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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은 산이의 ‘트로피’가 아니다

래퍼 산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4일, 산이와 아이린은 ‘KBS 특집 한국·베트남 수교 25주년 우정 슈퍼쇼’의 공동 진행자로 나섰다. 행사 중 아이린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자, 이를 지켜보던 산이는 아이린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팬들에게 혀를 내밀었다. 이 행동이 사전에 계획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이린의 반응에서 알 수 있다. 아이린은 깜짝 놀라 표정을 굳혔고, 이내 머쓱한 웃음을 보였다.

 

상황을 전해 들은 아이린의 팬들은 분노했다. 트위터에서는 #산이_사과해 라는 해시태그가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과 사진이 공유됐고, 인사이트와 위키트리, 허핑턴포스트 등의 언론에서 이 사실을 기사로 작성해 논란은 커졌다.

 

 

via GIPHY

 

여성은 남성의 트로피가 아니다

 

산이의 행동은 잘못됐다. 앞에서 논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산이는 아이린의 동의 없이 신체접촉을 했다. 거기에 더해 아이린이 인사하던 팬들에게 혀를 내밀며 조롱했다. 동의 없는 신체접촉이 성희롱이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산이의 행동이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가이다. 산이는 왜 아이린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혀를 내밀며 팬들을 ‘약올리는’ 제스처를 취했을까? 단상 위의 연예인을 바라보는 팬들에게 혀를 내민 것은 ‘너네는 이런 거 못 하지?’라는 조롱이다. 마치 아이린이 자기가 쟁취한 트로피인 것처럼, 동의 없이 신체 접촉을 하고 팬들을 조롱하며 자신을 과시한다. 동등하게 MC로서 앉아 있는 아이린이지만, 산이는 그런 아이린을 그저 잘나가는 남자의 옆에 앉아있는 예쁜 여자, 성공한 자신을 빛내주는 보상처럼 여겼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행사에서 산이는 자신의 곡 ‘못 먹는 감’을 부르며 진행자석으로 와 아이린을 가리키며 노래를 불렀다. ‘못 먹는 감’은 여성을 감에 비유해 성적대상화  곡으로 이미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런 곡을 부르며 굳이 아이린 옆으로 와 가리키며 노래를 이어갔다.

 

못 먹는 감 가사 중 일부

 

산이에게 아이린은 그저 자기 노래 가사처럼 ‘못 먹는 감’이고, 자신을 과시할 수단이다. 산이는 아이린을 자신과 동등한 주체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산이에게 아이린은 남들을 못 하는 신체접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이를 통해 남성들 사이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편으로는 산이의 이러한 행동이 놀랍지는 않다. 산이는 자주 여성을 동등한 주체가 아닌 혐오 하거나, 성적 대상화, 비하의 용도로 자신의 노래에 사용했다.  [관련기사][킬-조이] 나쁜 년? 산이는 전혀 트렌디하지 않다

 

아이돌과 팬들에 대한 여성혐오적 반응들

 

이번 사건에 대해 여러 반응이 있다. “아이린도 거부 안 했는데 왜 니들이 뭐라 그래?”, “빠순이들 ㅂㄷㅂㄷ 거리네”, “별게 다 불편하다” 식의 반응이다. 전형적인 프로불편러라는 조롱섞인 반응들이다. 이 반응들에는 여성 아이돌에게 강요되는 감정노동의 문제, 아이돌 여성 팬들을 향한 여성혐오가 섞여 있다.

 

아이린이 가만히 있는데 팬들은 왜 난리냐 라는 얘기에 대하여 두 가지 생각을 해보자. 그 자리에서 아이린이 더 어떤 반응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이린이 화를 냈다면 어떤 반응이 뒤 따라 올 것인가?

 

아마도 태도 논란에 휩싸였을 것이다. 남자가수의 장난에 웃어넘기지 못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불쾌함을 드러내는 것이 여자 아이돌 가수로서 ‘부적절한’ 태도라며 말이다. 여자 아이돌에게 ‘웃음’은 인성으로 직결된다. 우리는 방송에서 남성 패널들의 농담에 웃지 않거나, SNS에 친절하지 않게 쓴 댓글에 태도 논란에 휩싸인 연예인들을 많이 봐왔다.

 

과거 아이린의 라디오스타 태도논란

 

하연수가 그랬고, 라디오스타에서 카라가 그랬다. 아이린 본인도 이미 라디오스타에서 잘 웃지 않고 반응을 많이 안 했다는 이유로 태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이린이 산이의 행동에 반응한 모습은 한국에서 여자 아이돌 가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다. 여자 아이돌에게 웃음과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구조에서 아이린은 함부로 화를 낼 수 없다.

 

이와 같은 논란이 생길 때 최초로 문제제기를 하는 건 주로 팬들이다. 이번에도 레드벨벳 팬들이 SNS에 비판글을 올리면서 산이의 행동이 알려졌다. 잘못된 행동에 문제제기를 하면, 반대로 욕을 먹는 건 팬들이다. 이번에도 예민한 ‘빠순이’들을 비난하는 반응이 잇따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빠순이’라는 용어다. 아이돌의 팬덤이 욕을 먹은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1세대 아이돌 때부터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성들은 비하의 대상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엑소의 팬덤이 가장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엑소가 싫은 게 아니라 엑소의 ‘빠순이’들이 싫어서 엑소가 싫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됐다. 빠순이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팬이 아니라, 생각 없고, 한심한 여성이라는 함의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는 것이다. 본인의 시간과 돈을 활용하여 아이돌 팬질을 하는 사람들에게 팔짱 낀 채 오지랖과 함께 여성혐오를 동시에 펼친다.

 

페이스북 댓글 캡쳐

 

이상한 건, 남자 팬들은 이런 (의미 없는)비판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일명 ‘빠순이’들이 팬질을 할 때는, 한심하고 시간과 돈을 버리며 심지어 부모님 욕보이는 짓이라고 한다. 반면 남성들의 아이돌 팬질은 건강한 취미로 여겨지고, ‘삼촌 팬’등의 용어로 미화되곤 했다. 남성 팬들이 안경에 몰래카메라를 달고 팬싸인회에 나타나도, 몸매를 평가해도, 성적으로 소비해도 한심한 ‘빠돌이’라며 남성 팬의 젠더가 드러나는 비난을 하지는 않았다.

 

레드벨벳의 팬덤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은 구조지만, 문제제기를 한 팬 중에 분명 남성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욕을 먹는 것은 여성 팬들이다. 팬들이 과민반응을 하는 거라는 사람들의 논리는 분명하다. 저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산이는 하는데 본인들이 못해서다 혹은 역시 여자라서 별게 다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아이린이 산이 어깨에 손 올렸으면 반응이 이럴 것이냐, 역시 여성상위시대다 라는 식으로 역차별 을 주장한다.

 

팬들이 화내는 것은 그들이 예민해서도, 산이가 아이린의 신체를 건드린 것이 부러워서도 아니다. 동의 없는 신체접촉은 성희롱이며, 아이린을 자신은 ‘획득’했지만, 팬들은 그러지 못한 트로피처럼 여겼다는 점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아이린은 산이 어깨에 손을 올린 적이 없다. 이미 일어난 일 앞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굳이 상상하며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이런 일은 언젠가 또 일어나겠지

 

장담하건대, 이런 일은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 힙합계에서는 계속 여성혐오적이고 성범죄를 힙합 정신으로 미화하는 가사가 나올 것이다. 남성 아이돌 가수들은 김치녀가 싫다느니, 순댓국을 먹는 여자는 조금 그렇다느니 하는 얘기들을 할 것이고, 여성 아이돌의 팬 싸인회에 몰카를 들고 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팬들은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여지없이 또 욕을 먹을 것이다. 사람들의 페미니즘 감수성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음악계에 이러한 감수성이 적용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걸그룹 여자친구 팬싸인회 몰래카메라 사건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

 

산이 측의 반응을 봐도 미래가 암울하다. 스타뉴스에 의하면 소속사는 이번 일에 대하여 “영상에서도 보였지만 산이가 아이린에게 크게 문제가 될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번 일이 문제인지 아닌지는 이 사건을 지켜보는 대중들과 아이린이 판단하는 것이지, 문제가 될 행동을 한 당사자인 산이가 판단하는 게 아니다.

 

글. 통감자 (200ysk@naver.com)

 

통감자
통감자

사실 옥수수가 더 좋아요

9 Comments
  1. ㅇㅇ

    2017년 10월 19일 17:0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산이라면 이일로 빠순이 혐오 노래를 신곡이랍시고 들고올거같아서 소름돋더라고요^^; 아니면 대중이 이유없는 비난을 해도 자기는 꿋꿋하게 걸어간다는 역경극복 자기뽕에 취한 가사나..ㅋㅋㅋ

  2. 2017년 10월 20일 09:11

    ㅋㅋㅋㅋ 어깨에 손올리고 메롱한 그 제스쳐 하나에서 이만큼의 ‘혐오정서’를 뽑아낼 수 있다니 역시 혐오를 만드는건 페미니스트들인듯

    • 2017년 10월 20일 10:06

      님 저기에 아이린이 아니라 다른 건장한 남자연예인이 앉아있어도 산이는 저런행동을 했을까 생각해보고 말좀 뱉으셈

    • 2017년 10월 20일 14:14

      어 멍청한 애들이 혐오를 넘어서는 살인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 몸소 잘 보여줘서 고맙다

    • 2017년 10월 20일 21:29

      이 글에서 줄곧 얘기하는게 단지 ‘어깨에 손올리고 메롱한 제스처 하나’가 아니라는건데 읽고도 그걸 모르나, 좀 다시 읽고 오던가.
      게다가 그 ‘어깨에 손올리고 메롱한 제스처’ 때문에 아이린 표정 썩는거 안보이나? 젠더 관계를 떠나서도 상대방 기분을 썩게 만드는게 그냥 제스처 하나라고 넘어갈만한건가? 자기과시 또는 조롱, 뭐가 됐는지 모르지만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건데, 그게 아무렇지 않은 그냥 제스처 하나라고? 여기에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되어 그 목적에 쉽게 이용되는 도구가 되는, 젠더 구조가 추가되는 건데 이게 님이 생각하는 그 ‘제스처 하나?’ 좀 제대로 읽고 좀 생각좀 하고 리플좀 달지?

    • 재한기남

      2017년 10월 27일 02:11

      어휴 머갈통에 아무것도 없는거 티내지마;;

  3. ㅇㅇ

    2017년 10월 20일 13:04

    글 잘 읽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공감입니다 남자들 돼먹지도 않은 개논리 펼치며 우기지 마세요 그럴 수록 미개하고 추접스러워보여용

  4. 오ㅏ

    2017년 10월 20일 14:16

    산이는 저런곡 쓰면서 자기가 조난 힙하고 멋지다고 생각하겠지… 제발 멍청하면 인성이라도 똑바로 박히던가 진짜 혐오스러운거 본인만 모르는듯

  5. 2017년 10월 27일 13:52

    김수현이 저랬어도 이런 기사가 나올까?
    송중기가 저랬어도 이런 기사가 나올까?
    기자야 잘 한 번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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