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총여학생회 폐지. 학내 페미니스트들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대학가의 백래시(backlash : 사회적 진보/변화에 대한 대중의 반발)는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게 유의미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이에 <고함20>은 조직화된 백래시의 동향과 그 구조를 짚고, 이에 대응하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한다. 

11월 18일 혜화의 한 카페에 할 말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였다. 성균관대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와 연세대 <우리에게는 총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건국대 학보사, 서울시립대 여학우 소모임이 집담회에 참여했다. <고함20>은 [긴급점검!학내백래시] 기획 인터뷰에서 총 3편에 걸쳐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인터뷰의 마지막 편에선 총여폐지와 학내 백래시 다음의 행보에 대해 들어보고자 한다.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목소리는 폭력을 마주하거나 아예 음소거 되어버렸다. 학내 페미니즘 백래시 ‘열풍’이 불고있는 현실 속에서 페미니즘을 계속 말하는 건 지치고, 소모되고, 피로한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들은 지금 여기서 백래시 ‘다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 연세대는 (연), 성균관대는 (성), 건국대는 (건)으로, 서울시립대는 (시)로 표기

 

 

성성어나 우총필의 경우 총여 폐지흐름에 대응하는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라 알고 있다. 이 모임을 어떻게 꾸리게 됐나?

(성) ‘총여 존립에 추진력을 줄만한 단체가 있어야 하지 않나’ 해서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모여 만든 기구가 성성어였다. 성성어라는 이름이 붙여진 시점에 모였던 사람은 10명이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학내에서 여성주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수월했던 건 조금씩 활동 하던 사람들이니까 친구들한테 ‘단톡 들어올래?’ 하고 연락해서 사람을 모았다. 페이지에 좋아요 눌러주신 분들께 연락하고. 성성어가 중심에서 조직을 하긴 했지만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하며 사람을 구한 식이다.

(연) 은하선씨 강연 반대 추진단이 만들어지고, 연서명이 되고. 학교에서도 압력이 있었다. 여론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고, 학내에서 (집결이) 가능한 유일한 것이 백래시 같았다. 그러다 친구가 “야 이거 진짜 큰일나는 거 아냐?”라고 하면서 친구 2명이랑 카페에서 <우리에게는 총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 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학내의 여성주의 단체들에게 모두 연락을 했다. 세 명 모두 학내 여성주의 단체들과 거의 연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많은 분들이 호응해줬다. 조직적인 모임 이었다기 보다는, 개인과 단체들의 연대체 느낌이 강했다.

 

ⓒ <우리에게는 총여학생회가 필요하다> 페이스북

 

다른 학내 단체의 연대가 있었나?

(성) 우리는 그나마 몇몇 단과대나 학과에서 지지해주고 대자보도 써주셨다. 한 학과 회장님의 경우 열심히 싸워주셨는데 총투표 끝나자마자 과 내에서 탄핵안이 발의되고, 공격이 쏟아졌다. 사과문도 쓰고 입장문도 썼지만 결국 사퇴의사를 밝혔다.

학내 여성주의 관련 모임, 학회 단체에서도 강력히 지지해줬다. 여러 곳에서 연대해주셨지만 다같이 공격받았다. 그래서 총여가 폐지된 사실이 슬펐던 것보다도 우리를 위해서 모여준 사람들한테 너무 고마웠다. 사실 어디 동아리 회장정도면 조금만 찾아도 신상이 나올 수 있다. 신상이 다 털리는 와중에도 연락이 오고, 회의에 나오고. 그런 것 때문에 많이 울었다.

 

동력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면? 이런 힘든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연) 너무나 많은 학내 페미니스트들을 만났다. 각자의 삶에서 고군분투해오던 페미니스트들, 그런 사람들이 알고 보니 많았던 거다.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가 46시간 동안 있었는데, 그 46시간 동안 총여 재개편 추진단 측은 계속 나가 떨어진다. 막차되면 집에 가시고. 그런데 거기 있는 2-30명의 참관인들이 계속해서 남아있었다. 밤새. 이게 절실함의 차이라고 느꼈다.

(성) 비슷하다. 총투표가 이뤄지는 내내 보이콧 피켓팅을 계속 했다. 투표소 앞에서 6시간씩 서있었는데, 아직까지 먹을 정도로 간식을 너무 많이 사주셨다. 총투표 후 <야 잘 싸웠다> 라는 집회에서 다들 서로 다독였다. ‘3일차 투표율 보지 않았냐, 50% 못 넘었다. 우리가 패배감 느낄 필요 없다.’ 이렇게 얘기했었다. 

 

ⓒ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페이스북

 

(연) 다같이 모여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을 아직도 들여다 본다. 그러면서 ‘그래, 공격도 많았지만 우리 이럴 수 있어.’ 이런 생각이 들고. 우총필 활동할 때, 연대 졸업생 여성주의자 네트워크가 발족이 되기도 했다. 그 네트워크에서 예전에 총여 활동하셨던 분들과 포럼을 기획했다. 총여와 여성주의의 관계는 어떻고, 총여의 역사는 어땠고, 현재는 어떤가에 대해 그 분들과 같이 얘기했는데, 그 시간들에서 힘과 위로를 많이 받았다.

(건)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해서 활발한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대학에서 만나게 되는 페미니스트 분들이랑 얘기하면서 공감되는 지점 찾아 가는 게 좋다.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 경험들을 공유하고, 그때 나오는 탄식을 마주하게 됐을 때 동력을 얻는다. 또,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내 글이 어딘가에 실려서 누군가가 그 글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 할 때도 그렇다.

(시) 지금 이 순간에 동력을 받는 것 같고, 사실 여기에 온 것도 얘기를 듣고 싶기 때문이었는데 잘 왔다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성) 총여는 없어졌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말을 계속 하는 게 목표다. 성성어라는 단체가 성평등을 의제로 걸었으니, 공대 총여 폐지 총투표나 이수역 사건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계속해서 학내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게 올해의 목표다. 학내에 있는 파편화 되어있는 페미니스트 개인 혹은 단체들과 연대체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한다. 소수자 연대체 같은 걸 계속 운영하자는 거다. 위기의 상황이 오니 사람들이 다 모였지 않았는가. 이렇게 모인 사람들을 가지고 가보자는 것이다.

(건) 학내 언론에서 페미니즘적인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다. 여기 와서 반성하게 되는 게, 사실 적극적인 행동은 무섭기도 했다. 아직 활동할 수 있는 연대체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 미리 포기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내년부터는 또 다른 페미니즘 소속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기사나 다른 쪽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 학생회장단과 충돌이 많아서 지친 상태였다. ‘송년회를 개최해서 좀 쉬자’, ‘일단은 우리끼리 잘 놀아보자’ 하고 있다. 내년에 들어올 새내기를 생각해서라도 회의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저는 페미니즘 공부를 더 하고.

(연) 희망을 놓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나. 2018년도 총여를 주축으로 재개편 TF가 진행되고 있다. 세 가지 비판점이 있는데 유실된 학생회칙, 학생회비 문제, 운위가 없다는 점이다. 회칙은 만들면 되고, 학생회비는 분리하면 되고, 운위도 이 기회에 여학생위원회를 단과대별로 만들면 되는데 과연 그게 해결된다고 비판이 사라질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않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학내 연대 재학생 여성주의자 네트워크를 발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훨씬 더 조직적이고, 훨씬 더 단단하게 폭력들에 대항하고, 성폭력의 공동체적 해결 같은 것들에 같이 연대하고. 소수자 정치와 성 정치를 함께 해나가면서 이 불균형한 권력의 장에 균열을 내는 일들을 하지 않을까.

 

 

(*편집자 주: 11월29일 <연세 여성주의자 재학생 네트워크>(이하 연여재넷)가 공식화 되었다. 연여재넷은 학내에서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단체 및 개인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글/인터뷰. 낫또(angelzz1030@gmail.com) / 다정

특성이미지.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페이스북

기획 [긴급점검!학내백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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