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악플’이 달렸다. 그의 사진은 찢어지고 불태워졌다.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겪은 일들이다. 에이핑크의 멤버 손나은이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적힌 핸드폰 케이스 때문에 비난받았던 사건이 채 잊히기도 전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이유가 <스물셋>을 발매했을 때의 반응도 겹쳐 보인다. 당시 그는 ‘국민 동생’이라는 잘 팔리는 이미지를 버리고 무리수를 던졌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 에이핑크 손나은 인스타그램

 

 

여성아티스트를 향한 이러한 비난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것은 단순히 몇몇 ‘악플러’들에 의해 발생한 특수한 사건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여성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에서 곪아져 나온 증상이다. 여성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온순한 모습으로만 남아 있기를 요구받아왔다. 이러한 부당한 반응을 견뎌온 여성 아티스트들, 그럼에도 그들의 전복적인 시도를 기억한다. <스물셋>은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려는 아이유의 노력이 엿보이고, 레드벨벳의 <Bad Boy>의 뮤직비디오엔 단 한 명의 남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주목하려고 한다.

 

 

아이유 <스물셋> 가사 일부

 

 

여우도 곰도 아닌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섹시하거나 청순하지 않은 여성 아티스트는 설 자리가 없다. 순수한 ‘아이’거나 ‘물기 있는 여자’여야 한다. 즉, ‘곰’이거나 ‘여우’여야만 하는 것이다. <스물셋>의 가사로 아이유는 이 지점을 짚어낸다. 자신이 곰인지 여우인지 맞춰보라고 도발하며, 그 경계를 ‘뒤집어 보겠다.’고 선전포고한다.

 

<Bad Boy>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레드벨벳 역시 곰과 여우의 이분법을 뒤흔든다. 그들은 ‘소녀’와 ‘여인’의 의상을 교차해서 입으며, 경계를 넘나든다. 영상 말미에는 하얀 파자마를 입고 누워 있다가 눈을 뜬다. 그리고 무표정하게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다. 여성아티스트에게 아이같이 해맑은 표정을 기대했던 이들을 무안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동시에, 레드벨벳을 ‘어떤 부류의 여자’로 규정하는 게 의미 없도록 만드는 눈길이기도 하다.

 

뮤직비디오 속 여러 장면에 걸쳐, 레드벨벳은 여성에 대한 대상화에 저항한다. 서두에 등장하는 책표지엔 키스마크와 함께 ‘Cecl n’est pas de la levre.(이것은 입술이 아니다)’라는 제목이 달려있다. 유명한 그림 <이미지의 반역>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고서, 정작 파이프를 그려놓은 작품. 의아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당연하다. 파이프 그림은 그림일 뿐, 특유의 감촉과 향을 가진 파이프라는 물체 자체가 아니다. 이미지와 실제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입술 자국이 상징하는 여성의 성적 매력은 레드벨벳의 모든 것이 아니다. 그들의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다.

 

 

ⓒ 레드벨벳 뮤직비디오 캡쳐 화면

 

또 다른 장면에서 레드벨벳은 사진기를 불태운다. 웬디는 사진을 찍히기보단, 직접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한다. 자신들을 ‘입술 자국’ 만으로 규정하는 시선에 적극적으로 반감을 표하는 것이다. 아이유 역시 <스물셋>의 뮤직비디오에서 사과를 가슴에 집어넣었다가 뺀다. 그리고 이를 화살로 쏜다. 성적 대상으로 남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시 <Bad Boy>의 뮤직비디오에선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이번엔 화살 대신, 총알이 등장한다. 슬기가 총을 쏴서 캐리어를 지켜낸다. 끝까지 캐리어의 내용물은 공개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섹시한 여우와 청순한 소녀 이상의 다양한 가능성이 들어있을 것이다. 이분법적인 성적 판타지에 반발하는 레드벨벳은 영상 내내 능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타자기를 치며,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온갖 곳에 페인트를 뿌려, 그들만의 색을 입힌다. 영상 속 레드벨벳은 ‘여우’인지, ‘곰’인지 규정하는 시선에 대항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여우일까? 곰일까? ⓒ 아이유 <스물셋> 뮤직비디오 캡쳐 화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는 없다 ⓒ 레드벨벳 뮤직비디오 캡쳐 화면

 

 

‘Bad Boy’는 남성 중심적인 시선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여성은 주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성적인 대상으로 치부된다. 더욱이 여성연예인은 화면 속 뮤즈로만 남아있길 강요당한다. 예쁘지 않은 외향, 흡연여부나 무뚝뚝한 태도조차 흠이 된다. 그 결과, 순수하거나 섹시한 여성의 이미지만이 TV 화면을 가득 채운다.

 

물론 교복에 망사스타킹을 신은 레드벨벳은 ‘이래도 예쁘고 저래도 예쁘다’고만 소비됐을지도 모른다. 레드벨벳이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냈다고 볼지,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와 같은 판타지에 편승했다고 볼지 판단하는 것은 수용자의 몫이다.

 

 

돈이나 많이 벌래 ⓒ 아이유 <스물셋> 뮤직비디오 캡쳐 화면

 

 

음악보단 여성성이 더 잘 팔리는 시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성 아티스트는 많지 않다. <스물셋>의 가사가 이쯤에서 다시 떠오르는 이유다. 아이유는 여기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돈이나 많이 벌래.” 아이유의 자포자기한 목소리는 이런 녹록치 않은 현실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의 시도를 기억하고 싶다. 뮤직비디오에서 슬기가 저격한 화면 밖의 ‘Bad Boy’는 누구일까 마지막으로 고민해본다. 그건 여성아티스트들의 입을 틀어막는 한국의 남성 중심적인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글. 솜(dhstlsajd@naver.com)

특성이미지 ⓒ 레드벨벳 <Bad Boy> 뮤직비디오 캡쳐 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