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력 조사 해당자이십니다, 연락주세요”

지난 8월 말 한 SNS에 퍼진 출산력 조사 안내문에 쓰인 문구다. 해당 게시글에는 “1968~1998 해당자이십니다”라는 짧은 메모가 적힌<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 조사> 안내문 사진이 있었다. 1968년과 1998년 사이에 태어난 가임기 여성이니 조사의 대상자임을 알리는 이 종이는 대상자가 부재중이라는 이유로 버젓이 문 앞에 붙여져 있었다.

 

출산력 조사란 정부가 196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조사다. 3년을 주기로 가임기 여성을 직접 만나 조사하는데, 이때 조사하는‘출산력’(fertility)이란 특정 사회의 가임기 여성이 얼마나 아이를 낳는지를 의미한다. 정부의 인구, 보건, 복지, 저출산 분야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만드는 것이 조사의 목표이다. 출산력을 조사하는 데에는 임신 횟수, 피임 여부, 산전 검진 여부, 분만 등 출산율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들을 고려한다.

 

그러나 이 조사는 많은 비판에 놓여 왔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출산력 조사의 5번 문항이다. “가족 내 부부의 역할과 관련한 다음의 견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이 문항은, “아이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잘 키울 수 있다.”, “아내는 자신의 경력을 쌓기보다는 남편이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등과 같이 가부장적 내용을 담은 견해들을 열거하고 있다. 시행된 지 50년이 넘는 이 조사의 문항은 50년간 단 한 발짝도 진보하지 않은 듯하다.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가에게 여성이란

ⓒ 행정자치부 / 논란이 되었던 대한민국 출산 지도

 

2016년 행정자치부에서 만들었던 <대한민국 출산 지도>를 기억한다. 전국의 가임기 여성의 수를 지역별로 표시하고, 전국 순위도 볼 수 있는 지도였다. 당시 논란이 거세지자 행자부는 자료 제공을 중지하고 해명한 바 있다. 그 지도는 사라졌지만 2년 전이나 지금이나, 혹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전히 여성은 국가에게 출산지도의 수많은 점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지난 2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인공임신중절 설문지> 또한 비슷한 시각의 연장선이다. 관련 질문에 대해서 ‘성문화 문란이나 ‘생명 경시 풍조’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이미 결론을 염두에 두고 하는 편향된 조사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5일에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의 대안으로 ‘출산주도성장’을 주장했다. 여성이 아이를 많이 낳도록 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얼마나 여성의 몸을 ‘출산하는 도구’ 혹은 국가를 위한 공공재로 여기는지가 드러난다. 만일 여성을 도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이토록 출산에 관련된 문제를 이야기할 때 강박적으로 여성만을 결부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출산율을 높임으로써 국가의 발전을 꾀해보자는 당당한 연설 또한 없었을 것이다.

 

ⓒ 한겨레 신문 / 논란이 된 인공임신중절 설문 문항

 

정부는 저출산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에 늘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여성에 공감하고 있지 않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여성들의 출산 가능성을 조사하고, 여성을 단순히 자궁을 가진 개체의 수로 치환시켜 지도를 만드는 행위가 과연 진정 여성에 공감하고 있는 행위인가.

 

거센 항의가 잇따르자 출산력 조사를 시행한 보건사회연구원은 논란에 대한 해명 글을 게시했다. 조사의 취지는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것이 아니었으며, 출산력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수 있는 말을 모색하고 조사방법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불안하다. 이런 식의 ‘개선하겠다’는 말에 수도 없이 배신당해왔기 때문이다. 가볍게 풀풀 날리는 변명은 이제까지 많이 들어왔다. 출산과 여성을 바라보는 시야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정부가 시행하는 저출산 정책들은 모두 ‘삽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글. 낫또(angelzz1030@gmail.com)

특성 이미지. ⓒ jtbc /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