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권에 관한 오래된 싸움이 마침내 한 발짝 내디뎠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합헌인 대체 입법을 해야 한다. 앞으로 1년 8개월, 이제 한국은 “낙태는 범죄가 아니다”에서 더 나아간, 임신중단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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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국가인 미국은 모든 주가 각기 다른 법률을 가진다. 뉴욕 주에서는 의사가 아니더라도 간호사, 조산사 등 훈련받은 보조 의료인도 임신 초기(6주)에는 간단한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다. 반면 조지아 주는 1973년 미 연방 대법원이 임신 초기의 낙태를 합법화한 이후 법률의 변화가 거의 없으며, 이 조지아 주에서 임신중절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은 단 28개에 불과하다. 이렇게 미국은 드넓은 땅덩이만큼이나 넓은 스펙트럼의 법이 존재하고, 모든 여성에게 평등한 권리가 보장되기 위한 싸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낙태죄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 미국은 어떤 쟁점으로 싸워나가고 있는지 고함 20이 정리해보았다.

 

첫째, 남성의 동의가 있어야 할까?

우선 50개 주 모두가 금지하고 있는 것은 ‘배우자 동의 필요’ 조항이다. 1992년 케이시 판결(Planned Parenthood v. Casey)에서 연방대법원은 임신 중단 시 배우자, 혹은 태아의 생물학적 아버지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법률을 모두 위헌으로 결정했다. 한국은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배우자(사실상의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임신 중단이 꼭 필요한 상황마저도 남성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020년 국회가 이 조항을 완전히 폐기하고 여성의 기본권을 보장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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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청소년의 임신 중단은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할까?

연방대법원은 보호자 동의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마다 큰 차이가 생겼다. 워싱턴, 뉴욕, 오리건, 버몬트, 메인, 코네티컷, 하와이 주에서는 보호자의 동의는 물론 통보와 상담 없이도 청소년 혼자 인공임신중절을 결정할 수 있다. 나머지 37개 주에서는 보호자의 동의 또는 예고를 조건으로 청소년의 임신 중단을 허용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캔자스, 미시시피, 사우스다코타 주는 양 부모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규정으로 비판받고 있다.

청소년의 권리를 법으로 제한하는 미국과 달리 사실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청소년이 단독으로 임신 중단을 결정하는 것에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인공임신중절은 ‘의료행위’이므로 당사자가 의사능력만 갖췄다면 보호자의 동의는 없어도 된다. 의사는 이 청소년의 동의 없이 보호자에게 사실을 말할 수도 없다. 의사가 비밀누설금지조항을 위반하면 의료법 제88조에 의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다만 인공임신중절을 받겠다는 청소년과 의사 간의 ‘계약’은 보호자가 취소할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한 보장이 실현될지 아직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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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모든 비용을 여성이 혼자 부담해야 할까?

모든 여성에게 평등한 임신중단권 보장을 위해서는 임신중절이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돼야 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미국이란 나라는 건강보험과 거리가 먼데, 몇몇 주는 이러한 취약성을 공공기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 주는 소득분위 10분위 이하 여성, 또는 19세 미만 여성의 임신중절 비용을 주 정부 예산(Public Funding)으로 지원한다.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 오리건 주에서도 유사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직장보험에 가입한 여성 노동자들의 임신중단은 대부분 보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2014년 미연방대법원은 직장보험 항목에 낙태를 제외하는 것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아직도 10개 주에서는 공영보험과 민영보험을 불문하고 낙태 비용을 보험 처리하는 것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다. 연방정부에 종사하는 공무원, 군인들 역시 직장보험에서 낙태 비용을 환급받을 수 없다.

 

“합법적이고 안전한 임신중절이 가능한 일리노이 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주리에서 일리노이로 넘어가는 도로변에 세워진 광고판 ⓒBrutamerica

여성의 ‘선택’을 넘어 ‘권리’가 되기 위한 싸움

미국에서도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성들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임신중단권을 통제하는 방법은 점점 더 교묘해졌다. 낙태 병원의 수를 줄이고, 미프진의 가격을 올리고, 보험을 규제하고, 의사를 협박해 임신중절을 포기하게 만드는 등 백래시가 일고 있다. 퇴보하려는 움직임에 맞선 여성들은 “Safe, Legal and Free Abortion (안전하고 합법적인 무상의 임신중절)” 구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경제력, 직업, 나이, 인종, 국적, 지역, 장애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이 평등하게 임신 중단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법은 복잡하게 얽혔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낙태죄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는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선택에 맡기는 방임이 아니라,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으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이 기사의 제목은 『유럽낙태여행』 (봄알람, 2018)에서 차용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리사 (cherry0226@goham2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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