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유감 시즌5] 고함20은 기성언론을 향한 비판의 날을 세우고자 한다. 한 주간 언론에서 쏟아진, 왜곡된 정보와 편견 등을 담고 있는 유감스러운 기사를 파헤치고 지적한다.

 

미투가 유행어가 됐다. 유명인의 채무 문제를 고발한 ‘빚투’, 보디빌더나 트레이너가 약물 복용 사실을 자진 고백한 ‘약투’, 이제는 ‘돈투’다. 조선일보는 지난 19일, ‘제2회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 입후보자에게 돈을 받았다고 자수한 조합원들이 늘었다고 보도(링크 클릭)하며 ‘돈투’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미투를 오용하는 언론 보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주류 의견은 미투가 성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성역이 없지 ‘가오’가 없는 건 아니다. 언론의 ‘가오’는 윤리공공성이다. 이 두 가지가 없다면 기사는 SNS에 떠도는 여타 기록물과 다를 바 없다.

 

19일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일부 ⓒ조선일보

 

미투는 ‘나도 당했다’가 아니다

미투를 유행어로 소비하는 게 ‘가오’ 없는 행동인 것은 자명하다. 사회 현안을 진단하고 엄격하게 사실 검증을 해야 하는 언론이 ‘미투’의 뜻을 모른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나도 당했다’를 넘어 ‘나도 말한다’가 미투다. 이 두 가지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성폭행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받아왔다. 한국 사회의 성범죄 신고율은 의견 차이가 있긴 하지만 2%~10% 내외로 추산된다. 이에 더해 성추행, 성희롱, 데이트폭력, 위력에 의한 성범죄 등 다양한 범주의 성폭행은 성폭행으로 인정받기도 힘든 실정이다. 성폭행 피해 사실을 밝히면 꽃뱀이라는 의심을 받아야 하는 것도 폭로를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미투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입을 열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미투는 이처럼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 속에서 이뤄진 고발 자체의 의의도 함축하고 있다. 더불어 ‘나도 함께’라는 뜻에서 침묵의 사슬을 깬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지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더 많은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데에 함께 하겠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문단 내 성폭행, 스쿨미투, 스포츠미투 등 각계의 미투가 이어져 올 수 있었다. 미투 운동은 성폭행의 진상을 알리는 것 이상으로,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고, 그런 피해자를 지지한다는 세 가지 지점에 대해서 의미가 있다. 자수(돈투, 약투)나 금전 손실에 대한 폭로(빚투)는 미투와 이 다른 영역이다.

 

‘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 집회’ 현장에서 사용된 손팻말 ⓒ고함20

 

미투 보도, ‘불편부당’ 정신 혹은 ‘장삿속’

혹자는 무엇이 됐든 언론의 표현엔 성역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투는 성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취재의 영역에 성역이 없을지언정 보도에 대한 윤리는 있어야 언론이다. 고함20이 언론유감을 통해 기성언론을 비평하면서 비속어를 쓰지 않는 이유다. 언론은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공익성을 보장해야 하기에 그 어느 집단보다 높은 윤리성을 갖춰야 한다.

한국 언론은 대체로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 수호를 사명으로 내걸고 있다. ‘돈투’라는 최악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조선일보의 사시(社是. 회사가 추구하는 이념) 역시 정의옹호불편부당이다. 사회적 정의를 옹호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으며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투는 단연 조선일보가 지켜야 할 가치다. 권력 중심적인 사회에서 불평등을 전면으로 고발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를 포함해 많은 언론사가 각계 미투를 대서특필해왔으면서 한편으론 미투를 유행어로 전락시키는 일을 반복한다면,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미투를 보도한 게 언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함이 아니라 장삿속이나 정치 논리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조선일보의 회사 이념은 ‘불편부당’ ‘산업발전’ ‘문화건설’ ‘정의옹호’다. ⓒ조선일보 홈페이지

 

조선일보, ‘가오’를 지켜라

미투 운동을 희화화하거나 소비하지 말라는 시민단체와 독자들의 비판은 ‘빚투’때부터 있었다. 안희정, 고은 등 미투 운동을 통해 폭로된 가해자들의 유죄 판결이 잇따르고, 스포츠계에선 조재범 사건이 아직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돈투’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는 건 조선일보가 뒤처져있다는 뜻이다.

독자가 사회를 구성하고, 언론은 사회를 담아야 한다. 무려 불편부당을 회사 이념으로 내세우며 판매 부수가 100만 부를 넘는 자타공인 한국의 주류 언론 조선일보는, 더욱더 독자의 시선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판매 부수나 대단한 사시가 아니라 사회의 흐름을 읽는 것, 그게 언론의 품격이자 ‘가오’이다. 가오가 없는 언론은 단순히 글팔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

 

글. 솜(dhstlsaj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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