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하기

낙태죄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안 맞는 이유

오는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기본권에 관한 가장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 낙태죄의 존치 여부이다. 몸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거부하는 여성들과 ‘낙태는 살인’이라 외치는 프로라이프(낙태 반대 운동 연합)의 주장이 대립하는 가운데, 많은 사람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 법이 실제로는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법률과 판례를 한 글자 한 글자 뜯어보면 낙태죄의 보호법익이 생명권이란 말은 정말로 모순투성이다. 무엇이, 또 어떻게 모순인지, 헌재 결정을 앞두고 고함20이 정리해보았다.

 

낙태죄 존치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다. 한 글자도 안 맞는다. ⓒJTBC

 

임신한 여성이 폭행을 당해 아이를 유산했다. 가해자는 낙태죄로 처벌될까?

아니다. 가해자에게는 낙태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소중한 생명이 죽었으니 살인죄가 적용될까? 아니다. 태아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상해죄로 처벌받을까? 형법 제 257조 상해죄를 살펴보면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판례는 ‘태아’가 ‘사람의 신체 일부’가 아닌 독립된 생명체이기 때문에 태아의 사망이 상해는 아니라고 한다. 대체 이 폭행범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낙태죄나 상해죄와 달리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음)인 폭행죄만 성립하게 된다. 폭행죄의 법정형은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그친다.

 

낙태죄 폐지는 성교하되 책임 안 지겠다는 거라던 박상기 법무부 장관 ⓒ 경향신문

 

법무부는 2018년 5월 헌재에 제출한 변론요지서에서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며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 공분을 일으킨 바 있다. 성관계가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이라고 말하는 법무부는, 임산부를 폭행한 가해자에게도 태아의 사망에 대한 미필적 인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왜 미필적 고의에 의한 낙태라고는 하지 않는가?

 

 

교통사고로 유산된 태아, 가해자에게 과실치사죄가 성립할까?

교통사고로 인해 갓 태어난 아기가 죽었다면 가해 운전자에겐 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 운전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아기가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태어난 아기가 아니라 뱃속의 태아가 유산된 경우도 마찬가지 일까? 그렇지 않다. 이유는 첫 번째 예시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태아가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낙태죄로 처벌하면 되겠다고 생각하지 쉽지만, 낙태죄는 ‘고의범’을 처벌한다. ‘과실범’ 처벌 조항은 없다. 그러므로 교통사고나 의료사고처럼 타인의 과실로 태아의 생명이 침해된 것에 대해 낙태죄 적용은 불가능하다.

 

무려 헌법재판소에서 인정한 태아의 존엄하고 고귀한 생명권이 침해되었는데, 가해자에게 형사책임이 없다니. 무언가 틀려도 단단히 틀려먹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프로라이프는 이와 같은 사안들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에겐 낙태만 살인이다.

 

사고로 유산된 태아에게 관심이 없어보이는 대법원 ⓒ 대법원

 

 

법은 태아가 죽었는지 또는 살았는지를 묻지 않는다

법은 여성이 감히 임신 중단을 선택했다는 사실만 궁금해한다.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근거로 흔히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강조되지만, 태아가 죽지 않아도 여성의 임신 중단은 범죄가 된다. 낙태죄는 떨어질 낙(落), 태아 태(胎)자를 쓴다. 풀어 말하자면 ‘엄마가 태아를 떼어내는 범죄’이다. 낙태죄의 성립 시기, ‘기수(旣遂)’는 말 그대로 태아가 여성의 몸과 분리되는 시점이 된다. 따라서 모체로부터 분리된 태아가 혼자 잘 살아가도 이미 기수에 달했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죄가 성립한다. 대법원은 “낙태라 함은 태아를 자연분만기에 앞서서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안에서 살해하는 행위를 말하며, 낙태 결과 태아가 사망하였는지 여부는 본죄의 성립에 영향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고(대법원 2005.4.15. 선고 2003도2780 판결),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이 판례를 인용했다. 다시 말해, 본죄의 성립에 영향이 있는 것은 여성이 스스로 임신 중단을 결정했는지 여부인 것이다.

 

법이 정말로 태아의 생명을 존엄하게 여겼다면, 낙태죄가 아니라 태아살해죄 같은 이름을 붙여야 했다. 미수범과 과실범을 처벌하는 조항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직 여성만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법은 태아를 보호하는 척한다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을 중단할 때에는 고귀한 생명을 침해했다며 낙태죄로 처벌한다. 반면 폭행범이 유산시킨 태아는 생명이 아니라고 한다. 교통사고나 의료사고로 태아가 유산되어도 과실치사죄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렇듯 법이 해석하는 ‘태아’란 생명권이 있었다가 없었다가, 그러니까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 같은 존재다.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실현하려 할 때만 태아에게 생명권이 생긴다. 헌법상 기본권인 생명권이 이런 식으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포스트잇인가? 명백히 아니다.

 

여성들은 태아를 죽이기 위해 싸우고 있지 않다. 법은 태아를 살리기 위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권리가 충동하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 대 국가 권력의 싸움이다. 낙태죄는 국가가 여성의 재생산권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니 태아가 너무나 소중한 척은 인제 그만두고 당사자가 겪는 현실, 임신의 공포, 범죄의 낙인을 제대로 보길 바란다. 법이 낡은 언어를 버리고 현실을 제대로 보기 시작할 때, 낙태죄의 법적 모순들은 모두 지워질 수 있을 것이다.

 

글. 리사 (cherry0226@goham20.com)

특성이미지. ⓒ고함20

리사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으센

4 Comments
  1. 1

    2020년 10월 7일 20:20

    앞선 법의 한계를 지적할 일이죠. 생물학적으로도 수정된 이후의 순간부터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지금 어른들은 무슨 어린시절없이 어른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주장이 가능한 것도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거고요. 권리를 주장하려면 책임도 있어야죠.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을 앞세우면 태아가 찢겨 죽는다는 사실은 아닌게 되지 않습니다. 동물권을 위시해 고양이를 그렇게 잘라서 죽여도 난리치는 세상에 태아에 대해서만 살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거야 말로 시대착오적인 발언이죠. 말 못하는 약자를 더 지켜주는 것이 법의 역할이 아니겠나요.

    • A

      2020년 10월 8일 12:53

      여성만을 가해자로 모는 법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권리를 주장하려면 책임이 있어야 한다구요? 임신은 혼자하나요? 남자는 처벌에서 쏙 빠져나오는 건 어떻게 할건데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고양이와 아직 사유할 수도 없는 태아가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길고양이와 태아 중에 무엇이 생명체와 더 가까울까요? 무엇이 그저 세포덩어리와 가까울까요?

    • rhys

      2020년 10월 8일 13:50

      권리를 주장하려면 책임 웅앵웅ㅋㅋㅋㅋ 남자 책임은 어디 있나요~~~?? 애들 양육비도 안 줘서 신상 공개되는 남자들(✿ヘᴥヘ)

  2. anyway

    2021년 1월 6일 21:46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논리가 나락일까..
    일단 태아는 생명이 아니다. 이것만 주장하세요.
    “태아는 생명이다 vs 생명이 아니다”를 먼저 주장하고 그 이후에 남자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판단해야지. 섞어서 빼액거리니 설득력을 잃지…

    우선 태아에겐 생명이 없으니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 낙태죄가 합법이라면 이 주제에 대해서 떠드시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생명인데 )

    “남자도 같이 처벌해라”라는 주장이면 태아도 생명이니 처벌을 할거면 같이하라는 주장이 됩니다.

    하나만 합시다 하나만.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