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고, 부안여고, 내서여고 … 언급하지 못한 학교들, 그리고 아직 공론화되지조차 못한 학교들까지, ‘교실 내 여성혐오’는 더이상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은 ‘여성’이라는 젠더권력 속 약자성과 더불어 ‘학생’이라는 약자성을 이중으로 경험합니다. 고함20은 반복되는 학교 안의 젠더폭력 문제를 정리하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교실 내 여성혐오] 기획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여성’ ‘학생’이어서 겪어야 했던 일들에 대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해줄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와중엔 고발과 공론화 자체가 힘겨웠다는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있다. 7월 여주 사건에선 “(담임에게) 성추행 사실을 밝혔지만 학교 측에 전달되지 않았다”는 증언이 확인됐다. 트위터 계정 ‘부안여고 재학생’은 지난 6월에 이미 “용기 낸 학생들(에 대한) 비난 멈춰주세요”라며 호소하기도 했다. 본지가 인터뷰를 진행한 페이스북 페이지 ‘나는 이우에서 3년 동안 혐오당했다’의 계정주도 공론화 이후 “학년 내 반응이나 이우학교 내 반응이 힘들었다”고 전했다.

 

집단의 폐쇄성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지속적 폭력은 이제 [교실 내 여성혐오]의 하나의 경향성처럼 보인다. 이때 폐쇄성은 두 가지 권력을 전제한다. 학교라는 세계의 보수성이 학생으로서의 목소리를 지우려 한다면, 그 안의 남성세계, 즉 여성의 삶의 문제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기존의 폭력을 당연시하는 일종의 호모 소셜리티는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그보다 더 끈질기게 지우려 한다. 사건 이후 여학생 당사자들이 겪은 일련의 경험이 바로 그 과정 자체다.

 

용서해야 한다고 했다

 

트위터 계정 ‘부안여고 재학생’이 6월 26일 게재한 트윗엔 “가해자라고 지목되는 교사분들 제발 감정에 호소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발언이 포함돼 있었다. 비슷한 일들이 일반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해당 발언은 상징적이다. 가해자의 (종종 “그런 게 아니었다”는 식으로 이루어진) 사과나 해명이 사건의 양상을 ‘피해자가 용서해줘야 할’ 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일반적인 흐름은 문제가 된다.

 

ⓒ 트위터 ‘부안여고 재학생’

 

“감정은 감정이고 사건은 사건”이라 명시한 ‘부안여고 재학생’ 계정의 트윗처럼, 사건에 대한 사과는 실질적인 사후처리와 별개의 문제다. 가해자의 ‘사과’는 진위를 알 수 없는 개인의 진실성에 의해 유효해지는 것이 아니다. ‘사과’가 의미를 갖는 것은 적절한 제도적(혹은 형사적) 처분, 혹은 피해 배상과 실질적 재발 방지 대책,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피해자 보호조치 등이 적절히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다. 가해자의 감정에 대해 말하기 전에 사건이 제대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 옳다.

 

부안여고에선 교장이 가해자로 지목된 ‘국어교사 김씨’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학교 측에선 일명 ‘사과 퍼포먼스’를 준비하다가 매체의 관심으로 인해 일정을 취소했다. 최근의 여주 성추행 사건에선 학교 측에서 교내 성폭력을 ‘경찰로 넘어가야 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정황이 고발됐다.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를 통해 교사의 성폭력적 발언이 논란이 됐던 부산 국제고의 경우 문제 교사가 직접 반을 돌며 사과를 하고 다녔으며 그 과정에서 ‘사과를 했으니 받아 달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우학교에선 사건도 문제지만 “공론화로 상처를 입은 가해 지목 학생의 마음도 생각해야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돌았다.

 

모두 틀렸다. 단순히 사표를 수리하기 전에, 감사를 통한 정확한 경위 파악과 적절한 처분을 가려내야 함이 옳고, 보여주기식의 사과 ‘쇼’가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학교 단위의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성폭력 사건의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맞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용서를 위해, 사전협의 없이 대면 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은 공간분리가 되지 않아 발생하는 2차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사과를 받아들이든 말든, 사건을 키우든 말든 그 또한 오롯이 피해 당사자의 문제이므로 어떤 방식의 압박이나 개입이 있어서도 안 된다.

 

혐오가 아니라고 했다

 

사건을 둘러싼 여론과, 사건이 일어난 학교의 내부 구성원들이 보여준 일부 반응은 인상적이다. “그게 왜 여성혐오냐”. 1년 전의 강남역 사건, 최근의 왁싱샵 사건 등과 마찬가지로 혐오 사건에 대한 인지 논란이 불거졌다. ‘여성혐오’ 문제를 공론화의 전면에 내세운 페이스북 페이지 ‘나는 이우에서 3년 동안 혐오당했다’는 “온/오프라인에서 많은 비난이 있었다”며 공론화 이후의 어려움을 밝혔다. (혐오발화에 대해)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이우학교)거나, 고발자들이 별것도 아닌 일에 영웅 심리로 시비를 건다(내서여고)는 등의 여론이 그 어려움을 대변할 것이다. 이우학교의 경우 한 학생이 ‘이우에서 한남충으로 살아남기’ 페이지를 기획하는 소요가 일어나기도 했다. 트위터 계정 ‘N 여자 고등학교’의 인터뷰 내용은 상징적이다.

 

“현재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교장과 남교사 몰카 사건인데, 뜬금없이 규정 이야기가 왜 나오느냐는 의견이 있다. … 논점을 벗어난 물타기 발언이 아니다.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쯤으로 여기는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서는 학생들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일체의 학교 문화와 규정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 N 여자고등학교 계정 인터뷰 (출처 : “남교사가 여고 교실에 몰카를 설치했다” 고발자들은 지금 괜찮은가?  http://www.goham20.com/55869/ )

 

ⓒ 페이스북 페이지 ‘나는 이우에서 3년 동안 혐오당했다’

 

다시 말해 사건의 본질,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흡하다. 몰카나 성추행 같은 가시적인 성범죄의 경우에도 사건의 젠더 폭력적 성격을 이해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혐오 발언과 같은 상대적으로 작게 취급되는 사건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피해 당사자에겐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가 누군가에겐 ‘남녀갈등’이란 말로 포장된 사상 투쟁이 된다. 더군다나 [교실 내 여성혐오] 사건들은 교내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매일 보던 친구가, 선생님이 ‘여성혐오자’로 지목되는 것에 분노한 일부 구성원들은 사건을 젠더폭력과 연관 짓는 것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고, 그것은 곧 고발자들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 여성혐오란 단어를 꺼내든 이들은 금세 ‘학교 망신’ 시키는 예민한 애들, 혹은 프로 불편러, 넘어서 ‘꼴페미’나 ‘메갈’로 매도되기에 십상이었다. 평소의 언행으로 고발자가 누군지 추측하거나, 온라인상의 접촉을 이용해 신상을 밝혀내려는 시도 또한 동반됐다.

 

문제가 일어난다면, 그것도 지속적으로 하나의 경향성을 가지고 일어난다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학생 간의 언어 성폭력, 교사의 성희롱, 성추행을 포함하는 교내 성폭력 사건은 헤테로 섹슈얼리티 위에서 구성되는 젠더적 맥락을 경향적으로 답보한다. 이에 대한 부정과 은폐, 또는 색출의 움직임은 사건의 사회적 맥락을 개인의 일탈로 단순화시킨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며, 그 이전에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막고 그들을 오히려 가해자화 시킨다는 점에서 2차 가해의 일환이다. 그리고 다시 그게 여성혐오다.

 

글. 인디피그(ghin28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