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사실을 문제 삼는 여검사에게 잘나가는 검사의 발목을 잡는 꽃뱀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자주 봤다.”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과 내부통신망을 통해 검찰 내 성폭력을 증언했다. 이후, 피해자들이 자신이 겪은 성폭력을 말하는 ‘미투’ 운동은 더욱 확산되었다. 법무부 내에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가 설치되며, 국가인권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직권 조사하겠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서 검사의 용기 있는 증언 이후 전해지고 있는 바람직한 소식들이다. 하지만 여론의 흐름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일부 여론의 흐름은 두 가지 지점에서 핵심을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말을 안 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사건 공론화 이후,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여론이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여성단체들과 여성 의원들은 지금까지 뭘 했냐?’는 얘기들이 이어졌다. 서 검사에게 ‘8년 전에 경찰에게 신고하면 되는 일 아니었느냐’고 하는 조롱식의 댓글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사건에 대한 몇몇 유명인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의 맥락이었다. 손석희 앵커는 인터뷰에서 성추행 피해자인 서 검사에게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물론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겠죠?”라고 질문했다. 표창원 의원은 자신의 SNS에서 ‘자유한국당만 성추행 비판 논평을 안 내고 있다’며, 특정 정당의 ‘여성’의원들에게 미투 운동에 참여하라고 촉구했다.

 

ⓒ표창원 페이스북 캡쳐

 

이와 같은 반응은 조금씩 다를 뿐, 결국 여성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이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문제(problem)’는 여성이 아니라, 여성혐오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이 아닌 ‘여성’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고 은폐될 수 있었던 전제인 여성혐오와 가해자 남성의 책임을 지워버린다. 그와 동시에 왜 피해자 여성이 목소리를 내지 못했는지에 대한 고찰은 없어진다. 옛날부터 이어져 오던 여성단체들의 노력과 운동 또한 삭제된다. 성찰 없는 게으른 담론만이 반복될 뿐이다.

 

여성에게 목소리를 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게으르고 얕은 사고일 뿐인지는 서 검사의 증언내용을 통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안태근 검사가 서 검사를 성추행했던 8년 전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법무부 장관까지 앉아있는 그곳에서 성추행은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었지만,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서 검사는 ‘환각’을 느끼는 건 아닐지 자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침묵은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남성연대 속에서 보호되었다. 성폭력 피해자를 꽃뱀이라 칭하는 검찰 내부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실질적 절차들도 마찬가지였다. 안태근의 성추행 사실을 최교일이 나서서 덮고, 서 검사를 불합리한 인사과정에 굴복하게했다고 서 검사는 증언했다.

 

남성 중심성은 단단하고 끈끈하다. 8년 만에 용기를 내고 목소리를 내자, 사회는 개인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2차 가해를 하고 있다. 비단 검찰이라는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론화를 위해 방송에 출연한 서지현 검사에 대한 성희롱과 얼굴 평가, 사생활 캐내기는 온라인을 통해 계속 이어졌다. 아직도 ‘여성이 말을 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인가. 여성의 침묵은 남성 중심적 구조가 만든 것이지, 여성이 만든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검찰이라는 특정 조직이 아니다

 

문제의 책임을 묻는 방향뿐만 아니라, 분노의 방향 또한 의아하다. 서 검사의 증언이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검찰, 진짜 문제다”, “검찰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검찰에 대한 강한 불신과 분노를 보여줬다. 곧 대중의 공분은 안태근, 최교일이라는 특정 개인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성폭력을 검찰이라는 특정 조직 및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흐름은 또다시 핵심을 빗겨나간다. 검찰이 아니라, 여성혐오가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개인이나 검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이다. 이미 재작년 한국에서는 ‘OO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피해자들의 증언들이 이어졌고 한국 사회 곳곳의 성폭력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뿐만 아니라 한샘 및 현대카드 등 기업 내 성폭력을 공론화한 피해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꽃뱀’이라고 호명되고, 무고죄로 고소당하는 것은 지난하고도 순차적이었다.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한샘, 현대카드, 조덕제, 이진욱, 박유천 등의 성폭력 사건들에서 피해호소인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말이다.

 

ⓒ네이버 댓글 캡쳐

 

31일에 발표한 입장문에서 서 검사는 “장례식장 안에서 있었던 일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후 제가 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 혼자만의 목소리를 내었을 때 왜 조직이 귀 기울일 수 없었는지에 대해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피해자를 침묵하고 고통스럽게 만든 건 그들의 목소리를 무색하게 만드는 성차별적 구조와 2차 가해였다. 또한 2차 가해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가해자 중심적 사고는 ‘검찰(바뀌어야 할 대상)’과 ‘검찰이 아닌 우리(바뀌지 않아도 되는 대상)’를 나누는 현재의 흐름이 민망할 정도로, 지금까지의 성폭력 사건들에서 보편적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논의는 수정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여성이 말을 안 해서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니라,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의 문제이다. ‘검찰’이 아니라 ‘여성혐오’가 문제다. 안태근, 최교일만이 아니라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에 ‘저 여자가 꽃뱀’일 수 있다던 ‘당신들’도 문제다.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 뿌리를 뽑아야 하는 것은 여성혐오다. 마지막으로 서지현 검사가 전한 입장문의 일부를 덧붙인다.

 

“이것은 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82년생 김지영의 문제가 김지영만의 문제가 아니듯 말입니다. (중략) 이 사건의 본질은 제가 어떤 추행을 당했는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문제였으며,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에 언론과 시민들께서 우리사회 미래를 위해 집요하게 관심가져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글.  모킹버드(sinjenny97@naver.com)

대표이미지 ⓒJTBC 뉴스룸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