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retro). 과거에 대한 향수와 그 당시의 시대적 감성을 반영한 스타일을 이르는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레트로카페’를 검색하면 전국 각지의 신생 카페들이 나타난다. 개중에는 공중목욕탕이나 세탁소 같은 외관에 포장마차에서나 볼법한 플라스틱 의자를 비치해둔 모습들이 꽤 눈에 띈다. 이 카페들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따위의 홍보 문구를 내걸었지만, SNS의 사진 몇 장으로 ‘레트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레트로 감성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래서 직접 가봤다. #레트로 카페.

 

‘레트로 감성’을 찾아서

90년대 컨셉으로 만들어진 서울의 한 카페. 이미 SNS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돼 유명세를 치른 곳이다. 문을 열자마자 공사재 냄새가 풍긴다. 마감처리를 하지 않은 벽과 천장에서 나는 냄새 같다. 테이블은 철제 밥상이 대신하고 있고 의자는 모두 간이 의자인 탓에 한동안 어디에 앉아야 좀 더 편안한 티타임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방이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진짜 뭘까? ⓒ 고함20

여러모로 따져봤을 때 담소를 나누거나 조용히 책을 읽는 등 본래 카페의 기능을 수행하기엔 별로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빨리 자리를 옮기기로 한다. 이것이 진정 레트로인지 의문이었다. 레트로는 모르겠고, 공사비용은 아꼈을 것 같다.

 

을지로 3가, ‘진짜’ 레트로를 찾다

카페를 나와 한국의 진짜 레트로를 간직한 곳을 찾아갔다. 재개발이 진행 중인 을지로3가에 위치한 ‘을지다방’이다. 처음 개업한 1985년의 그 모습을 35년째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점심시간 손님들로 작은 다방 안이 꽉 차 있다. 역시 혼자 오기보다는 둘씩, 대여섯씩 함께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양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손님이 많아갖고 정신이 없네~ 미안해요~”

달걀노른자를 동동 띄운 쌍화차 한 잔이 나왔다 ⓒ고함20

이 ‘레트로 카페’, 을지다방은 이제 막 철거 위기를 한 차례 넘겼다. 이 곳은 서울시가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계획을 강행하면서 을지면옥, 양미옥 등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온 노포와 함께 헐릴 고비에 놓였었다. 지난 23일 서울시가 이 노포들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을지다방의 박옥분 사장님은 고개를 내저으신다.

“같이 공존해야지. 여기만 남으면 의미 없는 거예요.”

그렇다. 커피 프랜차이즈와 믹스커피가 대중화된 지금도 을지다방 커피를 배달시키는 공구 거리의 장인들이 있다. 을지로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이곳이 단지 오래돼서가 아니라 함께 공존해야 할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현재의 모습과 상인, 장인의 생태계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의 개발을 원한다고 밝혔다. 을지로는 곧 역사이기도 하면서 현재에 살아 숨을 쉬는 터전이다. 번쩍번쩍한 새 빌딩 옆에 외롭게 남은 을지다방의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재검토 발표에 한숨 돌린 듯 보이지만 이 생태계가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개발이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벌써 건물들이 철거된 공터가 눈에 띈다 ⓒ 고함20

 

인스타그램의 그 ‘핫(Hot)’ 하다는 카페들을 떠올려보자. 최소한의 마감처리도 없는 벽, 부서지거나 금이 간 천장을 그대로 두는 것이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다. 이렇게 레트로가 인스턴트로 만들어지는 동안, 진짜 레트로 을지로는 사라지고 있다. 지금도 철거는 진행 중이다. 공구 거리를 바라보던 아저씨 두 분이 혀를 차며 지나갔다. “건물들을 다 밀어버렸어. 뻥 뚫려서 뒤가 다 보이네!”

을지로3가에는 2023년까지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공간의 해체는 곧 시간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공간이 사라지면, 공간과 함께 켜켜이 쌓인 이야기 역시 잊힐 수밖에 없다. 결국에 과거는 무시되고 과거를 어설프게 모방한 레트로만 생겨나는 셈이다. 그러나 만들어진 레트로 감성이 사라진 이야기들을 채울 순 없을 것이다.

 

글. 리사(cherry0226@goham20.com)

특성이미지. ⓒ고함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