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생님이 달려와선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하는 거예요. 우릴 세워놓고 ”너희 자랑스럽니?“ 이렇게 물어봤어요. 뭐라 답하긴요, ”네, 자랑스러워요“ 라고 했죠. (웃음) 당연한걸요.” 

 

고교 졸업생들이 교사를 신고했다. 4월 5일, 교육청에 사립학교 교사 2명이 학생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성추행을 해왔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제보자는 학생이 피해를 알리려 했으나, 학교가 이를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노원구 소재의 사립학교 용화여자고등학교(이하 용화여고)에서 벌어진 일이다. 3일 후, 해당 학교의 창문에 재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만든 ‘미투’, ‘위드유’ 문구가 붙었다.

졸업생들이 시작한 미투에 재학생들이 지지를 보냈다. 학교 내 성폭력은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투 이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활동 중인 14년도 졸업생 단체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와 재학생 단체 ‘용화여고 with you’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인터뷰이: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 위원장 강지원(24, 가명), 김한나(24, 가명) / ‘용화여고 with you’ 김유진(19, 가명), 김지혜(19, 가명)

* 졸업생은 (졸), 재학생은 (재)로 표시했습니다.

 

ⓒ 페이스북 페이지 ‘용화여고 with you’

 

 

 “자랑스럽니?”, “네, 자랑스러워요” … “포스트잇 글자들이 한편으론 SOS처럼 느껴졌어요”

 

Q. 많이들 알고 있는 것은 재학생들이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인 사진인데, ‘용화여고 미투’가 실은 졸업생들로부터 시작됐다. 어떤 계기로 고발을 결심했는지 궁금하다.

 

(졸) 지원: 고발한 교사가 재학 당시 우리 담임이었다. 선생님의 행동에 불편함은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지만 당시엔 그냥 다 무서웠다. 학교가 무섭고, 교사가 무섭고. 목소리를 내면 문제아로 낙인찍히진 않을지, 생활기록부가 안 좋게 쓰이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졸업 후에 친구들끼리 만나면 그 선생님 욕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와중 미투가 여기저기서 터지더라. 우리가 안 하는 게 이상한 것 같았다. 우리도 충분히 그 사람이 가해자임을 밝힐 수 있는데. 이제라도 그 교사를 학교 밖으로 내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Q. 고발 이후에 재학생들이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여 만든 글자가 큰 이슈가 됐다. 이런 행동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재) 지혜: 사전에 기획한 것은 없었다. (웃음) 처음 만든 글자가 ‘WITH YOU’인데, 그냥 우리 재학생들도 함께 있을 테니 피해자들이 위축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붙인 것. 그런데 아무래도 선생님들이 이런 문구를 못 붙이게 할 것 같은 거다. 그래서 이동하느라 정신이 없는 금요일 오후 동아리 시간에 4층 이과 반에서 처음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동하던 2학년, 1학년 학생들도 글자를 보고 붙이기 시작하더라. ME TOO, WE CAN DO ANYTHING 이렇게.

 

Q. 포스트잇을 붙일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재) 지혜: 3층까지 포스트잇을 붙인 후에 세 명이서 밖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걸 본 한 선생님이 달려와선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하더라. 우릴 불러놓고 “너희 자랑스럽니?” 이렇게 물어보셨다. 한솥밥 먹는 가족인데 그렇게 해야 하느냐, 너희 부모님이 그런 일을 해도 밝힐 거냐고.

 

Q. 그래서 어떻게 답했나?

 

(재) 지혜: “네, 자랑스러워요.” (웃음) 당연한 거다.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피해받고 상처받은 학생들은 분명 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말했더니 저런 문구를 보면 교사들이 상처를 받는다고 또 뭐라 하셨다. 그 후에 포스트잇을 떼라는 교내방송이 나오더라.

 

Q. 졸업생분들은 재학생들의 연대를 예상했을지 궁금하다.

 

(졸) 지원: (포스트잇 행동은) 뉴스를 통해서 봤다. 처음 신고를 하기 위해 피해를 묻는 설문을 돌렸을 때도 졸업생 위주로만 해서, 재학생들이 동의해줄 것이라곤 생각 못 했다. 고맙기도 하고 멋있기도 했다.

 

(졸) 한나: 처음엔 감동적이었는데 점점 마음이 안 좋아지더라. ‘아직도 똑같구나.’ 싶어서. 포스트잇으로 쓴 그 글자들이 학교라는 고립된 사회 속에서 학생들이 보내는 SOS처럼 느껴졌다.

 

 

ⓒ 페이스북 페이지 ‘용화여고 with you’ / “지켜줄게”, “혼자가 아니야”

 

 

“미투 신고할 건 아니지?” … 스탠드바, 카바레 단어도 버젓이

 

Q. 말씀처럼 피해 경험이 졸업생이나 재학생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졸) 지원: (고발당한 교사의) 유행어가 있었는데, “언더스탠드빠?”라고 하면 학생들이 “예스카바레, 예스마담” 이렇게 대답하는 거다. 스탠드바, 카바레, 마담 이런 용어에서 따온 말들이 교내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버젓이 쓰이는 것. ‘흰둥이’, ‘껌둥이’, ‘이쁜이’ 이렇게 나뉘기도 했다. 저는 ‘껌둥이’에 속하는 학생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콤플렉스가 생겨서 까무잡잡한 애들끼리 하얘지는 약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언행들이 정말 많았다.

 

(재) 유진: (그 유행어) 뭔지 안다. 정말 똑같다. 미투운동이 시작된 후엔 담임을 맡은 교실에 가서 ‘너희 고3이니깐 부항을 교실에 둘까? 그런데 부항 놓으면 미투같은 거 신고할 거잖아’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반 친구 허리를 감싸면서 ‘이렇게 하면 미투 신고할 건 아니지?’ 이런 말도 하고.

 

(재) 지혜: 그 행동들이 불편해도 직접 표현할 수가 없다. “대학 가기 싫어요?” 이런 말 들으면 무섭고, 생활기록부로 협박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졸) 지원: “이렇게 하면 생활기록부에 다 쓸 거다”라는 말엔 사실 정답이 있다. 그냥 “네”는 틀린 답이다. 애교스럽고 사근사근한, 귀여운 반응을 요구한다. 실제로 생활기록부가 아끼는 애들은 여섯 줄, 싫어하는 애들은 두세 줄 이렇게 차이가 나기도 하고.

 

(졸) 한나: 그냥 웃고 넘긴 것들도 많다. 일단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잘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선생님들이 웃음을 강요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재) 지혜: “너희 이렇게 반응 안 하면 교과서만 읽는다. 수업 할 맛 안 난다” 이런 식으로.

 

(졸) 한나: 선생님들은 교사의 행동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얼마나 큰 권력과 권위에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인지를 모르는 것 같다.

 

(졸) 지원: 이렇게 말하다 보니 정말로 달라진 게 없다.

 

 

상담센터는 진입장벽 커 … 교원평가 시 “수업 이외의 것은 쓰지 말라”

 

Q. 상담센터나 교원평가 등의 방법을 이용할 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졸) 지원: 교내에 상담센터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상담센터는 소위 ‘정말 큰 일’이 아닌 이상 가면 안 되는 곳으로 느껴졌다. 일종의 진입장벽이 있었다.

 

(졸) 한나: 설문조사나 교원평가는 담임이 볼 것 같아서 쓸 수 없었다.

 

(졸) 지원: 같은 반 친구가 교원평가에 선생님의 행동이 불편하단 식의 글을 적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처리가 전혀 안 됐다. 심지어 다음 해에 방송으로 ‘교원평가를 할 때 수업 이외의 것은 쓰지 말라’는 말이 나왔다.

 

(재) 유진: 앞에 선생님이 있고 친구들도 옆에 있으니 맘 편히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느낀다. 선생님에 대해 좋은 점, 안 좋은 점을 각각 300자씩 쓸 수 있는 칸이 있는데, 수업에 들어와서 누가 뭘 썼는지 알아낼 것이라고 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고함20

 

 

‘진정한’ 학교를 위해서: 사학의 고질적인 병폐‧분위기‧허울뿐인 제도가 바뀌어야

 

Q. 이런 문제들이 비단 용화여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학교 내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선 미투 이후로 사회의 인식이나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졸) 지원: 사실 교사 개인을 처벌하고 해고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사학의 수직적인 구조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학생인 우리도 선생님들 간 권력구조를 그리라면 그릴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 피라미드가 문제의 온상이 아닐까. 꼭대기엔 재단 관계자와 가족들, 그리고 그 라인들이 고착화되면서 많은 문제가 묵인된다.

 

(재) 지혜: 그런 환경에선 비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학생을 위하는 학교가 됐으면 한다.

 

(졸) 한나: 목소리를 냈을 때 이상한 학생으로 취급받는 분위기가 아니어야 한다. 수박 겉핥기식 성교육을 개선한다거나 면담 시 녹음을 할 수 있게 하는, 더욱 구체적인 방안도 필요하다.

 

(재) 유진: 학생에겐 학교가 정말 크다. 우리는 교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목소리를 내고자 했을 때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설문하면서도 ‘이런 거 적어도 될까?’, ‘그런 거 왜 적어 그건 장난이잖아.’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을 수 있도록.

 

Q. 신고가 접수되고 두 달여가 지났다. 이후 활동할 계획이 또 있으신지?

 

(졸) 한나: (웃음) 오늘 그걸 구체적으로 회의하기 위해 만난 것이기도 하다.

 

(졸) 지원: 스쿨미투를 좀 더 확장하고자 한다.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 모임’과 함께 문화제를 기획 중이다. 이것이 비단 용화여고라는 한 사립학교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바로 옆에 있는 노원구의 다른 학교에서도 버젓이 성폭력은 발생할 테다. 말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이 문화제에서 교내 권력형 성폭력 실태를 폭로하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 페이스북 페이지 ‘용화여고 with you’

 

고발된 교사들은 이제 학교에 없다. 교육청의 특별감사가 이뤄졌고, 따로 상담교사도 학교를 방문했다. 학생들은 다시 똑같이 수업을 받고, 급식을 먹고, 공부를 한다. 그러나, 아직 학생들이 창문에 붙인 포스트잇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학교를 바꿀 소란은 이제 시작이다.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와 ‘용화여고 with you’의 행보를 응원한다.

 

 

글. 제인 (dbswls50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