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 암호화폐와 함께 등장한 신조어다. ‘존나게 버티기’의 준말인 이 용어는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디시인사이드>가 조사한 ‘2018년 가장 많이 사용한 유행어’ 3위에 오르기도 했을 만큼 이미 그 활용이 암호화폐 시장을 넘었다.

취업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종 취업 사이트 게시판엔 ‘존버합시다’, ‘존버정신’ 등이 흔하게 보인다. 그런데, 존나게 버티면 성공…할 수 있을까?

‘존버’를 외치는 취준생들 ⓒ 고함20

‘노오력’의 객체에서 ‘존버’의 주체로

청년들은 계속해서 노력할 것을 요구받았다.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꿈은 이뤄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곱디 고운 말이 사방에 가득했다. 이때 ‘노오력’은 기성세대와 사회의 요구를 비꼬며 등장했다. “노력하라구요? 말이야 쉽지. 노오오오오오력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와 같은 식이다.

이제 청년들은 ‘존버’라는 새로운 용어로 사회의 요구를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광풍은 청년들의 한탕주의’라 비난하며 청년을 수동적인 객체로 바라보는 사회에게 ‘우리 방식은 이렇다’고 말하는 것이다.[관련-비트코인 열풍, 청년들의 한탕주의 때문일까?] 때문에 ‘존버정신’은 노력해서 앞으로 나아가란 말에 ‘버티기’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방법이 이것뿐이라서

이 선언은 물론 활기차지 않다. ‘존버는 승리한다’는 구호가 나돌지만, 아무도 그 승리를 담보할 수 없고, 담보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버티기가 가져다준단 승리 역시 그 의미가 무색하다. ‘승리’라는 단어는 버티면 1등, 아니 최소한 열 손가락 안에는 들 수 있을 것처럼 들리지만 청년들이 말하는 승리는 그저 취직해서 돈 벌어 ‘남들처럼’ 사는 보통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버티기 만으로도 벅찬 사회에서 손에 잡히는 성공은 기대할 수 없다. 가파른 청년실업률 상승세 속에서 ‘존버’는 청년들의 유일한 전략이자 배수진이 됐다.

“나는 유노윤호다!”

작년 말, sns 상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이 말은 게을러지지 말고 열정을 불태우자는 일종의 ‘주문’이다. 이 ‘유노윤호 세뇌법’ 역시 자기 자신을 다독인단 의미에서 존버 정신과 다르지 않다. 이때 문제는, 존버정신이든 유노윤호 세뇌법이든 아무리 개인이 스스로를 채찍질해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최대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버티기인 상황, ‘존버’는 청년세대의 자조다.

 

개인에게 떠넘기는 사회

겉은 유쾌하지만 속은 타들어 가는 청년들의 ‘존버’, ‘유노윤호 세뇌법’에 대해 사회는 침묵한다. 정말 유쾌하리라 생각하는 걸까. 미안하지만 이 버티기 선언에 “그래 버티면 승리할 거야”라는 응원은 아무 쓸모 없다. ‘보통’이 되기 위한 사회의 조건은 이미 한 명의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친 청년세대에 대한 사회의 침묵은 곧 ‘열심히 노력’해서 버티란 주문과 다름없다. 노력을 외친 것은 기성세대, 존버를 외친 것은 청년세대지만 사회의 무관심 속에 그 내용은 결국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우리 노력하자’가 ‘우리 존버하자’로 바뀐 것은 오히려 보통이라도 되기 위한 사회의 조건이 더욱 열악해졌다는 방증일 뿐이다.

 

존버하지 못하면, 유노윤호처럼 살지 못하면 패배자일까

버티는 것도 개인, 버텨야 하는 것도 개인이 됐다. ‘우리 다 함께 존버하자’란 말에서도 우리는 그저 너 따로 나 따로일 뿐이다. 그 속에서 ‘나 못 버티겠어’라고 말하는 청년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버티기도 못해?”라는 차가운 시선만이 돌아온다. 버티기만 하면 승리한다는데, 그것도 못 하니 패배자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버티기는 더 이상 최소한의 전략이 아니다. 많은 노력과 힘이 드는, 지칠 수밖에 없는 최대한의 전략이다. 그러니 ‘존버’하지 못한다 해도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다. 당신이 나태해서 혹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버티는 것을 최후의 수단으로 만들고야 만, 승리와 패배의 기준이 버티기가 된 사회의 문제다.

 

ⓒ pixels

이 사회를 보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려 본다.

시간이 6시로 고정되어 있어, 계속 차를 마시는 어떤 다과회(tea party)가 있다. 다과 도구는 테이블 위에 쌓여 있고, 구성원들은 차를 다 마시면 옆자리로 한 칸씩 이동하며 차 마시는 일을 반복한다. 앨리스가 묻는다.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가면 어떻게 하나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없다. 앨리스는 말한다. “이 파티는 이상해!(mad tea party)”

버티기가 승리를 보장할 수 없고, ‘진짜’ 답은 없이 버티기를 최선의 답으로 내놓게 한 사회. 청년은 지금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글. 제인(dbswls5087@naver.com)

특성이미지. ⓒ 고함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