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대상 범죄는 끝이 없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지각없는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왜 난리냐”라는 말을 했을 만큼 여성 대상 범죄는 너무 자주 일어나서 누군가는 거기에 무뎌진다. 여성 게임 유튜버인 갓건배를 향한 살인 예고와, 강남역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토일렛’은 수많은 여성 혐오의 양상 중 하나다. ‘무개념녀’에게 현실에서 ‘정의구현’ 하기 위해 찾아가는 남성 네티즌은 예전부터 있었고, 여성 대상 범죄를 오락 영화로 소비하는 패턴도 익숙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을 새삼스럽게 보고 있고, 새삼스럽게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오버워치 게임 영상을 업로드하는 갓건배라는 유튜버는 남성 게임 유저들을 미러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곧 상당한 액수의 후원금을 받게 됐고, 그걸 본 남성 유튜버 김윤태는 자신의 방송에서 20만원이 후원금으로 들어온다면 지금 당장 갓건배를 죽이겠다고 한다. 결국 사람들은 정말로 20만원이 넘게 후원을 했고,  그는 갓건배의 주소지로 추정되는 곳을 제보받는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영화 ‘토일렛’ ⓒ스토리제이

 

영화 ‘토일렛’은 자신들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여성들을 살해하는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다. 갓건배 살해 협박과 영화 ‘토일렛’ 제작, 두 사건은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날 화제가 됐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이 사건들은 ‘여성혐오’의 콘텐츠화,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쉬’라는 같은 원인을 공유한다. 어쩌면 이 두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비극이 아니라, 여성 혐오가 곳곳에서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성 혐오’라는 콘텐츠

 

강남역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영화의 시놉시스가 공개되자 사람들은 발생한 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사건을 영화화했다는 데에 경악했지만, 더 놀라운 것은 토일렛의 주연배우가 확정된 것이 작년 9월이었다는 점이다.  사건 발생후 불과 몇 개월이 지나서였다. 감독은 강남역 사건을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제작할 생각을 아주 일찍부터 한 것이다. 여성 대상 살인 사건은 곧장 ‘판매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된다. 수많은 여성이 재발 방지를 위해 혐오 범죄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남성인 누군가에게 이 사건은 스릴러 영화의 소재에 불과했다. 한국 스릴러 영화 속 살인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관객은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포르노에 가까운 폭력을 ‘감상’한다. 여성들의 죽음 위에서 남성 인물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고, 스릴러라는 장르의 쾌감은 증폭된다.

 

ⓒ한국경제

 

남성 BJ의 유튜브 콘텐츠에는 여성 혐오가 난무한다. 헌팅을 한다며 촬영 의사가 없는 여성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채팅창에서는 그 여성에 대한 외모평가와 성희롱이 이루어진다. 불과 한 달 전에 일어난 왁싱샵 살인 사건만 봐도 남성 BJ는 왁싱 시술을 포르노적으로 소비하게끔 조장했다. 여성 혐오를 하지 않으면 그들의 방송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면 메갈년, 페미나치 소리가 돌아온다.

 

이런 사회에서 갓건배의 미러링은 죽을죄가 된다. 키 작은 남자가 싫다며 “6.25 전쟁 났을 때 다리 잘린 애인가 싶다”는 말을 하자 남성들은 참전 용사를 비하했다며 너도나도 정의의 사도를 자처했다. 그들은 갓건배를 저격하는 유튜브 콘텐츠에 환호한다. 사람을 죽이러 가겠다는 BJ에게 20만 원을 후원한다. 페이스북에 갓건배를 검색하면 ‘갓건배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모임’, ‘갓건배 애미 뒤진 단체’, ‘갓건배 씨발련’등 원색적인 비난이 목적인 페이지가 상위에 랭크된다. 이들에게 여성에 대한 살해협박, 신상털기 등의 사이버불링은 돈을 걸고 승패를 관람하는 스포츠와 다를 바 없다.

 

 

백래쉬의 시대

 

이러한 콘텐츠가 제작되고 아무렇지 않게 유통되는 구조에서는 남성들의 호모소셜이 작동한다. 백래쉬(backlash)는  사회 변화에 대한 반동을 의미한다. 페미니즘에 관한 백래쉬도 존재한다. 여성의 사회 참여도가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페미니즘 콘텐츠가 상품화되면서 이 사회는 언뜻 여성들이 살만한 곳처럼 보인다. 오히려 남성들은 자신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게 아니냐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여성은 임금 차별, 유리천장, 경력 단절 등의 차별을 겪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성들은 일상 속에서 데이트 폭력, 여혐 범죄, 사이버불링의 타깃이 되기에 십상이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을 뿐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남성들은 조금 나아진 상황에도 크게 반발하여 여성 차별이 더 심했던 과거로 회귀하려 한다. 역사는 진보하고 인류의 생활이 과거에 비해 나아져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본인들도 그러한 진보로 인해 누리고 있는 것들이 있으면서 여성에게는 진보를 허락하지 않는다.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일베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페미니즘은 너무 과격해서 동조할 수 없다”는 일반 남성에 이르기까지, 양상은 다양하다.

 

갓건배 살해 협박과 토일렛 제작은 백래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게임 내에서 남성 유저들의 성추행이나 여성 유저를 향한 모욕적 발언은 건너뛴 채 미러링에만 분노한다. 유독 여성에게만 높은 도덕적 기준을 들이밀고, 여성이 한 잘못에만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 역시 차별이고 혐오다. 갓건배가 한 말에 비해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수위가 지나친 건 사실이다. 혐오와 소수자 조롱을 남발하던 남성 BJ 중 누구도 살해 협박을 받지 않았다. 갓건배에 대한 저격에 열광하는 이들은 이런 사실은 건너뛰고 여성이 감히 미러링을 하며 남성 혐오를 조장했다는 것에만 집중한다. 여성 혐오가 만연한 사회는 탈 맥락 화 시키고 “이미 평등한 사회인데” 유난 떠는 것쯤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강남역 사건은 그 논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명백한 혐오 범죄를 그저 ‘묻지 마 살인’이라고 명명하는 사회에서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상황에 토일렛 같은 영화가 제작된다. 수많은 여성이 혐오 범죄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사실은 외면하고, 남성이 여성에게 무시당해서 살인했다는 범죄자의 시각에 이입해 끔찍한 비극을 스릴러로 소비한다.

 

명분은 필요 없다

 

ⓒ 이상훈 감독 페이스북 갈무리

 

논란이 되자 영화 토일렛의 감독은 자신의 SNS에 해명글을 올렸다.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감싸는 영화는 아니”며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려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게 가능할까? 경종을 울리는 것은 혐오범죄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 아직 이 사건을 혐오 범죄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 상황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복수하는 영화라면 여성 대상 범죄가 어떻게 소비될지는 뻔하다. 이 영화가 범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기도 하거니와 지금은 경종을 울릴 때가 아니다. 여성 대상 범죄는 혐오에 기인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려야 할 때다.

 

여성을 살해하겠다며 신상털기를 하고 동조한 이들에게도 명분은 있다. 남성 혐오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여성에 의해 발화되는 남성 혐오라는 것이, 정말로 여성 혐오만큼의 힘을 가질 수 있냐고. 갓건배라는 개인이, 더 나아가 여성들이 “키 작은 남자가 싫다”고 하면 정말 키 작은 남자가 사회적으로 열등한 존재가 되나? 아니다. 열등한 존재가 되는 것은 또다시 여성이다. 루저녀 때처럼, 키 작은 남자를 싫어하는 여성만 ‘천하의 나쁜 년’, ‘남자 외모를 따지는 김치년’이 된다. 이 와중에도 ‘메퇘지’ 소리를 하는 남성들의 발화 권력이야말로 파급력이 크다. 어느새 뚱뚱한 여성은 ‘열등감 있는’, ‘성격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됐다.

 

갓건배 살해 협박과 영화 토일렛 제작은 랜덤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여혐을 콘텐츠로 소비하고, 수많은 여성 차별에 눈 감고, 거기에 대단치도 않은 명분까지 더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는 또다시 “이건 개개인의 인성 문제”라고 할 테지만 이건 더 이상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여성 BJ가 남혐을 했고 거기에 분노한 몇몇 이상한 사람들이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해석은 선후관계가 완전히 잘못됐다. 여성 혐오는 만연하고, 여기에 반발하는 여성에게는 언제든 단죄를 내릴 준비가 되어있는 남성들이 차고 넘친다. 이런 현실을 토대로 살해 협박 방송이 유통되고, 토일렛이라는 영화가 제작된 것이다. BJ 김윤태는 범칙금 5만 원이 부과되는 선에서 처벌이 그쳤다. 제2, 제3의 살해 협박 방송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누군가의 신상을 털고 공개적으로 협박해도 벌금 5만 원이면 끝난다고 이 사회가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다.

 

특성이미지 출처 ⓒ유튜브 갈무리, 영화 ‘토일렛’ 포스터

글. 샤미즈(ndhhdm90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