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고, 부안여고, 내서여고 … 언급하지 못한 학교들, 그리고 아직 공론화되지조차 못한 학교들까지, ‘교실 내 여성혐오’는 더이상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은 ‘여성’이라는 젠더권력 속 약자성과 더불어 ‘학생’이라는 약자성을 이중으로 경험합니다. 고함20은 반복되는 학교 안의 젠더폭력 문제를 정리하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교실 내 여성혐오] 기획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여성’ ‘학생’이어서 겪어야 했던 일들에 대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해줄 이야기입니다.

 

학교에는 다양한 폭력이 존재한다. 관계를 이루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폭력의 양상은 달라진다.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일련의 교실 내 여성혐오 고발들은 유독 한 가지 관계에서 나타나는 폭력의 양상을 잘 보여주었다. ‘남교사-여학생’의 관계다.

 

‘젠더’권력을 가진 ‘교사’

 

여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72명의 여학생이 두 명의 남교사에게서 성추행을 당했고, 경남 창원의 한 여고에서는 남교사가 교실에 몰카를 설치했다. 우신고와 부안여고에서는 남교사들에 의한 성희롱, 성추행, 여성혐오적 발언들이 행해져 왔음이 고발되었다. 관계의 양상이 조금 정리되는가? 그렇다, 이 관계의 많은 경우에서 남교사는 가해자고 여학생은 피해자였다.

 

ⓒ오마이뉴스 기사, 트위터 캡쳐 갈무리

 

남교사의 여학생에 대한 폭력에는 대부분 성범죄가 포함되어 있었고, 여성혐오적 발언들은 ‘일상적’이었다. “너는 예쁘니까 대학 가서 책을 들고 의대 앞에 서 있어라”,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의 현명한 아내, 혹은 어머니가 되어라”, “남자는 공부 못하면 막노동이라도 하지만, 여자는 공부 못하면 몸을 팔게 될 수도 있다”, “남학생은 본래 머리가 좋지만, 여학생들은 노력으로 (차이를) 메꿔야 한다” 등 여학생을 누군가의 아내와 어머니로만 상정하고 여성의 능력을 비하하는 발언들은 ‘여전히’ 남교사들(특히 중년의 남성 교사)에 의해 발화된다. 2017년의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많은 남교사는 여성을 남성 서사 속의 조연으로 인식하고 있고 여학생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학교라는 시스템이 쥐여준 권한은 남교사들의 범죄를 더 저열하게 몰고 갔다. 그들은 “네 생활기록부를 내가 쓴다는 거 모르니? 좋은 대학 안 가고 싶니?” 식의 말들로 성범죄와 여성혐오적 발언들이 공론화되는 것을 막았다. 언제는 좋은 어머니, 현명한 아내가 되라더니 ‘성공하고 싶지 않냐’면서 위협했다. 단언컨대 남교사들은 본인이 교사-학생 간의 수직적 관계 속 ‘우위’를 점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반면 여학생은 대한민국 중고등학교 사회에서 자신의 약자성을 일상 속에서 느끼고 두려워한다. 실제로 공론화가 시도된 거의 모든 학교에서 입막음을 위한 협박이 있었고, 여학생들은 협박을 받기 전부터 사건을 공론화하면 미래에 해가 될 것을 걱정했다고 밝혔다.

 

공론화 과정의 어려움 ⓒ트위터 갈무리

 

교사-학생, 여성-남성 관계 속 이중의 우위를 통해 남교사의 권력은 공고해졌다. 이 속에서 여학생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엄청나다. “공론화를 포기했었다(트위터 ‘N여자고등학교’ 계정)”, “학교 안에서 학생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다(청소년신문 요즘것들 ‘내서여고 남교사 몰카 사건 최초 고발자 인터뷰‘)” 식의 반응은 그것을 증명한다. 비대칭적 구도 속에서 남교사는 이중으로 강해지고 여학생은 이중으로 약해진다. 이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억압 속에서 많은 여학생이 보편적으로 겪는 경험이다. 즉 ‘미친 남교사 한 두 명’의 문제가 아니라 ‘고통받는 여학생 다수’의 문제다.

 

결국, 문제는 젠더다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교실 내 여성혐오가 고발될 때마다 “왜 여혐 프레임에 갇혀서 문제를 바라보느냐?”, “미친 선생 한두 명이 잘못한 것뿐이다”, “교권의 횡포일 뿐, 여성혐오는 아니다”라는 반응들이 나온다. ‘일부’ 남교사가 잘못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 혹은 “제자를 아끼는 마음에 그랬을 건데 야박하다”는 망언들은 남교사의 보편적인 ‘여성혐오’를 인정하려조차 하지 않는다.

 

몰카를 설치한 남교사에 대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연합뉴스 기사, 페이스북, 네이버 뉴스 댓글 캡쳐 갈무리

 

하지만 교실 내 여성혐오 문제의 핵심이 ‘젠더’라는 것은 여교사-남학생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두 달 전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 남학생들이 여교사의 수업 중 집단으로 자위 행위를 했다. 이외에도 여교사를 대상으로 한 남학생들의 몰카 범죄와 음담패설 등도 수면 위에 떠올랐고, 교육부에 따르면 여교사를 대상으로 한 학생들의 성범죄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인다. 설문결과에 따르면 70퍼센트 이상의 여교사들이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호소했으며, 그들은 여교사가 항상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여교사는 남교사와는 달리 ‘교사’의 권위보다 ‘여성’으로서의 약자성을 훨씬 크게 경험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젠더권력은 강력하다. ‘여성혐오’가 교실 내 여성혐오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면, 왜 많은 경우 여교사는 ‘피해자’이고 남교사는 ‘가해자’인가? 왜 남교사의 여학생에 대한 성범죄는 ‘교권의 횡포’ 때문이고 여교사에 대한 남학생의 성범죄는 ‘교권의 추락’ 때문인가? 이 이중 잣대에 따르면 진정 여교사와 남교사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교실 내 여성혐오의 등식은 교사-학생의 관계를 따지는 것 이전에,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위치를 부여하지 않는 데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결국 문제는 ‘젠더’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서 교실 내 여성혐오는 해결될 수 없다.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 맞다 ⓒ네이버 뉴스 댓글 캡쳐

 

너는 나다

 

본지의 인터뷰 과정에서 한 여학생은 “공론화 이후, 내가 (가해자) 선생님을 괴롭힌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애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들의 고발이 더 이상 지워지지 않기를, 그들이 고통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맥락을 따져보면 선생님의 의도는 여성혐오가 아니었다”, “(남교사의) 교권의 횡포일 뿐이다”, “미친 선생 한두 명의 문제다”라는 말은 피해자들을 자기검열과 2차가해의 늪으로 더 끌어당기고, 문제를 축소시키며 가해자 중심적인 시각을 재생산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학교라는 척박한 공간에서 여성혐오를 고발한 여학생들, 당신들의 용기에 ‘존경스럽다’고 전하고 싶다. 이 기사를 쓰면서, 몇 년 전 무력하게 교실에 앉아서 ‘내가 너무 예민한 거야’라고 애써 되뇌던 여학생이 떠올랐다. 바로 나였다. 그래서 ‘너는 나고 나는 너다’. 용기를 내준 당신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연대’를 표한다고 전한다.

 

 

글. 모킹버드(sinjenny97@naver.com)

 

기획 [교실 내 여성혐오]

기획. 모킹버드, 망고, 인디피그, 이스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