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김학순, 곽예남…

모두가 아는 이름은 아닐 것이나 많은 사람이 이 이름들을 알 것이다. 바로 우리나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곽금녀, 정옥순, 리경생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지난 3월 6일, 인사아트센터에서 남과 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전 <만나다, 그리고 보듬다>가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북측 피해자의 사진이 전시로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1991년 8월 14일, 피해자 김학순씨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실명으로 최초 증언한 이후 남과 북의 ‘위안부’ 피해자의 사진이 한 자리에서 전시되는 것도 처음이다.

 

사진전 <만나다, 그리고 보듬다>에서는 북측에서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리경생(1917-2004)을 비롯한 북측 피해자 14명과 피해자이면서 여성인권활동가였던 김복동(1926~2019) 등 남측 피해자 10명의 사진과 증언을 전시한다. 일본의 포토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伊藤孝司)가 북측을, 다큐멘터리 감독 안해룡이 남측 피해 생존자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고함20

전시장에는 피해자의 사진과 옆에 피해자의 증언이 붙어있다. 북측 피해자 곽금녀씨는 함경북도 단천시에 살았다고 한다. 그녀의 고향은 남측인 충청남도 천안. 8살 때 돈을 벌기 위해 광주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그녀는 다른 공장으로 이동하라며 한 열차에 태워졌다. 그 열차는 소련 국경 근처의 군 위안소로 가는 열차였다. 다른 여성들이 차례차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며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곽 씨는 위안소를 가까스레 도망쳐나왔다. 사진을 찍은 이토 다카시가 2003년 곽 씨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을 때 그녀는 병실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있었다고 한다. “조국이 통일되면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던 그녀는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2007년 6월 사망했다. 곽 씨의 사진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 휴전선을 넘어 고향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 사진전이 곽 씨에게 조금이마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전시 첫 날이었던 3월 6일, 북측 피해자들을 사진에 담은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의 ‘작가와의 대화’가 열렸다. 그는 조선인 원폭 피해자나 강제 동원 노무자 등 일제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주로 취재해왔다. 그에게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의 남성 군인들에게 피해를 입은 ‘위안부’ 피해자 앞에서 그는 늘 ‘일본인 남성’이라는 그의 존재를 마주대해야 했다고. 많은 피해자들의 그에게 격한 분노를 표현했고,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 사회에서도 일제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그는 취재 내용을 다큐멘터리나 글로 발표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했다. 이러한 어려움들 속에서도 그가 몇 십 년을 들여 꾸준히 취재를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일본이라는 가해국에서 피해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일본 사회에 발신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제가 피해자를 계속 만나고 취재하는 가장 강한 원동력입니다. 지금 일본 정부와 국민은 역사를 자꾸 잊고 외면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취재를 하며 일본이 과거 아시아에 어떤 일을 했는가를 정확하게 기록해서 후세에게 전하는 것, 이것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이 일본 입장에서는 외면하고 잊고 싶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가를 정확히 포착하고 기록해서 ‘그 때와 같이 두 번 다시 누군가를 침략하지 않겠다, 식민지로 만들지 않겠다’라고 결심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일본 입장에서 부정적인 기록일지라 하더라도 다음 세대에 꼭 남겨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북한에서 당국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신고한 사람은 총 219명. 이 중 공개 증언을 한 52명은 전부 세상을 떠났다. 더는 북측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듣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240명이지만 지난 3월 2일 곽예남 씨가 별세하며 22인의 생존자만이 남았다. 이 사진전에서 만날 수 있는 남과 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모두 세상에 없다. 남아있는 남북의 피해 생존자들이 일본 정부에게서 진정한 사죄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포스터 사진은 이토 다카시가 1992년 12월 9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후 보상에 관한 국제공청회’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북측의 김영실 씨(왼쪽)의 증언이 끝나자 평양이 고향인 남측 김학순 씨가 단상으로 한걸음에 올라가 만나는 순간을 포착했다. 지난 3월 1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북한의 ‘조선 일본군 성노예 및 강제연행 피해자 문제 대책위원회(조대위)’ 등과 함께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는 비단 남측의 문제만이 아니며, 남과 북이 함께 했을 때 더 큰 목소리와 힘을 낼 수 있다. 분단의 시대가 끝나가는 이 시대에는 남과 북이 협력해서 오랜 시간 이어지는 역사의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지 않을까.

 

 

<남과 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_ 만나다, 그리고 보듬다>

일시 2019년 3월 6일(수)~3월11일(월) 10:00~19:00(주말 개관)

장소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제2전시장

주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주관 아시아프레스

 

함께 볼 전시

<기록 기억 :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

일시 2019년 2월 25일(월)~3월20일(수) 10:00~18:00(휴관일 없음)

장소 서울도시건축센터

주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주관 서울대학교 정진성 연구팀

 
글. 일공이(oneotwo@naver.com)
특성이미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