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지 마.’ 어려운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와도 십 년 전, 혹은 몇 시간 전에 찍힌 불법 촬영물이 여전히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시계, 보조배터리, 물병 모양의 초소형 무음 카메라가 판매되고, 해외에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법촬영을 ‘MOLKKA’라는 고유명사로 소개한다. 한편, 수많은 몰카 전수조사 결과는 ‘0개’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불안감도 0%여야 하지 않을까? <고함20>은 ‘몰카’ 사회 속, 0개와 0% 사이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거 절대 못 잡아요. 품이 너무 많이 들어요. 저렇게 뛰는 거 보면 딱 상습범이네. 어차피 금방 잡힐 거예요.”

다음에 잡히면 연락 드릴게요.
네? 귀를 의심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CCTV에는 흐릿하지만 용의자의 얼굴이 분명히 찍혀 있었다. 서류가방 한가운데 뚫린 수상한 구멍, 핸드폰과 가방을 연결하는 전선을 봤지만, 경찰은 잡기 어렵다고 했다. 사건접수를 받는 경찰관도 비슷한 말을 했다. “아, 이거 어차피 안 잡힐텐데… 뭐 접수는 해드릴 수 있어요.”

석연치 않은 사건접수를 마치고 지구대를 나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 지하철 계단에는 불법촬영을 금지하는 경찰청 홍보물이 붙어있었다. ‘불법촬영은 명백한 범죄행위입니다.’ 단호한 문구가 기만적으로 느껴졌다. 명백한 범죄행위지만 잡을 수는 없다는 걸까.

 

신고하면 잡아주는 거 맞죠…?  ⓒ서울지방경찰청

 


몰카 전수조사 결과 ‘0개’ … 몰카 공포는 허상? 

몰카 범죄 근절을 위해 다들 동분서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언론보도를 통해 몰카 범죄 규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경찰청에서도 지난 6월 1일부터 다음달인 8월 25일까지 불법촬영물 유포를 집중단속 하겠다고 밝혔다. 지방 경찰청을 비롯하여 여러 공공기관은 몰카 점검을 활발히 시행중이다. 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은 그 중에서도 조사 의뢰를 가장 많이 받는 조직 중 하나다. 여성안심보안관은 작년 11월까지 화장실, 탈의실, 샤워실을 포함하여 약 57,000여 곳을 점검했고, 올해 2월에만 약 1400개 건물의 화장실, 샤워실 등 4700여 곳을 점검했다. 점검한 곳에서 적발된 몰카 수는 예외없이 0개였다. 서울, 목포, 경남경찰청이 올해 자체적으로 진행한 공중화장실 몰카 점검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상황에 ‘몰카포비아’라는 신조어의 등장은 우려스럽다. ‘몰카포비아’란 공중화장실이나 탈의실 등에서 몰카 범죄의 피해자가 될까 두려워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언론을 중심으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이 단어는, 만연한 몰카 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두려움을 대변하는 듯하다. ‘포비아’의 속뜻은 ‘근거 없는 공포심이나 두려움’이다. ‘몰카’와 ‘포비아’의 조합은 몰카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심이 막연함을 의미한다. 일관된 전수조사 결과는 ‘포비아’라는 단어와 맥을 같이 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몰카에 대한 공포심을 허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몰카 범죄의 85%, 이동형 몰카

서울시를 비롯한 각종 단체에서 실시하는 몰카 조사는 설치형 몰래카메라 적발을 목표로 한 조사다. 그러나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몰카 범죄 중 설치형 몰카 비율은 5.1%로 낮은 편이다. 반면 ‘스마트폰 등을 이용한 개인 직접 촬영’은 85.5%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실제로 설치형 몰카 단속에 비해 이동형 몰카 적발을 위한 단발성 단속의 검거율이 훨씬 높다. 경기남부경찰청에서는 지난 5월에서 6월까지 한 달간 몰카 집중단속을 실시한 결과, 지하철 역사 및 열차 안에서 불법촬영을 하던 가해자 82명을 검거했다. 장기적이고 주기적인 설치형 몰카 점검이 매번 ‘0개’를 기록하는 것과 상반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는 일찍이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작년 9월 26일,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공개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6월까지 몰래카메라 판매 및 유통 규제를 위한 등록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15일에는 엄규숙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이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으로 몰카 범죄 대책을 설명했다. 몰래카메라 등록제를 통해 판매와 유통을 강력히 규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어떤 법안도 의결에 부쳐지지 않았다. 작년 12월 진선미 의원이 ‘몰카판매규제법 (위장형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으나, 여전히 계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엄규숙 여성가족비서관의 청와대 국민청원 LIVE 캡처                                                                      ⓒ유투브

이동형 몰카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은 아직까지 마련된 바가 없다.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직접 발견하는 것만이 가해자를 잡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지방경찰청에서 단기간에 진행하는 일제점검이 있지만, 이는 설치형 몰카 점검 시 이벤트성으로 동반되는 식이다. 불법촬영 범죄를 대하는 경찰 구성원의 인식변화도 절실하다. 불법촬영 근절을 약속하는 거시적 차원의 경찰집단과, 현장에서 사건을 접수하는 경찰 개개인의 온도 차이가 크다. 현재로서는 사법적인 대비책은 커녕, 피해자가 직접 불법촬영을 고발해도 ‘잡기 힘들다’는 말을 듣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몰카 전수조사 결과, 오늘도 0개

“조사결과 몰래카메라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총학생회 공약이었던 ‘몰카’ 전수조사 결과가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됐다. 이번에도 ‘0’개다. 조사는 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과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서울시는 몰카 조사가 실제 범죄사례를 적발하지 못하더라도, 범죄예방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점검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순 없다. 6월 초, 고려대 열람실에서 핸드폰으로 불법촬영을 하던 남성이 체포됐다. 가해자는 적발에 대비해 거짓으로 제출할 여분의 핸드폰까지 소지하고 있었다. 3일 뒤에는 한예종 여자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을 시도하다 도망친 남성이 체포됐다. 화장실에서 낯선 남자가 뛰쳐나오는 걸 목격한 친구는 화장실 가기가 무섭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정말 ‘몰카 안전지대’일까. 몰카는 지금도 여기, 이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글. 차가운손 (coldhand0819@gmail.com)
특성이미지 ⓒYTN

기획 [몰카몰까]

기획. 히파티아, 키키, 제인, 차가운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