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청년이 연결되고 있다. 작년 12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 이용자의 연령대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20대와 30대가 각각 29%를 차지했다. 2030 이용자의 합이 과반을 넘을 뿐만 아니라, 4050대 이용자 비율을 20%이상 앞지른다. 이같은 통계에 기대어 한국일보, 경향 신문, 한국 경제, 머니투데이 등 거의 모든 언론은 비트코인 열풍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 고리로 청년을 다루고 있다.

 

동시에 일부 정치인들은 적극적으로 비트코인 규제를 청년 문제와 연관 짓기 시작했다. 지난달 13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역대 최악의 청년 실업으로 청년들은 희망을 잃고 비트코인 광풍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데도 이를 없앴다”며, 현 정부의 비트코인 규제 발표를 비판했다. 덧붙여서 현 정부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이 감소하자, 다수의 기사는 ‘비트코인 규제’를 원인으로 꼽았다. 이쯤 되면 한국 사회에서 비트코인은 곧 청년 현상이고, 빗심(비트코인 민심)은 곧 청년 민심인 듯하다.

 

비트코인=청년+한탕주의?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비트코인 열풍은 청년 세대 현상으로 해석된다. 먼저, 가상화폐 거래소에 20대와 30대 이용자가 많으니, ‘청년’ 현상이라는 논리다. 그런데 왜 청년들이 비트코인에 빠지게 되었을까. 이유가 필요하다. 여기서 비트코인 현상은 ‘N포세대’와 만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에서 청년은 주로 경제적 약자로서 등장해 왔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 그리고 최근 77만원 세대 등이 그 예시다. 노동시장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청년은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는 명제에 반박하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답이 나온다. 가난해진 청년세대는 한탕주의를 꿈꾼다. 비트코인 열풍은 그 한탕주의의 발로다. 예컨대, 한국 경제의 기사 <“책이 손에 안잡혀요”…희망 없는 N포세대, 비트코인 ‘한탕’에 허우적>은 비트코인 현상의 주인공으로 “취업과 결혼, 내 집 마련을 포기한 N포세대”를 제시한다. 이들은 가난하다. 때문에 한탕을 꿈꾼다. 그 배경으로 ‘희망 없는 사회’라는 구조적 문제가 언급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의아해진다. 청년은 이 ‘희망 없는 사회’를 우려할 수 없다. 청년은 우려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닌, 우려되는 대상이다.(“청년들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트 코인 현상 속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한탕’이 의미하듯, 청년은 비이성적이다. 비트코인 열풍 속에서 청년은 수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청년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청년은 ‘문제 그 자체’에 머물 뿐이다.

 

 

ⓒMBC

 

 

‘N포세대의 한탕주의’가 가리는 것

 

지금과 같이 비트코인이 뜨거운 이슈가 되기 전에는 어땠을까. 지난 2014년 2월 26일 발행된 KBS의 기사<안전성 논란 ‘비트코인’, 한국 30~40대 남성만 관심 갖는 이유는?>를 통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3년 전, 해당 기사에서 비트코인과 관련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30~40대 남성”이고, 성별은 “남성”이며, 성별 비율(남:여)은 9:1이다.

 

2014년의 기사 제목에는 성별과 연령이 명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몰성적인 ‘청년 세대 현상’임이 강조된다. 3년 사이에 비트코인 구매 경험자의 성별 차이가 미미해졌기 때문일까. 아닌 것 같다. 최근 리서치회사 한국 갤럽의 설문조사에서 전체 남성 중 가상화폐 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9%였다. 이는 같은 조사의 여성 비율 5%의 약 두 배에 해당한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비트코인 열풍을 세대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성별을 포함한 다른 요인에 따른 차이를 ‘세대론’은 놓치고 있다.

 

‘흙수저’가 투자하는 것인가 또한 의문이다. 최근 비트코인 열풍을 둘러싼 세대론적 해석은 경제적 약자로서의 청년 세대론에 치우치고 있다. 헌데, 한국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가 자신의 생활 수준을 높게 평가할수록 비트코인 구매 경험률은 높아진다. 비트코인 현상과 20대 세대 내부의 경제계층별 투자에 관한 정확한 통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더불어서 모든 청년 문제를 ‘청년 세대가 가난해서’라고 여기는 청년 세대론은 다소 ‘나이브’하다. 성별과 계급에 따른 청년 내부의 다양성을 가볍게 지우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세대 프레임으로 비트코인 열풍 읽기

 

세대론 속의 청년은 성별이 없거나, 암묵적인 남성으로 여겨져 왔다. 동시에 청년은 ‘문제 자체’이면서 필요에 따라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해결사’가 되어야만 했다. 청년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한국 사회의 비극이지만(N포세대), 글로벌한 젊은이들로서 한국 사회의 희망이기도 했다(G세대). 한국 사회의 새로운 현상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청년세대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해당 세대론이 얼마나 정확하게 현실을 증언하는지는 간과되었다.

 

올해 초 발간된 [세대게임]의 저자 전상진은  세대라는 개념이 “거의 모든 것을 지칭하지만, 아무것도 지칭하지 않는” 상황을 우려한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지만, 마치 무언가 설명된 듯 ‘세대’로 퉁치고 넘어가는 관행이다. 전상진은 이같은 관행을 ‘세대 프레임’으로 설명한다. ‘프레임(fame)’이 틀을 의미하듯, 세대 프레임은 특정한 문제를 세대로 보는 틀이다. 주의 해야할 것은 세대라는 틀을 통해 문제의 원인이 특정한 세대로 돌려지고, 세대 외의 분석돼야만 할 범주들(계급, 성별 등)이 은폐되는 현상이다.

 

세대 개념을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이번 ‘비트코인 대란’에 세대적인 분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비트코인 열풍을 둘러싼 다른 사회 문화적 요인들이 가려지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비트코인 구매자의 2030 비율이 높으니까 청년이 문제고, 청년이니까 흙수저고, 흙수저니까 N포세대라는, 혹은 청년이니까 미성숙하고, 한탕주의라는 순환 논리는 이제 버려야 하지 않을까. 

 

 

글. 압생트(ctj35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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