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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나위 없는’ 명절을 혐오한다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그 나이에 연애 안하면 결혼은 어떡하려고 그러니?”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이십대 중반 여성이 되면서 여전히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친척 어른들의 걱정을 한 몸에 사게 되었다. 해가 바뀌자마자 설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혹감에 되묻고 싶었다.  이런 명절을 매년 겪는 제가 결혼하고 싶을 것 같은가요?

 

명절 준비는 새댁 일이죠! ⓒ대한민국 정부 트위터(@hellopolicy)

 

서른 여명의 대가족에 며느리는 엄마 한 사람 뿐이었다. 엄마는 홀로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었는데도 명절노동도 도맡아야 했다. 명절 일주일 전부터 우리 집 냉장고엔 대가족을 먹일 식단과 식재료가 빼곡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연휴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엄마는 직장에 다니느라 밀렸던 집안일을 했다. 아빠, 동생, 나는 엄마의 재촉에 못 이겨 대청소를 도왔다. 잡다한 집안일들을 모두 끝내고 나서야 엄마는 비로소 요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간혹 다른 친척집에서 명절을 치를 때도 있었는데 엄마는 연휴의 시작과 함께 그곳으로 혼자 먼저 출발했다. 그럴 때면 엄마의 청소를 ‘돕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어린 나와 동생은 마냥 신났다. 연휴를 편히,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며.

 

 

어느 명절불편러의 일대기

 

 

삼촌의 결혼으로 며느리가 둘로 늘었다. 사내커플이었던 신혼부부는 명절마다 제법 트러블을 겪는 듯 했다. 숙모가 우리 집에 음식을 만들러 오는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종종 아예 오지 않기도 했다. 줄어들 줄 알았던 엄마의 노동은 줄어들지 않았다. 엄마는 명절 준비하러 오는 것을 꺼리는 숙모에게 섭섭하다고 했다. 엄마의 서운함을 이해하면서도, 그걸 이해하는 내가 싫었다.

 

공부를 제법 열심히 했던 청소년 시절, 거실에 모여 앉은 친척들은 공부는 잘 하고 있냐며 안부를 묻곤 했다. “요즘 세상엔 남자 여자 다를 게 뭐 있냐. 능력이 중요하지. 여자도 사회생활 하면서 다 누리고 살잖아. 너도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되면 다 누리면서 살 수 있어.”

 

명절 특집 프로그램이 흘러나오는 TV는 흥겨웠고, 누구는 누워있었고, 누구는 웃고 떠들며 풍성한 저녁상을 기다리는 채였다. 부엌은 분주했다. 위화감에 몹시 불편했다. 숙모는 삼촌의 직장상사였다. 글쎄, 숙모는 삼촌보다, 엄마는 아빠보다 얼마나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했던 거예요? 말을 애써 삼켰다. 식사하며 반찬과 물 좀 더 갖다 달라는 말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엄마와 숙모를 보며 말인지 음식인지 속이 더부룩하게 얹히었다.

 

 

평등은 부엌 밖에서나 운운할 새가 있다. ⓒ며느라기

 

다시 명절이 다가오자 분주해진 엄마에게 이건 너무하다고 말했다. 요리하던 엄마는 안 그래도 바쁘니 성가시게 말고 가서 쉬라고 말했다. 나는 차라리 ‘가서 쉬는 게 도와주는 것’인 어린 딸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온 친척들이 모였을 때 한 가정에 요리를 하나씩 가져오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잠시 불편한 침묵 끝에 어린이의 악의 없는 제안은 수용되었다. 엄마의 노동은 줄어들었지만,  줄어든 몫은 온전히 고모들의 짐이 되었다. 아빠의, 삼촌의, 할아버지의, 고모부의 몫은 어디에도 없었다.

 

더부룩한 명절은 매해 돌아왔다. 어린이, 수험생, 학생이란 신분에 숨어있던 나에게도 성인 여성으로서의 굴레가 씌워지기 시작했다. 명절이 오기 전 엄마는 내게 본가로 일찍 들어와 요리를 ‘도와 달라’고 연락했다. 남동생은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다. 왜 나에게만 명절노동을 요구하는지 화를 내다가, 그걸 또 엄마에게 하는 내가 한심해져 그만 두었다. 아직 먹지도 않은 명절음식이 역했다.

 

이번 명절도 역시 마음을 다져야 했다. 홀랑 자기 식사만 마치고 잠에 든 동생을 깨우고, 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하자 어른들은 동생에게 말했다. 우리 xx 설거지를 다하니!  남동생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에 성가신 노동을 마다않는 효자가 되었다. 그의 존재감은 너무나도 커서 나는 아예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었다.

 

 

과일은 또 누가 깎았을까? ⓒ배성진

 

이 이야기는 나만의, 우리 가족만의 특수한 경험인가? 이번 추석도 역시 친구들의 메세지는 명절덕담 대신 비장한 결의로 한가득이었다. 이번엔 오빠에게, 남동생에게, 아빠에게, 다른 친척들에게 노동을 분담시키고 말겠다는 무거운 다짐들. 그런 서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이야기들.  이건 여성 보편의 서사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선선한 날씨에 달이 밝다. 수확의 계절에 밥상은 풍성하고 온 가족이 모여 화목한 시간을 보낸다. 여성의 노동을 갈아 넣어 만든 행복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별일 없으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행복한 ‘온 가족’에서 노동하는 여성은 배제되고 지워진지 오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 삶이 계속되길 바란다는 속담이 끔찍한 이유다. 

 

조용하고 평온한 공간에 자꾸 균열을 만들려는 나는 어른들에게 불편한 애로 낙인찍혔다. 명절에 소홀하다며 엄마에게 화를 내는 아빠에게 다시 화내는 나는 비뚤어진 딸이다. 결혼은 언제,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하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다. 우리 가족 안에서도 불편한 나는 남의 가족 안에서 더 끔찍한 존재가 될 것이다. 소음을 듣는 가족들도, 소음을 내는 나도 불편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이런 명절은 싫다. 진정으로 더할 나위 없을 때까지 서로가 불편하게 살겠다. 앞으로도 계속.

 

 

글. 쿼카(aikott@daum.net)

특성이미지 ⓒ배성진

 

쿼카
쿼카

동물적 쾌락주의자

1 Comment
  1. jeny

    2017년 10월 11일 22:10

    많이 공감되는 기사에요. 올해도 역시 추석 당일날 아침 상을 차려야한다는 강박으로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나서 씻고 부엌으로 향하던 엄마와 그 소리에 깼던 저의 모습, 식사 후에 남동생에게 설거지라도 시키려고 “나와서 그릇 좀 닦아줘” 부탁하면서도 귀찮다는 듯한 그 표정이 야속한 동시에 그래도 엄마를 도와야한다는 걸 이해하고 말을 듣는 남지형제가 있음이 다행이라고 느끼는 상황에 대한 씁쓸함, 요리하고 치우고 과일까지 깎느라 손이 모자란 여자들과 대조적으로 술을 마시느라 바쁜 남자친척들을 보며 느끼는 답답함과 암담함…
    큰집의 큰 딸로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에 대해 부모님께도 많은 말씀을 드렸고 대안을 제시해봐도, 이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해도 많은 부분 쉽게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고, 점점 누구를 위한 제사인지 잘 모르겠다는 회의감 때문에 명절이나 제사(명절 때 외에도 고조부,모까지 일년에 총 7회 제사를 지냅니다… 간소해졌다고는 해도 결국 장 보고 음식 준비하느라 엄마만 고생히는 경우가 많아요..)가 다가올 때마다 음식을 만들기도 전에 체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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