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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산이-‘진짜’ 페미니스트의 일침

지난 2일, 산이(San E)가 속한 힙합 레이블 브랜뉴뮤직의 연말 콘서트가 있었다. 최근 발표한 곡 ‘F E M I N I S T’과 관련해 여성혐오 논란이 있었던 산이는 관객들에게 “내가 싫으냐”라고 물었다. “산이야 추하다”라는 문구가 적힌 인형이 자신에게 날아든 것을 보고, 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워마든 독, 페미니스트 노(NO), 걔넨 정신병”이라고 외쳤다. 관객들의 싸한 반응에 결국 그의 공연은 중단됐고, 몇 분 뒤 브랜뉴뮤직의 대표가 직접 사과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산이는 억울하다

그는 수도 없이 자신이 여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증명해왔다. “F E M I N I S T”에는 “난 여자 편야, 난 여잘 혐오하지 않아 오히려 너무 사랑해서 문제”라는 가사도 나온다. 그가 여성을 사랑한다는 주장은 언뜻 보기에는 타당해 보인다. 산이는 과거 “머리부터 발끝까지 침 바르고 싶어 날 세워주고 받아주는 너의 속은 깊어 네 아름다운 선율 마치 오케스트라”(San E–Body language)라며 여성의 몸을 찬미하는 가사를 쓴 바 있다. 자신 옆의 아름다운 여성을 자신의 자랑거리 삼아 과시한 전적도 있다. [관련기사] 아이린은 산이의 트로피가 아니다

산이의 ‘Body Language’ 앨범 커버 / ⓒ 네이버뮤직

 

또한 산이는 지금까지 자신의 노래에서 여러 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했다. 그뿐만 아니라, 뒤이어 발표한 노래 ‘6.9cm’, ‘웅앵웅’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이 비판하는 것은 ‘진짜 여성’이 아니라 ‘메갈’, ‘워마드’임을 강조한다. 즉 페미니스트로서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지지하지만 메갈·워마드는 ‘가짜’ 페미니스트라는 것이다. 그는 ‘진짜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여성혐오자가 아니라, 사회악에 대항하는 ‘정의의 사도’가 되고자 했을 뿐이다.

 

산이는 그럼 ‘진짜 페미니스트’인가

사실 산이가 보여준 ‘여성을 사랑하는 모습’, 즉 자신이 여성혐오자가 아님을 열렬히 대변해주는 증거들은 여성혐오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감정적 혐오만을 뜻하지 않는다.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 하는 것’, ‘예쁜 여성을 자랑거리로 삼는 것’, ‘여성을 보호해야 할 대상에 가둬두는 것’ 모두 여성혐오이다. 이는 여성의 주체성을 박탈시키고 여성을 단순한 객체의 위치에 고정하는 것이다. 이때 여성은 객체로서 좀 더 특별히 대우받거나 추앙받을 수는 있어도 절대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여성혐오 이슈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유독 이번 논란만이 가지는 특수한 점이 있다. 바로 여성혐오 중에서도 페미니즘 혐오가 도드라지게 표출됐단 점이다. 산이는 끊임없이 ‘진짜 페미니스트’와 ‘메갈·워마드’를 구분 지으며 후자는 사회악이라고 말한다.

‘웅앵웅’ 가사 / ⓒ 유투브 (San E) 캡쳐

 

여성을 대상으로 한 구분 짓기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0여 년 전, ‘된장녀’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뒤이어 ‘김치녀’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 둘은 모두 ‘개념녀’와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치스럽고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개념의 등장으로 여성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했고, 남성들은 조금이라도 사치스럽거나 이기적인 여성에게 된장녀/김치녀라는 이름을 붙여 여성들을 옥죄었다. 이때 “사치스럽거나 이기적인”이라는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남성 개개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이는 곧 특정 여성들만을 비판한다는 목적으로 허상의 개념을 세우고, 여성 스스로 개념녀가 되도록 길들이는 전략이었다.

‘진짜 페미니스트’와 ‘메갈·워마드’를 구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진짜 페미니스트’를 선정(?)하는 기준은 매우 자의적이며, 이러한 분류의 시도는 낙인찍기를 통한 입막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남성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말이 나오면 쉽게 “너는 진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메갈이야”라고 말한다. 이는 ‘진짜 페미니스트’와 대비되는 ‘메갈’이란 대립항을 세움으로써 가능해진 일이다. 페미니스트들의 입을 막으려는 것이다. 이 구분은 마치 ‘일부’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페미니즘 전반에 대한 혐오에 불과하다.

 

‘사회악’과 싸우는 ‘정의의 사도’?

그는 메갈, 워마드를 저격하며 그들은 ‘정신병’이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여성혐오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병에 대한 혐오까지 담고 있다. 또한 ‘웅앵웅’에서는 ‘쿵쾅쿵쾅’이라는 구절이 반복된다. 이는 비만인에 대한 혐오이다. 늘 그렇듯, 혐오는 혼자 오지 않는다. 그가 혐오의 대상으로 삼은 것들은 모두 이미 사회에서도 혐오의 대상인 소수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산이는 콘서트에서 마이크를 잡고 관객들을 향해 ‘I don’t give a fxxk, 너넨 정신병’ 따위의 말을 뱉을 때 자신이 죽임당하거나 폭행당할 위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6.9cm’라는 다소 성적으로 자극적인 제목의 노래를 발표해도 성폭력에 노출될 위험은 거의 없다. 또 이미 과열된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소속사 콘서트에 오를 수 있었다. 이는 모두 그가 남성으로서 가진 ‘젠더 권력’ 덕분이다.

 

산이를 응원하는 댓글들 / ⓒ 온라인 커뮤니티 <힙합LE>

 

산이는 끊임없이 ‘메갈과 워마드는 사회악’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거대한 문제적 집단에 대항하는 ‘정의의 사도’인 양 포장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한 행동은 자신의 기득권 행사를 통한, 세상에 이미 만연한 ‘쉬운 혐오’의 답습에 불과하다. 그가 아무리 스스로를 ‘거대 세력에 기꺼이 대항하는 정의로운 약자’라고 생각한다 해도, 그와 ‘정의의 사도’는 거리가 멀다. 권력은 원래 가진 자에게는 잘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이 시류를 제때 읽어내지 못한다면

산이는 더이상 트렌디 하지 않다. 이제 시대는 변했고, 사람들은 더이상 여성의 몸을 찬미하는 노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더이상 보호의 대상으로만 머무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여성혐오적 콘텐츠는 팔리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환호는 예전 같지 않으며, 사람들은 이제 ‘진부한 혐오’만을 좇지 않는다.

2016년11월, <고함20>의 한 기사에서 예언한 바 있다. “이 시류를 따라가지 못할 때 산이는, 유물로 도태될 것”이라고. [관련기사] [킬-조이]’나쁜 년?’ 산이는 전혀 트렌디하지 않다 그렇다. 결국 그는 도태되었다. 처음 “F E M I N I S T”라는 노래를 공개한 날, 그는 예정돼 있던 한 여성 운동복 판매처에서 개최하는 행사 참여를 취소당했다. 소속사에서는 ‘계획에 없던 돌발 음원’이라며 선을 긋기도 했다. 콘서트 무대에서 아무리‘통쾌한 일침’을 날렸다고 생각해봤자, 그의 앞에 있는 관객들은 싸늘할 뿐이다.

‘여성혐오’라는 지적에 자신이 여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토로하며 억울해하며, 결국 수많은 혐오가 중첩된 발언을 내뱉으며 분노하는 산이. 그의 모습은 소위 ‘메갈리아’를 혐오한다는 한국 남성들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그와 닮아있는 사람들도 산이와 같이 이 시류를 제때 읽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다.

 

글. 부추(ehdnsrla12@gmail.com)

특성이미지. ⓒ유투브 San E 캡쳐

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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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Avatar
    팬하나

    2018년 12월 10일 21:23

    글 잘 읽고 갑니다. 또 많이 써주세요

  2. Avatar
    익명

    2018년 12월 18일 00:06

    진짜 통쾌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3. Avatar
    ㅇㅁ

    2018년 12월 19일 15:47

    조목조목 설명한 통쾌한 글! 감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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