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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잡고도 욕먹는 여자 아이돌, “탈덕하면 맞는다”는 남자 아이돌

아이돌 그룹 JBJ의 멤버 노태현이 부적절한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JBJ는 JTBC2 <개이득2> 프로그램의 홍보 인터뷰에서 팬들의 ‘탈덕’(연예인 팬덤에서 팬들이 탈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스처를 보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마지막 순서였던 노태현은 허공에 주먹을 세게 휘두르며 “탈덕하시는 순간 이렇게 맞아요”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JTBC2는 이 영상을 공식 SNS 계정에서 삭제했다. 하지만 영상 캡쳐 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트위터에서 ‘안전탈덕 하세요’라는 제목으로 빠르게 퍼졌다.  

 

아이돌은 ‘을’, 팬덤은 ‘갑’?

아이돌 그룹 멤버가 팬을 때리겠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발언이 가능했을까? 작년 말,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아이린의 무기력한 리액션을 두고 ‘태도 논란’이 일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극적이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는 비난이었다. 아이린은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단지 ‘충분히 웃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았다. 올해 초에는 걸그룹 ‘여자친구’의 예린이 몰래카메라가 달린 안경을 쓴 남성 팬을 잡아내는 사건도 있었다. 이를 두고 일부 남성 팬들은 예린의 태도가 ‘쌀쌀맞다’, ‘꼭 무안을 줘야 했냐’는 불만을 내비쳤다. 몰카가 명백한 범죄행위임에도 남성 팬들이 ‘태도’를 운운할 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인 팬이 무조건적인 ‘갑’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자본주의적 갑을관계는 그동안 여성 아이돌에게 적용되는 무리한 감정노동을 합리화하는 도구였다. 돈을 냈으니 원하는 대로 소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 YTN PLUS 기사 사진

 

그런데 아이돌-팬덤을 갑을 관계로만 본다면 노태현의 발언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노태현은 탈덕하는 팬을 때릴 수 있을 정도로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벗어난, 아쉬울 것 없는 아이돌일까? JBJ는 엠넷의 <PRODUCE 101> 시즌2 참가자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탈락했지만, 팬들의 지지로 데뷔했다. 팬과 아이돌의 관계가 오직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른다면 JBJ는 한없이 ‘을’이어야 한다.  팬을 때리겠다는 발언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남성 아이돌의 폭력적 언행은 처음이 아니다. 방탄소년단은 작년 7월 공식 트위터 계정에 카메라 사진과 함께 ‘내 님들 내가 다 지켜보고 있음. 한눈 팔다 걸리면 이 카메라로 찍어버림/모서리로/정수리를’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빅스의 멤버 켄은 2013년 7월 컴백홍보 영상에서 ‘팬들이 갈아타면 어떡할 거냐’는 질문에 “갈아타면 귓방망이를!”이라고 답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 전해에는 JYJ의 김재중이 사생팬을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계정 캡처

 

여성 아이돌과 남성 아이돌에 대한 논란의 양상은 확연히 다르다. 자본주의 논리만으로는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남성 팬의 범죄를 잡아내고도 비난받는 예린이,  방송에서 ‘몰카 찍으시면 귓방망이 맞아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걸그룹 아이돌로서의 예린의 활동은 끝나버릴 것이다. 결국, 이 논란은 젠더 권력이 자본주의에서의 갑을 관계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린과 노태현 사례의 차이는 아이돌-팬덤 관계의 젠더성이다. 자본주의 갑을관계와 젠더권력은 서로 교차한다. 이는 여성 아이돌/팬에게는 억압과 멸시로, 남성 아이돌/팬에게는 막대한 권력으로 나타난다.  

 

나를 때릴지도 모르는 ‘우리 오빠’

노태현의 발언에 대한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뉜다. ‘무서워서 탈덕한다’, ‘실수였을 뿐이다’, 혹은 ‘농담에 불과하다’. 이 발언을 오버한 농담 정도라고 옹호하는 이들은 ‘노태현이 탈덕한 팬을 어떻게 진짜로 때리겠냐’고 말한다. 하지만 농담인지 아닌지, 노태현이 물리적으로 팬을 때릴 수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노태현의 행동은 여성들이 겪는 일상적 폭력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폭력을 쓰겠다는 노태현의 발언은 데이트폭력을 연상시킨다.

 

데이트폭력의 본질은 ‘통제’다. 가해자는 상대방의 거부를 용납하지 못한다. 물리적, 정신적 폭력으로 상대방을 위협하고, 의사결정을 통제한다. 노태현의 행동이 전형적인 데이트폭력으로 보였던 건 이 때문이다. 그의 행동은 ‘탈덕’이라는 팬의 선택을 폭력으로 통제하겠다는 위협이었다. 

 

하지만 여성 팬들이 느낀 분노는 ‘과민반응’으로 취급 받고 있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회의 반응과 비슷하다. 상대방을 욕하거나, 밀치고 때리거나, 감시하고 구속하는 행동을 데이트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민한 행동으로 비웃음 받는다. 더 큰 폭력을 예고하는 징조들은 ‘사귀는 사이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은폐된다.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는 당사자의 의견은 늘 무시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태현의 행동을 농담이나 실수로 무마하려는 시도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한 현실을 반증할 뿐이다.

 

논란이 커지자 노태현은 JBJ 공식 트위터 계정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길지 않은 사과문에서 노태현의 폭력적인 제스처는 ‘경솔한 언행’으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불편함’과 ‘실망’이라는 단어는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분노를 담기에 부족하다. 여성들은 ‘안전이별’과 더불어 ‘안전탈덕’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칼이나 염산을 맞지 않기 위해, 차라리 여성들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현실을 이해했다면, 노태현의 행동은 ‘실수’로도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글. 차가운손(coldhand0819@gmail.com)
특성이미지 ⓒ JTBC2 <개이득2> V LIVE 캡처

차가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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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차갑지만 마음은 따뜻해요

1 Comment
  1. ㅇㅇ

    2017년 11월 7일 02:43

    글 내용 잘 읽었고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만 지적할 부분이 있습니다. 노태현 자필 사과문 다시 업로드한 지 꽤 됐어요. 지난 주에 올렸는데 (이걸로 충분하다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마치 짧은 사과문 하나로 무마한 것처럼 돼 있네요. 사실확인 좀 더 명확히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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