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토리어스 RBG, 악명 높은 RBG!

미국 동부의 갱스터 래퍼 이름이 아니다. 영화 속 악당 이름 다스베이더도 아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Ruth Bader Ginsberg), 미 연방대법원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다. 수상스키를 즐겨 타고 팔굽혀펴기를 스무 번이나 한다는 이 86세의 판사가 새로운 힙스터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가방, 머그컵, 수영복이 붙티나게 팔리고, 심지어 RBG 운동법 영상은 유튜브 조회 수 180만을 기록했다. 아들 제임스 긴즈버그는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힙해지다니 꿈에도 몰랐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왜 그에게 열광하는 걸까? 그 센세이션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가 3월 28일 개봉했다.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 영화사 진진

 

 

내가 속한 세대에선 여성이 법학을 공부한다는 게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1940년대에 성장한 대부분의 소녀에게 가장 중요한 자격은 대학졸업장(BA)가 아닌 한 남자의 부인(MRS)이 되는 것이었다.

 

RBG는 1933년 5월 15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컬럼비아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네 살 아이를 키우는 유대인 여성을 변호사로 고용하겠다는 로펌은 단 한 곳도 나타나지 않았다. 로스쿨 강의실에 여학생이 단 9명이던 시대, 전국 로스쿨에 여성 교수라곤 14명뿐이던 시대에 RGB는 법조인으로서 힘겨운 첫 발을 내딛는다. 이후 시민자유연맹에서 여성권익증진단을 설립, 본격적으로 성차별 소송을 맡기 시작했다. 그는 변론요지서를 쓸 때마다 여성에 대해 무지한 판사들을 가르치는 유치원 선생님이 된 것 같았다고 말한다. 여성보다 남성의 상속권을 우선하는 아이다호 주 법률, 여성 장교는 임신 사실이 확인되는 즉시 전역을 명한다는 공군 규정, 여성의 배심원단 참여를 배제하는 법 등의 성차별적 법률 폐지를 비롯한 RBG의 경력은 곧 미국 여성인권사의 큰 줄기가 된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달라는 것뿐이다.

그는 단지 유리천장을 부수고 성공한 여성이 아니다. 차분한 말로 세상에 폭풍을 불러일으키는 법관이자 페미니스트이며 혁명가이다. RBG는 대법관 임명을 앞둔 청문회에서 ‘여성만을 위한 특권 찾기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에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가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통제한다면, 여성은 자기 선택에 책임지는 온전한 성인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셈이 된다”며 여성 인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료하게 밝혔다.

 

 

그의 오랜 동료인 법학자 캐슬린 퍼래티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폭탄을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는 그가 직접 만든 무수히 많은 ‘폭탄들’미 합중국 대 버지니아(United States v. Virginia) 판결을 가장 먼저 조명한다. 버지니아군사대학은 여성이 입학한다면 설립 이념이 뿌리부터 흔들린다고 주장하면서 여성의 입학을 거부해왔다. 그 대신 여성스러운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버지니아여성리더십대학을 설립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론을 내세웠다. RBG는 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며 위헌임을 명백히 했다.

 

 

브렛 캐버노의 대법관 지명을 반대하는 집회에서 시민들이 낙태권 수호를 외치고 있다. ⓒ AP

 

 

사람들은 묻는다. 대법원에 여성이 몇 명 있어야 충분하냐고. 난 ‘9명 전원’이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놀란다. 9명 모두 남성일 때는 아무도 놀라지 않더니

 

RBG가 “I DISSENT (나는 반대한다)”를 말할 때마다 모든 소셜미디어가 RBG의 이야기로 들썩인다. 노토리어스 (악명 높은)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2013년, 그의 반대의견에 감명 받은 로스쿨 학생 샤나 나이즈닉이 ‘노토리어스 RBG’라는 이름의 텀블러 페이지를 개설하면서다. 대법원이 “더는 흑인 투표권자에 대한 차별이 없다”며 차별 감시 조항을 삭제해 버린 날이었다. RBG는이 결정에 대해 반대의견을 밝히며 “참정권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 대법원은 폭풍우 속에서도 젖지 않을 것이라며 우산을 내동댕이쳤다”고 일갈했다. 1년 후 2014년 6월, 직장 건강보험 보장 항목에 피임 비용을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에 대법원이 지뢰밭에 뛰어들고 있다며 어김없이 반대했다.

 

현재 미 연방대법원은 우편향 되어 있다. ‘중심추’로 불리던 케네디 대법관의 후임은 트럼프의 지명으로 브렛 캐버노가 되었다. 이제 RBG와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 세 명의 여성 대법관을 비롯해 진보파로 평가되는 대법관은 4명에 불과하다. 겨우 우편향된 균형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다. 만약 최고원로인 RBG가 퇴임한다면 대법원은 완전히 보수파로 기울고 만다. 벌써부터 트럼프는 RBG를 대신할 법관을 찾았다며 떠들고 있다.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처음 인정한 대법원 판결 로 대 웨이드(1973년)를 포함한 판결들이 다시 뒤집힐 수도 있다.

 

 

RBG가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하고 있다. ⓒ CNN Films

 

 

그래서 RBG는 이곳에서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키기로 결심했다. 절대 저들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법정을 떠나지 않으리라. 두 번의 암 투병, 크고 작은 수술들을 거치면서도 절대 일을 놓지 않았다. 단 한 번의 회의도 거른 적이 없다. 그는 잠깐의 입원을 마치고 나와 말했다.

 

“나는 다음 주부터 팔굽혀펴기를 다시 시작할 겁니다”

 

 

글. 리사 (cherry0226@naver.com)

특성이미지. ⓒ 영화사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