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하는 [제 11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이 개막했다. 매년 여성인권영화제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인천여성영화제 등 크고 작은 여성영화제들이 열린다. 여성영화제에선 어떤 영화들이 상영될까? 여성영화제가 낯선 이들을 위해 소중한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성의 주거불안을 이야기하는 <아무 일도 없었다>, 친족성폭력 가해자를 호쾌하게 응징하는 <수지>, 가출청소년이 생리를 시작하며 겪는 일을 다룬 <여자도둑> 등 지난 8일 ‘희망세상일구는 구로여성회’가 주최한 여성영화제 [여성의 삶을 말하다]의 상영작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여성의 주거 불안, 준희를 외면한 얼굴들

 

ⓒ 아무일도 없었다 (2016, 김민숙 감독) 제 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영화 <아무 일도 없었다>의 주인공 준희는 혼자 자취를 하는 여성이다. 준희는 샤워를 하다 침입자의 소리를 듣게 된다. 침입자는 소리를 지르던 준희에게 신고하면 죽여 버린다고, 다시 찾아오겠단 말을 남긴다. 취업준비로 바쁜 준희는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다. 꿋꿋이 생활을 이어가지만 불안 속에서 일상은 망가진다.

 

독특한 것은 영화가 끝내 침입자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쇠 수리공일까, 전애인일까, 집 앞에서 담배를 피던 남자일까? 알 수 없다. 이는 여성의 현실을 보다 집요하게 드러낸다. 누가 가해자일지 모르니 항상 모든 이를 의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는 현실. 동시에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슬픈 현실을. 우리 사회가 그렇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 자신을 지키라고 말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늘 부족하다.

 

영화엔 여러 남성이 등장한다. 그들은 준희를 돕는 듯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준희의 불안을 외면한다. 침입자가 다시 온 거 같다는 준희에게 남형사는 네 착각이라고, 네겐 아무 일도 없지 않았냐고 말한다. 전애인은 네가 너무 예민하다고 마음을 좀 편히 가지라고 권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성의 현실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특별히 매정하거나 무책임한 게 아니라 딱 평범한,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성의 모습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이들의 얼굴을 비추며 되묻는다. 여성의 삶을 구렁텅이로 떠민 건 소수의 가해자인가, 다수의 공감 불능인가.

 

 

여성에게 안전한 집은 없다

 

ⓒ 수지 (2014, 김신정 감독)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최근 SNS에서 ‘자취하는 여성을 위한 팁’이 화제가 됐다. 혼자 사는 여성은 범죄 대상이 되기 쉬우니 남성과 함께 사는 것처럼 꾸미라는 게 글의 요지였다. 길고 세세한 목록은 여성 주거불안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남성 가족의 존재도 주거불안을 해소시켜주진 않는다. 남성이 늘 함께하며 일상 전반을 보호해줄 수 없을 뿐더러 집안의 남성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는 건 가부장제의 환상이다. 

 

영화 <수지>는 주인공 수지는 어린 시절 친부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어느 날 잊고 지내던 친부를 우연히 마주친다. 복싱을 배우던 수지는 그를 통쾌하게 응징한다. 이후 수지는 버스에서 성추행을 당한다.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가해자를 제압한다. 수지의 발차기는 피해자의 역할에 갇혀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성폭력 가해자의 70%는 아는 사람이며, 아동성폭력 가해자의 9%가 친족이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수지’들이 떠오른다.

 

 

ⓒ여자도둑 (2014, 신유정 감독) 제 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영화 <여자도둑>의 주인공 승연은 매 맞은 얼굴로 등장한다. 가출 후 승연의 첫 생리가 시작된다. 생리대를 구하지 못한 승연은 발을 동동거리다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훔친다. 승연은 잠긴 화장실 앞에서 남자 사장에게 덜미를 잡힌다. 상황을 눈치 챈 사장은 승연을 혼내지 않고 말없이 화장실 문을 열어준다. 따스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화장실 앞을 서성이던 사장이 돌연 승연이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며 영화가 끝이 난다.

 

어린 승연은 성폭력 피해를 입는 걸까, 성매매를 하게 되는 걸까. 모호하게 그려진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현실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깨닫게 한다. 남사장이 끝까지 승연을 도울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 빈약한 상상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길거리, 일터, 내 집. 여성의 일상에 촘촘히 들어앉은 성폭력 피해 경험에서 비롯된다.

 

<수지>와 <여자도둑>은 여자 ‘되기’의 사회적 의미를 드러낸다.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 여성 3명 중 2명은 성폭력•성추행•성희롱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이는 ‘여성’의 경험으로 공감 받지 않는다. 여성폭력은 쉽게 지워진다. 우리의 경험은 특이하고 사소한 것으로, 우리의 감정은 과하게 예민한 것으로 왜곡된다. 여성은 늘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그땐 운이 나빴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내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여성의 삶을 말하다, ‘우리가’

 

ⓒ여성인권영화제 FIWOM

 

안전과 자유. 치안 제일 국가라는 대한민국은 유독 여성에게만 이를 보장하지 못한다. 혹은, 않는다. 여전히 어떤 이들은 말한다. 여성은 비교적 편안하게 살지 않냐고. 현실이 지워져서 공감 받지 못하는 건지, 공감 받지 못해서 지워진 건지. 선후관계를 따지기 어려울 지경이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알탕 영화’에선 젊고 예쁜 여성 한두 명만 나와 눈요깃거리로 소비된다. 이 폭력적인 영화들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여성영화는 불편하다. 그 속에 재현된 삶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정말 우리에겐 아무 일도 없었는가,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다고 믿도록 만들어진 것인가. ‘개인적인’ 피해경험을 ‘구조적인’ 폭력으로 사유하는 일은 버겁다. 피해가 반복되기 쉽다는 진실을 마주해야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내가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고 싶다. 이젠 우리가 말할 차례다. 왜 공감하지 못하냐고, 우리의 삶이 어떤지 보라고. 말해지는 것을 보면 말해도 된다는 위로를 얻게 된다. 드문 위로기에 더 소중하다. 올해 [여성인권영화제]는 9월 20일~24일 압구정 CGV에서 열린다. 그곳에서 우리가 만나 여성의 삶을 말하며, 함께 더 나은 현실을 상상할 수 있길 바란다. 

 

글. 도이니 (soein1221@naver.com)

특성이미지. ⓒ 아무일도 없었다 (2016, 김민숙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