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주인공이나 특별한 사건이 없음에도 빛나는 이야기들이 있다. 인물들은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고, 크고 작은 불행을 맞기도 한다. 이들이 불행을 견디는 중에도 여전히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옷을 갈아입는 일상은 계속된다. 이렇게나 평범한데도,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지는 세 편의 웹툰을 모아보았다.

 

세번째 작품 <혼자를 기르는 법>
※ 본 기사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혼자를 기르는 법>의 주인공, 이시다는 20대, 비-서울 출신, 무산계급, 노동자, 여성이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결심하고, 쟁취하고, 홀로 서울에 방을 구해 생활을 꾸린다. 이시다의 홀로살이는 불안하고 어렵고 고되다. 그녀는 이렇게 고단한 삶의 장면들을 블랙코미디처럼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말투로 늘어놓는다.

 

제목부터 특이하다. <혼자를 사는 법>이 아니라, <혼자를 기르는 법>이다. 아무래도 작가는 우리의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시다를 포함한 우리들의 삶은 스스로 내린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혼자의 힘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많은 제약 속에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시다는 자신의 노동 환경이나 계급적인 위치 따위를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다. 그러나 시다의 삶은 그녀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그의 성별, 계급, 출신 지역, 가정환경 등으로부터 만들어진다.

 

크게 부족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가진 것도 없는 그녀는 한국의 많은 노동자들이 그렇듯이, 오랜 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적은 임금을 받는다. 어렵게 얻은 혼자만의 공간도 빈약한 지갑 사정 때문에 취향대로 꾸밀 수 없다. 20대 여성인 그는 자정을 넘긴 시간에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밤거리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시다는 ‘그렇게 자정을 넘긴 딸들만이 서울을 알아간다’고 독백한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동생의 동료는 고객들의 성희롱과 폭언에 적응한 방법을 묻자 ‘사람들이 왜 이러는지 궁금해하는 것을 멈췄다’고 답한다. 알지 않아도 될 것들을 배우고, 포기하고, 단련되고, 궁금해하기를 멈추어야 지속될 수 있는 삶은 스스로 살아지는 것이기보다 길러지는 것에 가깝다.

 

ⓒ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길러지는 존재에서, 기르는 존재로

 

이쯤 되면 우리가 혼자 힘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길러지기만 할 뿐인가 하는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시다 역시 이 무력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시다가 항상 자신의 무력감과 억압받은 경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시다는 그녀로 인해 ‘길러지는’ 존재 앞에서 또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한다.

 

만화의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는 물고기, 도마뱀, 햄스터 같은 작은 동물을 기르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동물들은 때로 동물들을 기르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시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사용된다. 자신의 공간을 꾸미는 데 실패한 시다는, 대리만족을 하려는 것처럼 씨클리드의 어항을 열심히 수초로 꾸며놓는다. 그러나 씨클리드에게 부적합한 약산성 수초를 사용하는 바람에 모든 장식을 갈아엎어야 했다. 또 어느 날엔가 시다는 햄스터를 키울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빼곡히 적힌 수첩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문득 햄스터의 삶에 있어서 ‘가장 있으면 안 되는 것’은 아마 주인인 자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이시다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세상만이 아니다. 이시다가 갖고 있는 불안은 그녀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시다는 자신이 어떤 작은 존재들에게 의도치 않더라도 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녀의 시니컬함은 외부의 거대한 문제들을 향하다가도, 자기 앞에 놓인 더 작은 존재들 앞에서는 방향을 돌려 스스로를 향한다. 그런 순간마다 이시다는 길러지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기르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의심한다.

 

시다는 도발적으로 외부의 문제들을 까발리다가도, 금세 그 문제의식들이 모두 별 것 아닌 상념이었던 것처럼 가볍게 웃어넘긴다. 진지하게 누군가를 비판하기에는 그녀 스스로도 그렇게 대단하거나 완성되어 있지 않다고 자인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혼자를 기르는 법>의 시니컬함은 뻔하거나 허세스럽지 않다. 이런 시니컬함을 통해서 이시다의 불행은 거창하지 않게, 그러나 충분히 묵직하게 전달된다.

 

결국 이시다의 문제의식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은 그녀가 자기의 위치를 똑똑히 인식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시다는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도, 햄스터가 사육장의 벽을 긁어놓은 자국 앞에서 고민한다. 불편하다는 뜻인지, 화가 났다는 뜻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인지조차 모를 자국 앞에서, 그는 햄스터에게도 ‘뭔가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얘도 뭔 생각이 있겠지, 라고 생각해버리는 순간부터, 뭔가를 기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워진다’고 고백한다.

 

ⓒ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시다는 소동물에게도 ‘뭔 생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무해한 삶에 대한 고민

 

길러지는 존재로서의 삶은 고되고 아프다.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이시다는 ‘기르는 법’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한다. 그래서 이시다는 <혼자를 기르는 법>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그가 <혼자를 기르는 법>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이유는, 그가 작은 존재들을 기르는 것을 결코 작은 문제로 치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의 자기 의심을 보고 답답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언제나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손쉽게 믿어버리는 사람들은 세상을 훨씬 더 답답한 곳으로 만든다. 고민과 의심 없이, 작고 약한 존재 앞에서 언제나 무해한 존재이기는 불가능에 가깝도록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글. 헤스터(hester114@naver.com)
특성이미지 ⓒ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