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추석이나 설에 집안일을 한 적이 없다. 음식 준비부터 설거지, 뒷정리까지 모두 집안 여성 구성원들이 하고 있었지만, 나만은 예외였다. 아직은 어린 학생이기 때문에, ‘응당 일해야 할’ 여성인 나는 가사 노동에서 면제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가졌던 여러 정체성들 중에서 여성보다는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이 가족들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더 크게 부각되었던 것 같다. 그 덕에 나는 할아버지, 아빠, 외삼촌들 옆에 편히 앉아서 TV를 보고 기껏해야 상에 숟가락이나 놓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물론 TV 앞에 둘러앉은 멤버 중 성인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일하지 않는 유일한 여성 가족 구성원이었다.

ⓒ웹툰 ‘며느라기’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이 아니거나, ‘여성’보다 눈에 띄는 정체성으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숨길 수 있는 위치, 이를테면 어린이, 학생, 취준생으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 남성 구성원들과 내가 오랜 세월 이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풍경에 눈감고 안락함을 즐길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다. 명절마다 성인 여성 가족 구성원은 ‘여성’이라는 정체성만으로 묶여 가사 노동에 동원되었다.

 

명절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일하는 이들의 성별은 변하지 않았다. 이 구조가 부당하다는 걸 몰랐다면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별 문제 제기 없이 숱한 명절들을 지나왔다. 태어나기 전부터 지속되어 온 당연함을 흔들 힘이 없었을뿐더러, 절실함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같이 빈둥대던 남자들과 공범이 되었다.

 

성인 여성이 된 나는 점차 그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앉아있는 것이 더 눈치가 보여 부엌을 얼쩡댄다. 일하는 것 자체는 억울하지 않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공평하게 분담해야 할 일을 지금까지 안 하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범 중 나만 일하는 처지로 바뀌는 것은 억울하다. 나보다 약 30년에서 많게는 60년 이상 직무 유기해온 성인 남성 가족 구성원들은 이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 편안한 명절을 보낼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어리다는 이유로 일하지 않는 사촌 남동생은 성인이 되어도 나와 같은 부담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 집에서 명절에 음식을 하고, 상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과일을 깎은 사람 중에 남성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 억울한 것은 나의 노동의 가장 큰 수혜자가 내가 빚을 진 ‘우리 집’ 여자들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평균 여성 초혼 연령(통계청 ‘2016년 혼인·이혼 통계’ 기준 약 30.1세)인 약 30살에 결혼을 한다고 가정하면 내가 온전한 우리 집 구성원일 수 있는 기간은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 한국의 시가 중심적, 남성 중심적 명절 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나는 엉뚱한 ‘남의 집’ 남자들을 위해 훨씬 긴 세월을 노동하게 된다. 원래는 남의 집 여자들이었던 지금의 우리 집 여자들의 삶이 그러하듯 말이다.

 

그 집 남자들은 우리집 남자들처럼 어릴 땐 자기 집 여자들의 밥상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다가 나이가 들면 새로 온 남의 집 여자들의 고생을 먹겠지. 나는 어릴 때 놀았던 대신 지금 일하게 되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집 가부장 구조의 피해자로 재편입 되겠지만, 남자들은 영원히 떳떳하게 명절마다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것이다. 같이 빈둥대던 사람들의 운명이 성별 하나로 이렇게나 갈린다.

 

 ‘우리 집’ 사람이 되었다는 명목으로 ‘남의 집’ 남자들을 위해 일하는 여자들

ⓒ웹툰 ‘며느라기’

 

내 삶이 페미니즘과 맞닿으면서부터, 어릴 때는 마냥 좋기만 했던 아빠가, 할아버지가, 외삼촌들이, 큰아빠가 마음 편하게 좋지만은 않다. 특히나 평소 가려져 있던 집안의 성차별적 인식이 까발려지는 명절에는 더 그렇다. 어김없이 TV 앞을 떠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표정을 구기다가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외삼촌의 회상을, 맛있는 거 사 먹고 따뜻하게 다니라며 용돈을 찔러주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일수록 더 큰 막막함과 무기력이 밀려온다. 나를 아끼는 이들에게 적대감을 느끼는 것이 힘겹게 느껴졌다. 우리 집 여자들 또한, 이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기에 오히려 그 ‘당연함’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명절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여자가 명절 음식 하는 건 오랜 전통이니까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계속 음식을 한다. 할머니는 여자애가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자꾸만 사과를 깎아보라고 양손에 사과와 과도를 쥐여 주신다. 그러면서도 우리 손녀는 능력을 길러서 남편이나 자식 때문에 포기하는 것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라고 말하신다. 이 여성들의 입에서 가부장의 언어와 여성주의의 언어가 모순적으로 공존할 때, 페미니즘 리부트 세대인 나는, 입버릇처럼 ‘가부장제 뿌셔’ 를 외친다.

 

윗세대 여성들에게 공감과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절대 그들처럼은 살고 싶지 않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앉아있는 남성들에게 가사 노동에 동참하라고 말하기. 사촌 남동생이나 오빠에게 시키지 않는 일을 나에게는 시키는 어른들에게 이것이 성차별이라고 항변하기. 결혼할 때 각자 집안 행사는 각자 챙기기로 약속하고 시댁 제사와 명절 준비에 참여하지 않기. 대신 시댁 식구들에게 외식 제안하기. 혹은 결혼하지 않기. 떠오른 모든 항목이 쉽지가 않다. 그래도 내가, 우리가 이 지긋지긋한 가부장 구조를 깨부숴야지, 하며 투쟁의 의지를 다졌지만, 올해에도 눈에 보이는 소득 없이 명절은 지나가고 있다.

 
글. 땡치(see03142@naver.com)
특성이미지. 웹툰 며느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