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하이힐을 신은 긴 생머리 여배우.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새해 첫날부터 대형 영화관에 여자 얼굴이 큼직이 걸려있는 걸 보니 좋았다. 남성이 점령한 한국 상업영화판에 빨간 구두를 신고서라도 여성이 발을 디뎠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다만 셀링 포인트가 그것밖에 없다는 게 아쉬운 거다. 얼마나 ‘알탕’이면 이시영 <언니>에 홀려서 극장에 냉큼 들어서게 됐을까.

이시영 배우는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하이힐이 전복적인 장치라고 했다. 말마따나 여자라고 얕보는 남성들을 하이힐로 찍어누르고, 여성의 호신용품인 전기충격기로 지져버리는 액션은 통쾌하다. 그러나 그뿐이다. (성) 폭력은 현실적으로 전시되고,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비현실적인 영화를 전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배우 이시영은 다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빨간 원피스와 하이힐, 치마, 얇은 다리 등 ‘여자는 가만히 있으라’는 시선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 감독의 의도였던 것 같다. 이 여자가 어떻게 깨부수고, 그들을 응징하는지 보여주고 싶어서 선택한 부분이다”고 답했다. 사진은 영화 <언니> 스틸컷 ⓒ네이버 무비

 

<언니>엔 동생의 목소리가 없다

언니(박인애. 이시영 분)의 동생(박은혜. 박세완 분)은 미성년자 지적장애인이다. 언제나 그렇듯 자매의 우애는 전래동화에서나 나올법하게 돈독하며, 동생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다. 그리고 선량한 여성 지적 장애인은 또래부터 슈퍼 사장님, 동네 사진사와 카센터 사장, 그리고 시의원에게까지 성폭행을 당한다. 또 강제적인 조건만남에서부터 시작해 성판매 업소로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저항하고, 울고, 억울해하지만 차마 언니에겐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인애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 가해자들을 도장 깨기 하듯 처치해나간다.

미성년자 지적 장애인 여성이 성폭력과 폭행의 위험에 노출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성매매의 고리에 말려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이런 극악한 현실을 빌려온 이유는 단순히 인애 ‘언니’의 분노와 복수 서사를 정당화하기 위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은혜가 당하는 폭력은 처절하게, 또 노골적으로 스크린에 전시된다. 은혜는 한국 영화가 늘 그려왔던 순결한 피해자로서 서사를 전개하기 위한 도구일 뿐인 것이다.

 

영화 언니 ⓒ네이버 무비

 

비현실적인 ‘오빠’의 대안, 언니

<언니>는 비범한 주인공이 연약한 피해자를 악의 무리로부터 구출하는 전형적인 영웅 영화다. <언니>라는 제목이 은유하듯, 인애는 여러 면에서 은혜를 ‘구해줄 수 있는’ 이 있는 영웅이다. 이 자매는 보호자와 피보호자, 성인과 아동, 전직 경호원(물리력)과 학생, 비장애인과 장애인이라는 권력 차이 위에 있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피해자를 구원하는 영화가 젠더 권력에 입각해 있는 것처럼 인애 ‘언니’는 은혜에게 시혜적인 영웅이다.

그런데도 주인공이 ‘오빠’가 아니라 <언니>인 이유는 남성성에 대한 불신이 한국 사회 전반에 (드디어) 만연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크린 안팎에서 남성연대는 공고하고, 남성성은 성폭력의 상징처럼 재현된다. <언니>에서도 여성의 몸을 팔아 돈을 버는 건 남성 포주(들)고, 성폭행은 남성들의 협조 속에서 지속된다. 한 명으로 시작한 성폭행은 집단 성폭행이 되고, 성상납이 된다. <내부자들> <베테랑> 등 많은 상업영화 속 권력자들은 남성으로 그려지고, 어김없이 성매매를 통해 친목을 다진다. 남성연대의 핵심이 바로 (폭행. 매매)이라는 사실은 이미 자명하다. ‘여적여’가 아니라 ‘여적남’의 세상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이 여성을 구출하는 시나리오는 비현실적이며, ‘폭력적인 영웅과 순수한 여성의 사랑’이라는 결말은 개연성을 잃는다.

여성 영웅들은 이에 대안처럼 등장한 인물상으로 보인다. 남성 영웅이 품고 있는 결격사유를 보완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즉 오빠는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지만, 언니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여성 영웅 상업 영화의 기저에 깔려있다. 성상납과 남성연대 밖에 존재하는 여성 엘리트(영화 국가부도의 날, 한시현)는 부패한 권력과 맞서며 시민을 대변하고, 여성 경호원(영화 언니, 박인애)은 남성 성폭행 가해자들을 잔혹하게 응징한다.

어쩌면 이게 차라리 현실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식의 여성 주인공 영화는 여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구조와 성으로 결탁하는 남성연대에 대한 비판은 뒤로한 채, ‘정의의 사도 하드웨어’만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다. 여자가 영웅일 수 있는 조건이 ‘고추가 없는 것’이라면, 스크린 속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 평면적인 남성 인물상의 연장선에서 맴돌 뿐이다.

 

포털사이트에 ‘영화 언니’를 검색했을 때 화면 ⓒ고함20

 

‘여자판 XX’를 넘어서

성폭행 가해자를 패고, 찌르고, 지지는 영화임에도 포털사이트에 <언니>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연관검색어는 ‘언니 노출’이다. 기대한 게 ‘노출’ 밖에 없어서 그럴까.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유독 평이 박하다. 여배우와 여성 원탑 영화는 완성도, 개연성, 연기력, 캐릭터 전반에 걸쳐서 평가받고, 품평 당하기 마련이다. <여자판 테이큰>, <여자판 아저씨>, 여자판 어쩌고 꼬리표가 따라오는 건 당연지사다. 그만큼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관객들의 눈에 익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피해자 대상화와 폭력성, 아쉬운 완성도를 뒤로하고도 여성이 남성들을 무찌르는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여자가 주연인 게 단 하나의 셀링포인트인 영화가 더 나오지 않으려면, 여성이 주역인 영화가 질리도록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여배우 이외에 다른 장점이 갖춰진, 좀 더 잘 만든 여성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글. 솜(dhstlsajd@gmail.com)

특성이미지 ⓒ네이버 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