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자 두 명이 서울에서 함께 살 자취방을 구하기로 한다. 부동산 중개앱에서 매물을 슬쩍 확인한다. 몇몇 집소개가 눈에 띈다. “여자가 살기 좋은 집.” 부동산에 연락해 중개인을 만난다. “여자가 살기에 이만큼 좋은 집이 없죠.” 그도 말한다. 룸메이트와 나는 여자가 살기 좋은 집을 찾아 다양한 형태의 주거공간 10여 곳을 둘러봤다. 우리의 조건은 단순했다. 부담 가능한 월세, 둘이 살기에 적당한 넓이 그리고 안전.

 

ⓒ 동아일보

 

아파트

우리나라는 치안을 비롯해 도시 단위의 주거 복지 시스템이 전무한 수준이다. 치안 및 주거시설 관리를 위해 필요한 경비부터 쓰레기 분리수거 배출을 위한 시스템, 하다못해 놀이터와 공원까지 생활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아파트 단지 안에만 있다.

이 모든 것이 제공되는 아파트는 주거비용이 정말정말 비싸다. 저렴하게 나왔다는 소형 평수의 아파트를 알아봤는데 좁디좁은 데다 낡기까지 한 방이 보증금 1000에 월세가 80, 관리비가 10이었다. 둘이 나눠서 낸다고 해도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무엇보다도 관리비가 너무 비쌌다. 경비노동자 임금이 포함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이후 관리비가 함께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 안전관리 비용은 여성 입주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다.

 

오피스텔

“아무래도 여자분들은 오피스텔을 많이 선호하시더라고요. 깔끔하고 치안이 잘 되어 있으니까.”

중개사의 말을 들으며 타협하듯이 찾은 오피스텔은 주거비용은 조금 덜 부담되면서 경비노동자와 분리수거 배출 시스템이 있는 주거 형태다. 내가 살고자 하는 동네에서는 보증금 1000에 월세 70, 관리비 8이 보통의 시세인 것 같았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6~7평대의 작은 오피스텔이 인기가 많다고 했다.

문제는 전입신고다. 오피스텔은 건물법상 사무용 공간이기 때문에 전입신고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사실 가능한 곳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주거용으로 등록했을 때 발생하는 부가세를 피하고자 임대인이 전입신고를 막는 것이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지역 지자체가 제공하는 각종 복지 서비스를 받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차후 문제가 생겼을 때 세입자로서의 보호를 받기가 어렵다. 어느 정도 수준의 치안을 보장받는 대신 자칫 보증금을 떼먹힐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문제제기를 해봤지만, 보증금 1천만 원을 누가 떼어가냐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거, 제게는 정말 큰돈이거든요.’ 차오르는 말을 꾹 삼키며 계약을 포기했다.

 

부동산 중개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 소개 문구들 ©고함20

 

다세대/다가구주택

흔히 말하는 원룸 혹은 투룸이다. 다세대/다가구주택에 살기로 결정했다면 치안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주택단지 골목에는 흔한 가로등조차 충분히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이 비일비재하다. 대로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어두운 골목이 너무 많아서 혼자 다닐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계약 전에 집 근처에 다시 들러 가로등과 CCTV 위치를 꼼꼼히 확인했다. 집 주변 치안시설까지 중개인이 확인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생활안전지도 앱과 성범죄자알림e 앱을 깔아서 동네 안전도 직접 체크했다.

월세 및 관리비가 비교적 저렴하지만, 집주인에 따라 여자 세입자에게는 수도세를 만 원 더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자는 물을 더 많이 쓴다는 것이 이유였다. 글쎄, 남자가 너무 안 씻는 건 아닐까?(아 더러워.) 여하튼 관리비 포함 사항도 꼼꼼히 확인해볼 부분이다.

 

어디에 살든 여자는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살기 좋은 집”을 원한다면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하는 것은 어쩌면 시장경제에서 당연한 일이다. 이 매물이 여자뿐 아니라 남자가 살기에도 좋고, 노인과 어린이가 살기에도 좋은 집인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붙은 “여자가“라는 조건은 뭘까? 여자라면 주거 공간을 선택할 때 포기하기 힘든 조건이 있다. 바로 치안이다. 내가 비싼 아파트와 오피스텔부터 알아본 이유 역시 치안 때문이었다.

혼자 사는 여성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공포다. 이를 이용해 ‘여성 전용 주택‘ 혹은 ‘여성 전용 고시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비싼 월세를 받는 곳도 많다. “여자가 살기 좋은 집”이라는 셀링 포인트는 여성의 목숨을 개인이 스스로 책임지고 보호해야 하는 이 사회의 구조적 단면을 보여준다. 여자들은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할 것이라는 사실을 부동산 임대 시장은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여자가 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거나 일정한 수입이나 변변한 직장이 없을수록 안전하고 안락한 주거공간 바깥으로 밀려난다.

 

여자가 살기 좋다는 집을 잘 골라 계약하고 이사까지 마무리 짓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치안을 위해 여자가 혼자 사는 집이라도 현관에 남자 신발을 두라는 둥의 팁을 공유하곤 하고 빨래를 어디에 널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여자가 사는 집이 맞는데 왜 여자가 사는 집인 게 티가 나면 안 되는 걸까? 공포감은 말 그대로 집에 있는 시간 내내 여자가 겪어야 하는 동반자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어떤 집을 선택하든 결국은 내가 어느 정도의 위험이나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내 집에서만큼은 맘 편히 쉬고 싶다는 것이 너무도 큰 바람일까?

 

글. 다정(tsb023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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