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실시간 검색어 1위는 한 폭행사건이었다. 부산에서 중학생들이 한 학생을 폭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따로 있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코너였다. 한 네티즌이 이번 사건을 예로 들며,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소년법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 대해 처벌보다 교화에 목적을 두도록 판결하는 법이다. 이를 폐지하자는데 동의를 표한 사람은 1만 7000명을 순식간에 넘어섰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두려워졌다. 폭행 사건이 아니라, 소년법 폐지에 찬성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우리 안의 폭력

 

청소년 범죄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저런 애들은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것이 답이다”라거나 “봐주지 말고 사형시켜라” .모두 가해자에게 문제를 찾고,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하지만 청소년 개인이 악해서 범죄가 벌어지는지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청소년이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기 쉽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말투가 싸가지 없어서” 폭행했다는 가해 청소년의 이야기는 어딘가 익숙하기도 하다. 나는 TV, 영화, 학교, 가정 등 한국 사회 전반에서 그와 비슷한 ‘폭력 문화’를 보았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파수꾼’ 캡쳐             

 

 

먼저, 대부분의 청소년이 생활하는 학교는 폭력 문화가 만연한 곳이다. 그 문화의 핵심은 “잘못했으면 맞아야지”와 “윗사람에게 대들지 말라”라는 말로 이뤄진다. 학교는 어른과 학생, 가르칠 수 있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사람, 때릴 수 있는 사람과 맞아야 하는 사람으로 위계를 나누며 체벌을 정당화해왔다. 그 속에서 ‘아랫사람’을 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문화로 굳어져있다.

 

학교 폭력도 이와 마찬가지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위계를 나누는 구조와 같이, 청소년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또 다른 위계를 설정하며 ‘아랫사람’을 때리고 괴롭힌다. 가해자 또한 이 구조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달린 댓글 중 하나는 “우리 때 저런 애들은 체육 선생들이 반 죽여 놨는데”였다. 교내의 폭력 구조를 알고 있으면서 문제 삼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오히려 청소년 가해자를 같은 폭력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믿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 학교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훈육과 매질은 무조건 필요하다. 요즘 애들이나 군대보면 한심하다”. 이번 사건에 달린 또 다른 댓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마주한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되고, 군대에서 매질은 필요한 일이 되며, 역시 가해자는 똑같은 폭력으로 억압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처럼 폭력 문화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 그 속에서 합리화되는 학교 폭력과 가정 폭력, 무수한 폭력의 영향을 청소년이 받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멋있는’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를 잠깐만 떠올려 봐도 <친구>와 <신세계>가 있고, ‘쎈 캐릭터‘가 사람들을 때려잡는 씬은 드라마에도 널리고 널렸다. 언제 어디서나 청소년은 폭력이 정당화되는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 속에서 “매질은 무조건 필요하다.”라는 네티즌들의 말, 폭력을 권장하는 사회의 문화, 그리고 가해 청소년의 행동이 서로 얼마나 다른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영화 ‘파수꾼’ 캡쳐

 

 

사회를 덜 폭력적으로 만드는 일

 

소년법 폐지와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는 이야기는 특히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사람은 단지 개인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사회를 살며 구성된다. 그렇기에 ‘악한 개인’은 ‘악한 사회’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소년법 폐지의 논리는 기각한다. 더욱이 한 청소년이 성장하는데에 사회가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일 수 있다. 그런 청소년을 두고, 우리는 그를 사회와 동떨어진 존재로 보며 악마화한다.

 

강한 처벌에 대한 요구도 이와 비슷하다. 사회에 만연한 폭력은 보지 않고, “사형이 답”이라는 댓글을 남긴다.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과 ‘평범한 사람’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폭력을 용인해 온 사회 구조 속에서 가해자를 만든 우리의 책임은 자꾸만 사라진다. 사회가 만든 폭력이 아니라 간단히 악마가 벌인 일이라고 생각할 때, 사회의 책임은 없는 것처럼 비춰지곤 한다.

 

이러한 일련의 반응들 속에서 나는 ‘무서운 게으름’을 느꼈다. 이런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묻지 않는 게으름 말이다. 우리는 단지 악마를 사형시키면 된다는 편한 생각에 빠진 것만 같았다. 폭력을 낳은 구조를 보지 않고, ‘강약약강(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강하다는 뜻)’의 태도를 취하고, 모든 책임을 여성 청소년에게 지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처음에는 화가 났고, 의뭉스러워졌고, 결국엔 부끄러워졌다. 폭력을 옹호하는 사회에 살면서, 그것에 대해 제대로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없는 나 또한, 이번 사건을 만든 원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폭력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과 가해자의 악마화를 지적하는 일이 죄의 무게를 덜어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가 질문해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회가 어떻게 이런 사건을 만들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폭력의 구조 속에 있으면서도 묵인했던 우리 또한 어쩌면 가해자 일 수 있다는 것을. 소년법 폐지가 아닌 그러한 끄덕임이, 우리 안의 폭력을 돌이켜보는 성실함이, 개인보다 구조를 꼬집는 일이 사회를 덜 폭력적으로 만든다고 나는 믿는다.

 

글. 서아람(aramstudio@daum.net)

특성이미지©웹툰 ‘야채호빵의 봄방학’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