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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 ‘이성적인 법’은 없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비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이후 첫 번째 판결이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 이러한 범죄 사실을 인정할만한 증명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재판부는 ‘No means No rule’*, ‘Yes means Yes rule’*을 언급하며 현행 성폭력 범죄 처벌법으로는 안 전 지사의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일까?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현행법의 사각지대라고 하지만 피해자가 저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등 피해자 관점에서 바라본 판례도 있다”며 재판부의 시각을 지적했다.

 


– 그럼 무엇이 위력인가

재판부는 피고인인 안희정 전 지사와 그의 비서였던 피해자의 관계가 위력에 해당하지만, 이를 남용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만약 여기서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당신은 비상근 프리랜서로 있으며, 함께 일하는 A는 직급과 연령 모두 당신보다 높다. 어느 날, A가 당신에게 사적으로 만날 것을 제안했다. 거절하고 싶지만, A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인력으로, 프로젝트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다. 결국, 당신은 A와 주말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거나 마음에도 없는 등산을 하게 된다. 그럼 이때의 만남은 위력에 의한 행위가 아닌 걸까? 당신은 무어라 답하겠는가.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 ⓒ 찍는페미

 

폭행과 협박을 동원하지 않아도 피해 당사자가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 그 자체가 ‘위력’이다. 더군다나 ‘24시간 휴대전화를 소지해야 한다’는 매뉴얼이 존재할 만큼, 일상 속 자유의사를 억압받았던 수행비서라는 위치는 그 위력에 매우 취약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평소 행태를 검증하는 일보다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는 데 집중한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배포한 보도자료, 즉 판결 요약본을 보면, 온통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살피는 내용뿐이다. 피해자가 허위진술을 했다는 피고인 측 변호인단의 주장을 재판부가 그대로 읊어낸 격이다.

반면에 안 전 지사의 진술은 이 같은 일련의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피고인은 미투 고발 직후 SNS에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입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피고인은 과거 구속영장을 심사할 당시 증거에 해당되는 휴대전화를 폐기한 전적까지 있다. 그러나 정작 판결 요약본에는 피고인의 진술 번복과 행적을 문제 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재판부가 진술의 신빙성이라 일컫는 ‘의심’‘입증’의 고려 대상은 오직 ‘피해자’로만 한정된다.

 


– 판결을 빙자한 2차 가해

‘당시 상황, 과거 간음상황 등에 비추어 (피고인의 발언이 간음을 뜻한다는) 그 의미를 넉넉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 ‘피해자 스스로가 (피고인의) 행위를 용이하게 함’. 이는 ‘성인지 감수성*적 고려’를 판단의 전제로 했다는 실제 판결 내용이다. 피해 사실을 두고 피해자의 자의가 있었던 행위로 보는 재판부의 ‘해석’은 편파적이다. 사건 당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하는 위력이 작용했다는 사실관계를 지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가해자에게 감정이입 하는 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 이처럼 2차 가해에 해당되는 재판부의 해석은 또 다른 가해를 양산한다. 이미 각종 포털 사이트에는 판결 요약본 중 안 전 지사가 피해자에게 했던 발언처럼, 자극적인 부분만을 오려낸 단어들이 연관 검색어로 등록됐다. 피해자의 성폭력 고발을 폄하하는 2차 가해가 급증하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성인지적 관점이 부족한 사회에서 이 같은 판결을 그대로 수용할 위험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성적 자기결정권*, 성적 그루밍*성폭력 여성들의 언어를 빼앗아 그 뜻을 오용했음에도 이는 판결의 타당성을 말하는 근거로 사용됐다. 실제로 일부 언론들은 ‘성범죄자라는 최악의 오명을 피하는 순간’, ‘최소한의 명예 회복에는 성공’이라며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을 긍정함과 동시에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지워냈다. ‘불륜’, ‘복수’라는 단어를 사용해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미투 운동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악성 여론 또한 최고치에 달했다.

 


– #METOO는 계속된다

이번 판결 이후, 더는 한국 사회에서 미투 확산이 어려울 거라는 얘기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본 사건이 미투 운동에 촉진제가 됐던 만큼, 안 전 지사의 무죄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판결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 ⓒ 찍는페미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도 여성들은 본인의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선고 당일 서부지방법원 앞에 모인 400여 명의 시민들은 안희정은 유죄다! 사법부도 유죄다!”라며 재판부의 판결에 항의했다. 갑자기 진행된 집회였음에도 수많은 여성이 자진해 자유 발언을 이어갔고 이는 2시간이 넘도록 계속됐다. 각자 발언하고자 한 계기는 달랐지만, 본 사건의 유죄 판결을 요구하는 건 모두 같았다. 그중 본인을 성폭력 피해자라고 밝힌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은 정말 유죄가 나올 줄 알았다. 피해자 스스로만을 생각한다면 조용히 잊고, 덮고 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하는 건, 가해자는 감옥에 가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단순 명료한 일이 이뤄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로 더욱 확실해졌다. 이 나라에 소위 이성적, 합리적이라 얘기되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성폭력 추방을 말하면서 여전히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 입증을 요구하는 재판부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시국에 ‘미투’는 법 없는 나라에 ‘이성적인 법’을 만들고자 하는 여성들의 투쟁임이 분명해 보인다.

 

 

No means No rule – 상대방이 부동의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에는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

  Yes means Yes rule – 상대방의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성관계 동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성관계로 나아가면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

  성인지 감수성 – 성별에 대한 편견에 갇히지 않는 태도나 감수성

  성적 자기결정권 – 성적인 영역에서 어떠한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성적 그루밍 –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분을 쌓은 뒤 신뢰나 권위를 기반으로 피해자를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행위

 

 

글. 이상한 (dkdud4729@naver.com)

특성이미지 ⓒ 찍는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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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이상한 세계 속 이상한 무언가

3 Comments
  1. Avatar
    무명

    2018년 8월 17일 22:24

    글쎄요.. 글쓴이 분께서 피해자입장에 감정 이입하시는 건 아닐까요?
    등산, 각종 사적 연락 등등에 비유해서 말씀하셨는데, 대부분 가벼운 부탁이나 행위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거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과 성폭행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정도에서 차이가 있다는 얘기죠. 아무리 프로젝트 결정권자가 죽으란다고 죽는 시늉을 할지언정 정말 죽을 순 없습니다. 이 비유 자체도 우습죠? 딱 이 정도로 밖에는 와닿지 않습니다. 강간이란 게 인격살인이라면 충분히 저항하게 됩니다.
    비유같은 문제를 떠나서 법이란 무엇인가부터 다시 검토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입법에 앞서 보통 크게 두 가지를 살펴보는데요, 하나는 합리성이고, 하나는 실효성입니다. 제가 논하고 싶은 부분은 합리성이 아니라, 실효성의 부분인데요, 아무리 합리적인 법안이라도 ‘법익’이 법령으로 인한 부작용보다 커야합니다.
    과연 기자분께서 말씀하신대로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자라 하면 처벌해야한다’는 식으로 법령이 바뀐다면, 분명 이를 악용할 사람이 존재 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에 있어선 법을 이용한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 해당 행위의 피해자인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다시말해, 재판이란 건 ‘피해자의 기분’을 대변해주는 곳이 아니란 얘깁니다.
    당연히 비서야 기분 나빴겠죠. 실제로 성폭행이었으면 성폭행이었기에 기분 나빴을 거고, 뭔가 기대를 품고 행동한 ‘준성상납 형태’였다면, 보상 못받았으니까 기분 나빴을겁니다. 즉, 피해자라는 점은 인정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앞서 말했듯 법이란 건 피해자의 ‘기분’을 대변해주는 기관이 아니라고요.. 이래서 사람이 욕심과 기대를 버려야 해요.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며, ‘저 사람이 날 버릴 수 있다’ 혹은 ‘피치 못한 사정으로 떠날 수 있다(죽는다거나)’란 보편적인 세상살이에 대해 기억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그 비서는 일반 사원한테도 똑같이 행동했을까요? 절대 아닐겁니다. 욕심이 있으니까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남의 의지대로 살다가 버림받고 슬퍼하고….
    물론 안희정이 유죄라는 건 동의합니다. 하지만 비서 성폭력범이란 건 판결이 일단은 무죄선고니까 저 역시 동의 못하겠습니다.

  2. Avatar
    무명

    2018년 8월 17일 22:30

    추가적으로 일본영화인 ‘그래도 난 하지 않았어’를 꼭 보시길 바랍니다. 법이란 게 ‘피해자의 기분을 대변해선 안되는 이유’, ‘아주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정말 공감 많이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가까운 나라임에도 법에 대해선 어떻게 이렇게 딴 입장을 갖고 있는지 싶을 정도로….

  3. Avatar
    익명

    2018년 8월 29일 23:53

    세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1. 무죄추정의 원칙
    2. 증거재판주의
    3. 입증책임

    안희정의 무죄 판결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겠죠.

    그러나 본문은 전혀 설득력이 없네요. 재판은 논리의 싸움이지 감정의 싸움이 아닙니다.

    법관을 “2차 가해에 동조한 한국남자”로 감정적으로 몰고 가지마시고 원고측 증거의 증명력을 인정하지 않은 법과의 판단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중심으로 비판했으면 그럴듯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멋대로 “위력”을 정의하고,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독자를 호도하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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