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방영된 tvN 드라마 「혼술남녀」는 한국 청년들의 아픈 일상을 꾸밈없이 그려내 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 환경은 이런 시선과 달리 부조리로 가득했다. 잘못된 시스템은 tvN 신입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피디를 자살로 이끌었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3일 후, 거리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촛불시위가 시작됐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적폐 청산을 위한 위원회가 정부 부처별로 만들어지는 지금, 방송업계 문제는 얼마나 개선됐을까?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 정책 토론회

 

고 이한빛 피디의 1주기를 앞두고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실태 개선을 위한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는 〈tvN-사망사건대책위〉 방송제작환경개선 연구모임에 소속된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활동가와 김동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가 맡았다. 이들은 각각 “드라마 제작의 구조와 현장 스태프의 노동실태”와 “노동인권의 관점에서 본 드라마 제작현장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발제했다. 토론에는 △안병호 영화산업 노동조합 위원장 △최영기 방송사 불공정행위청산과 제도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회장 △신종철 방송통신위원회 편성평가정책과장 △임승순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이 참석했다.

 

 

우리의 1시간을 위한 그들의 24시간

 

 

“방송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자 한 것은 사회에 대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프레임 안에 담긴 이 세상은 우리가 꿈꾸던 곳이 아니었다. 우리도 사람이다.”

 

대책위 자료집에 따르면 방송업 종사자들은 방송 제작 현장에 유입된 경로로 모두 을 꼽았다. 이들은 좋은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열정’과 ‘꿈’ 에는 방송사의 ‘적폐’가 숨어있었다.

 

안은정 활동가는 방송 업계의 고용형태, 노동 시간, 임금, 기본적인 권리의 부재, 인권 침해를 지적했다. 현재 드라마 제작 인력에서 프리랜서 고용 형태는 상당수를 차지한다. 고용인의 책임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책임은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프리랜서 계약서에는 노동자가 사업에 피해를 입힌 경우를 대비한 경고 조항들로 가득하다. 불합리한 고용 형태는 많은 문제점을 낳는다. 모든 권한을 독점하는 제작사, PD의 판단에 따라 프리랜서 노동자는 일이 진행되는 중간에 팀에서 빠지는 일이 발생한다. 임금은 최저 시급에 못 미치는 4,980원이며, 그마저도 지급이 지연된다. 제한 없는 장시간 노동이 반복되며 노동자의 휴식시간이나 수면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아파도 쉴 수 없으며 일상적으로 성폭력과 언어폭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권위적인 분위기로 인해 문제는 공론화되지 못 한다.

 

ⓒ 한국일보 PRAN 영상 캡쳐

 

문제는 불공평한 계약관계에만 있지 않다. 방송 노동은 전문성이 필요한 직종이다. 과거에는 팀이 견고하게 유지되면서 막내들의 성장이 담보됐었다. 그러나 지금 현장은 더 이상 배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촬영, 조명팀의 막내는 장비 선을 정리하고 배터리 교체를 할 뿐이다. 안 활동가는 방송업계가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에 의해 움직이는 점을 지적했다. 누구든 막내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분절된 단순 노동은 종사자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카메라 앵글 속에서 열정을 꿈꿨지만 앵글을 볼 수 있는 현장은 거의 없다.

 

 

법과 제도에서 외면당한 프리랜서 노동자

 

 

김 변호사는 현 상황이 방송업 종사자가 프리랜서 계약을 맺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에는 프리랜서를 개인 사업자로 분류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계약의 실질적인 부분을 따져봤을 때 노동자가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에 따라 근로자성이 판단된다. 방송업계 종사자는 대부분 방송사, 제작사와 종속적인 관계 속에서 근로를 제공하기에 근로자성이 인정된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노동자’라는 해석이 힘을 얻는 이유다.

 

근로자성을 인정받아도 또 다른 문제가 남아있다. 근로시간 특례제도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1주간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1일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하지만 방송산업이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에 대한 특례를 인정하는 업종에 포함되면서, 관련 종사자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됐다.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에 대한 특례 제도의 취지는 엄격한 근로조건 규제로 공중 생활의 불편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사업에 한정해 연장 근로를 허용하기 위함이다. 김동현 변호사는 드라마 제작이 공익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드라마 제작이 공익성이 높은 뉴스 제작과 동일한 목적 수행사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토론회에서는 드라마 제작 종사자들을 근로시간 특례 범위에서 제외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오늘날의 방송업계 노동은 적폐

 

 

최영기 회장은 이한빛 PD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밝혔다. 죽도록 누군가 내버려 뒀다는 것이다. 물론 과도한 업무환경도 자살을 선택하게 된 이유다. 하지만 최 회장이 주목한 부분은 이한빛 PD의 유서에서 자신이 ‘갑질’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혐오가 확인된다는 점이다.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는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살해했다.

 

ⓒ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페이스북

 

최 회장은 문제 해결이 꼭 필요함을 강조하며, “이러한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분명히 제 2의 이한빛 PD는 다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스템은 적폐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실 이한빛 PD의 죽음 또한 방송업계에서 이름 없이 죽은 사건들의 반복이다. 이미 많은 방송 산업 종사자들의 죽음이 있었다. 지금도 많은 종사자들이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방송산업 종사자를 절망으로 밀어내는 적폐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삶과 맞닿있다.

 

글. 이스국(seugwookl@gmail.com)

특성화이미지. ⓒ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참고문헌

〈tvN-사망사건대책위〉 방송제작환경개선 연구모임, 『카메라 뒤에는 사람이 있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