭스와 극장(멀티플렉스를 제외한)에서 동시 개봉했다. ‘설국열차’에서 사회 체제를 상징하는 열차를 폭파한 봉준호 감독은<옥자>에 이르러 영화에 대한 개념과 배급 체제를 붕괴시켰다. 붕괴한 틈 사이로 등장한 ‘넷플릭스’의 역할은 많은 논쟁을 낳았다. 하지만 더욱 화제를 모았던 것은 영화의 주제였다. 전 작품에서 자본주의를 파괴했던 봉준호 감독은 <옥자>에서 자본주의가 발전시킨 디테일에 집중했다. 그렇다면 <옥자>의 결말은 봉준호 작품의 전 작품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중적인 개인에 대한 탐구

 

 

과거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비합리적인 세상 속 인간이 지니게 되는 괴물의 모습을 밝혀내는 데 주력했다. <살인의 추억> 속 형사들은 고문을 통해 평범한 시민을 범인으로 조작한다. <마더> 속 어머니(김혜자)는 아들(원빈)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직접 살인을 저지른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그들의 ‘합리성’에서 비롯된다.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형사의 신념, 정신병이 있는 아들의 누명을 벗겨야 한다는 어머니의 생각 등이다. 하지만 ‘합리성’ 뒤에 숨어있는 괴물의 형상은 특정하고 예외적인 상태에 이르러서야 드러난다. <살인의 추억>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계엄, 정신병에 색안경을 끼고 있는 ‘마더’의 사회처럼 비정상적인 사회 속에서 인간의 ‘괴물스러움’은 모습을 드러낸다.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이렇게 비정상적 사회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괴물스러움’은 결말에 가면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회 속에서 ’평범한‘ 얼굴로 대체된다.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을 조작한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비가 올 때마다 잔혹하게 사람을 죽인 연쇄 살인마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정신병에 대한 선입견 또한 해결되지 않았다. 괴물은 죽었지만, 괴물을 만든 사회는 공고하다.

 

 

체제를 전복시키는 개인의 등장

 

 

<설국열차>의 등장인물도 이중성을 보인다. <설국열차>는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를 그린다. 열차는 사람들의 등급을 매겨 자원을 차등 지급함으로써 유지된다. 이는 곧 질서다. 비정상적인 체제 속에서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머리칸으로 가는 혁명을 주도한다. 하지만 혁명의 끝에서. 커티스가 마주한 진실은, 꼬리 칸 사람들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혁명’ 또한 열차 내 인구를 조절하는 장치였다는 점이다. 이후 열차의 설계자 월포드(에드 해리스)는 커티스에게 후계자 자리를 제안한다.

 

기존 봉준호 감독의 영화였다면 <설국열차>는 여전히 앞으로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국열차’ 속 개인들은 체제에 순응하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은 남궁민수(송강호)의 손을 빌려 열차를 폭파한다. 사회 속에서 ‘평범한 개인’으로 돌아가야 했던 등장인물은 ‘체제를 파괴하는 개인’으로 재탄생한다. 영화는 사회를 붕괴시키며 끝났다. 감독은 스스로 ‘설국열차’를 초기작으로 분류했다. 이제 대안이 필요하다. 다음 영화는 그 대안에 집중할 것으로 생각했다.

 

 

열차를 파괴시키려 했던 남궁민수와, 이에 대립했던 커티스

ⓒ 설국열차

 

 

<옥자> 속 개인의 모습

 

 

예상과 달리 봉준호 감독의 최신작 ‘옥자’는 기존처럼 인간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한다. 등장인물들은 이중성은 더욱 선명해졌다. ALF 단원, 루시 미란도(틸타 스윈튼) 모두 옥자를 위험에 빠트린다.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을 지탱하는 그들의 ‘합리성’은 더욱 명확하다. ‘모든 슈퍼돼지를 해방해야 한다.’, ‘기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윤리적인 이유로 인해 ALF는 옥자를 다시 실험실로 돌려보내고, 루시는 유전자를 조작해 얻은 슈퍼돼지를 공장식으로 사육한다.

 

ⓒ NETFLIX <옥자> 화면 캡쳐

 

미자(안서현)의 평면적인 캐릭터는 이중적인 등장인물(어른)들 속에서 더욱 눈에 띈다.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미자는 ‘옥자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몰두한다. 이는 미자를 미란도 서울지사, 운송 트럭, 지하상가 그리고 뉴욕으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그렇게 마주한 마지막 장소 미란도 축산 공장에서 미자는 설국열차 속 커티스, 남궁민수가 마주한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커티스’는 현실에 순응했고, 남궁민수는 사회를 전복했다. 과연 미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미자는 희봉(변희봉)이 시작한 거래를 완성한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기형적으로 발전한 공장식 축산업 속에서 옥자를 지키기 위해 미자는 자본주의적 방식인 거래를 한다. 이 결말에서, 체제는 건재하다. 미자는 체제에 순응했고, ALF 단원들은 모두 체포됐다. 슈퍼돼지를 더 싼 가격에 공급하겠다는 낸시 미란도의 말은 돼지를 기절시키는 총 소리로 실현된다. 옥자와 미자가 걸어가는 길 양옆으로는 여전히 많은 슈퍼돼지가 갇혀있다. 열차를 파괴했던 봉준호 감독은 언뜻 다시 그의 이전 작품으로 회귀한 듯 보였다.

 

 

그러나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자가 미란도 축산 공장을 빠져나갈 때 슈퍼돼지 한 쌍은 자신의 아기를 철장 밖으로 내보낸다. 옥자와 미자는 아기 슈퍼돼지를 숨겨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 옥자는 이제 물고기를 잡지 않는다. 닭들도 닭장에서 벗어나 마당을 자유롭게 거닌다. ALF는 신입 단원을 모집했다. 모든 것이 똑같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과거와 다른 디테일이 숨어있다. <옥자>는 <설국열차>와 달리 작은 디테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거창한 체제 전복뿐 아니라, 내 삶의 작은 부분들을 고쳐나가는 것 역시 희망을 꿈꾸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 구출한 아기 돼지와 마당에 풀려있는 닭

ⓒ NETFLIX <옥자> 캡쳐

 

<설국열차>가 체제의 파괴를 대안으로 제시한다면 <옥자>는 체제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변화들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다른 듯 보이는 두 영화는 세상을 바꾸는 다른 방법들을 소개한다. <설국열차>의 ‘거시적인 파괴’와 <옥자>의 ‘미시적인 변화’ . 봉준호 감독은 다음 영화에서 무엇을 선택할까? 차기작이 나올 때까지 어떠한 예측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과연 세상을 변화시킬 방법은 무엇인가?”

 

글. 이스국(seugwookl@gmail.com)

특성이미지. 넷플릭스 

 

참고문헌

강수환, 「‘인간’, 부조리와 ‘괴물’의 출현 장소 –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을 중심으로」, 『한국학연구』 39,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