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주인공이나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빛나는 이야기들이 있다. 인물들은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고, 크고 작은 불행을 맞기도 한다. 이들이 불행을 견디는 중에도 여전히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옷을 갈아입는 일상은 계속된다. 이렇게나 평범한데도,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지는 ‘보통의 웹툰’ 세 편을 모아보았다.

 

※ 본 기사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보통의 웹툰 <아 지갑놓고나왔다>

 

웹툰 <아 지갑놓고나왔다>(이하, <아지갑>)는 망가진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주인공인 세 여성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이별을 때로는 현실적으로, 때로는 상상에 의존하여 묘사한다. 상상으로라도 그들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어서 다행일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삶은 고통스럽다.

어린 시절 친족성폭력을 당하고 정신병을 앓게 된 선희를 위해, 가족들과 싸우다가 이혼을 하고 고된 삶을 살게 된 선희의 어머니 경자. 남자친구가 관계 중 콘돔을 빼버려 임신한 후, 혼자 딸 노루를 낳아 키우다가, 자신의 온 세상이었던 노루를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선희. 그리고 귀신이 되어서도 혼자 남은 엄마를 걱정하느라 매일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동전을 주워 저금통에 모아놓는 노루. 이 세 사람의 화해와 이별을 위해서 만화는 3부에 걸쳐 이승과 저승, 꿈과 현실을 넘나든다.

 

무거운 이야기와 일상적인 화법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접할 때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숨 막히게 무거운 분위기와 극적인 연출은 <아지갑>에서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저승이나 꿈속과 같은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묘사는 예외이다. 대신 현실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끔찍한 일들을 그릴 때, 이 웹툰은 그 이야기의 무게와 비교하면 약간은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가볍고 일상적인 말투를 사용한다. 성의 없다 싶을 정도로 간결한 그림과, 반쯤은 장난처럼 뱉어대는 대사를 ‘이 작가가 지금 나랑 장난하나?’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거짓말같이 입을 가리고 숨을 죽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예컨대 선희의 삶에 일어난 고통스러운 일들이 “아, 지갑 놓고 나왔다”는 생각 없는 탄식만큼이나 가볍고 평이한 방식으로 서술되는 순간들이 바로 그렇다. 도서관으로부터 책 한권 빌리는 일이 없던 선희가, 노루가 죽기 전에 빌린 책의 연체 알림을 받는 순간이 그렇고, 엄마에게 임신했다는 이유로 뺨을 맞은 선희가 가출을 하던 날 밤 엄마가 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현관에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의미 없이 제자리걸음 하던 것을 떠올리는 순간이 그렇다.

 

선희의 고통은 특별하고 극적으로 포장된 채 전시되기보다는 일상적인 순간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웹툰이 선희, 노루, 경자의 아픈 순간들을 묘사하는 방식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다음 웹툰 <아 지갑놓고나왔다>

 

숭고하기 않은 모성

 

<아지갑>이 모성을 다루는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삶은 항상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처우와 빈곤의 대물림과 빈약한 복지정책 등등’을 염두에 둔 채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아주 별 것 아닌 이유로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눈앞에 뻔히 닥칠 불행과 고난을 알면서도 어쩌다보니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선희도 마찬가지였다. 선희는 아이를 지우려다가, ‘병원에 가기 귀찮기도 했고, 수술비는 가출한 선희의 형편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비싸기도 해서‘ 덜컥 아이를 낳기로 한다. 그리고는 태어난 아이를 입양 보내려고 하다가, 단지 아기의 얼굴이 유일하게 사람 얼굴로 보인다는 이유로 -선희는 성폭력 사건 이후, 자신을 제외한 사람의 얼굴을 새의 얼굴로 본다 – 딸을 자신이 키우기로 결심한다. 위대한 모성애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유가 아닐 수 없다. 만화가 보여주는 ’어머니됨(모성)‘은 현실의 모성이 그렇듯, 엄청나게 위대하지도 숭고하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 있고 그럴 듯하다.

 

 

ⓒ 다음 웹툰 <아 지갑놓고나왔다>

 

일상적인 고통, 평범한 피해자

 

이렇게 <아지갑>은 숭고하지 못한 어머니들의 고통을 일상적인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다. ‘어린 게 몸을 함부로 굴렸으니까’, ‘책임질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를 임신했으니까’ 혹은 ‘애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으니까’와 같은 이유를 들어, 선희와 경자의 모성과 고통의 진정성에 의심을 품고 그들이 고통 받아 마땅하다 말하는 독자는 없다. 현실에 실존하는 선희들과 경자들에게 수없이 쏟아지는 무결한 피해자가 되지 못했다는 비난이, 만화 속 선희와 경자에겐 쏟아지지 않는다.

 

타자의 고통에 이입하고 공감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에 자주 실패한다. 심지어 그 고통에 대고 너는 잘못 살았으니 벌을 받는 것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띤다.

 

만화는 거대한 불행으로 고통 받는 숭고하고 선하기만 한 피해자가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일상적인 불행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피해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피해자의 무결함을 애써 강조하려 하지 않는 것이 고맙고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아지갑>이 가진 독특하고 위대한 힘은 여기에 있다. 이 만화가 그리는 선희와 노루, 경자는 정말 지금 여기 어딘가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간결한 그림과 대사를 보면서 이토록 뼈저린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세상의 고통 받는 사람들이 모두 숭고하고 완전한 인간일 리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 헤스터(hester114@naver.com)

특성이미지 ⓒ 다음웹툰 <아 지갑놓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