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지나간다. 연말, 수상의 계절이 돌아오면서 <비밀의 숲>은 다시 주목받았다. 12월 5일, 극본을 맡은 이수연 작가가 ‘2017 대한민국 콘텐츠대상’에서 문체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같은 날 뉴욕타임스 평론가가 선정한 ‘우수 해외 드라마’에 이름을 올렸다. 11일에는 2017 방송비평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입소문 자자하던 <비밀의 숲>은 이제 자타공인 반박불가 2017년 최고의 드라마로 자리 잡았다. 아직도 ‘비숲’을 보지 않은 독자들이 있다면, 올해가 끝나기 전 꼭 정주행을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밀의 숲>에 대한 애정을 꾹꾹 눌러 담은 리뷰를 준비했다.

 

※ 주의! 이 글에는 거의 모든 중요한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비밀의숲>은 정의로운 검사가 타락한 사람들을 잡아내는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다. 평면적인 통쾌함 대신 질문을 안겨준다. 나쁜 사람을 잡는 사람은 과연 착한 사람일까? 선과 악은 정확히 분리될 수 있을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황시목(조승우)과 한여진(배두나), 그리고 이창준(유재명)은 각자의 방법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드라마 초반에, 선악은 전형적으로 분리된 듯 보인다. 접대와 비리로 얽힌 검경과 재계, 스폰서를 죽인 살인범은 악인으로 설정되고 추적 당한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악인의 행적과 윤곽이 드러나야 하지만, 어쩐지 그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스폰서의 비리관계를 추적해 그의 행적을 쫓으려던 특임검사팀은, 대한민국에 그의 돈이나 접대를 안 받은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게다가 수사를 방해하는 사람들은 악한의 하수인이 아닌, 원칙을 지키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다. 검찰청 보안요원은 CCTV 보관기간을 지키지 않고 영상을 삭제했고, 수사에 필요한 증거물은 영영 사라져버린다. “그러다가 배가 가라앉고, 건물이 무너지고 하는 겁니다.” 황시목(조승우)의 일갈에도 보안요원은 ‘어차피 지워지고도 남았을 영상’이라며 등을 돌릴 뿐이다. 대단한 고위직 인사가 아니어도, 돈을 먹었던지, 혹은 별 이유 없이도 눈과 귀를 닫은 ‘보통 사람들’은 넘쳐난다. 그렇지만 이런 사소한 위반들은 사고를 불러일으킨 뒤에야 악행이라고 불린다.

 

‘악의 축’과 ‘보통 사람들’. 분리된 듯 그려지던 두 줄기는 드라마 후반부에서 맞닿는다. 스폰서 살인사건의 범인은 수사팀의 검사 중 한 명이었다. 동료들은 충격에 빠진다. 다른 팀원들은 수사팀 단체사진을 보면서 말한다. “믿어지지가 않아요. 이 안에 살인범이 있었는데… 이마에 착한 사람, 무서운 사람 써 붙여 놨으면 좋겠어요.” 이에 여진이 대답한다. “그럼 여기도 애매한 사람 꽤 될 걸요.” 도려내야 할 ‘절대악’과 내 옆의 ‘보통 사람’,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다. 자연스레 ‘나는 나쁜 놈이 아니라는 확신’ 또한 흔들린다. 범인을 잡았지만 마냥 통쾌할 수 없다.

 

                                                                         범인은 이 안에 있었다.

                                                                                                         ⓒ tvN <비밀의 숲> 공식 홈페이지 

 

검찰과 경찰들마저 사건의 당사자이고, 가해자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도 결백한 사람은 없다.<비밀의 숲>은 후반부까지 그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비리의 핵심인 듯 보였던 부장검사 이창준(유재명)은 자신을 포함한 정재계의 비리를 고발하고 자살한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누군가는 그를 ‘의인’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악을 청산하고자 했던 이창준의 의지는 곧 그를 ‘괴물’로 만든 원인이다. 이창준은 선과 악이 철저하고 정확하게 분리되어 있다고 믿었다.

 

“우린 검사야. 뇌물을 받기도 하고 접대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 (하지만) 나에겐 믿음이 있어. 이 건물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는 믿음.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단죄 내려야 하는 부류들과는 다르다는 믿음.” 그는 비리를 고발함으로써 자신이 선(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스스로를 죽이면서까지 죄를 씻겠다는 선택은 그가 가진 선악의 이분법이 얼마나 깊은 지 보여준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서라도, 이창준은 이분된 양쪽 중 선(善)과 고결함의 편에 서고 싶었던 것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두 주인공 또한 절대적인 선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조금 더 경계하는 사람들이다. 황시목과 한여진은 선악을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인다. 누구든 언제든 스펙트럼의 양쪽으로 미끄러질 수 있음을 알고, 일관된 정의의 기준을 지킨다. 한여진은 경찰의 용의자 폭행을 세상에 알리는 대신 진범을 빨리 잡자는 제안을 들었을 때, 그것이 곧 침묵과 방관이라는 악행임을 알아챈다. 그래서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용의자가 폭행당했다는 사실을 끝까지 인권단체에 알린다. 황시목은 이창준이 남긴 증거자료 덕분에 수 년 간 묻혀 있던 비리 사건을 기소한다. 그러면서도 이창준을 ‘시대가 만든 괴물’이라고 칭한다. 어떤 이유로든 한 개인이 사람을 시켜서 스폰서를 죽이고, 관련 증인을 납치하는 등의 행동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보다 조금 더 경계하기. ‘아무 의미 없는 밥 한 끼’로 시작되는 비리의 굴레로부터 두 주인공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다.

 

선악을 하나의 연장된 선으로 인식할 때, 우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결국 모든 일은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인터뷰는 이 질문과 맥을 같이 한다. 검찰, 경찰, 기업인, 정치인처럼 동떨어진 존재들로 얽히고설킨 ‘숲’을 파헤칠수록, 굵어 보였던 악의 줄기는 셀 수 없는 가지들로 잘게 쪼개진다. 그들이 몸을 숨길 수 있었던 숲의 가지들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도 그 가지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또 하나의 ‘비밀’이 드러난다.

 

글. 차가운손 (coldhand08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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