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날, 부모님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그런데 모든 걸 다 감사하기엔 부모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이 너무 크고, 좋은 자식이 되는 길은 고단하기만 하다. 부모님에게 좋은 딸이 되고 싶었지만, 효도가 제일 어려운 사람들의 고백을 모았다.

 

 

우리는 왜

 

세상의 모든 부모·자식 관계는 근본적으로 애증의 굴레라지만, 엄마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말로는 다 표현 못 할 복잡한 감정이 저 끝에서부터 밀려온다. 엄마는 세상이 딸 둘을 키우기에 너무나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의 통제 범위 안에 두고 보호하길 원했다.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는 모든 생활 반경이 엄마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 가능했으나, 스무 살 이후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는 점점 귀가가 늦어졌고 애인이 생겼으며 비밀이 많아졌다. 그리고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그 모든 것은 엄마를 미치게 만들었고, 엄마는 내 방과 물건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막장드라마 주인공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소리 지르고 싸우길 몇 년을 반복했다. 이쯤 되면 둘 중 하나가 포기할 만도 하건만, 나는 엄마의 고집을 똑 닮았으므로 이 미친 스릴러는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항상 절정으로 치닫곤 했다.

 

엄마는 나랑 당장 연을 끊고 싶다가도, 얼굴을 보면 예쁘고 좋아서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댔다. 더는 싸울 힘도 없이 지친 나는 머릿속으로 그 얘기를 곱씹으면서 우리가 대체 왜, 언제까지 이렇게 서로를 괴롭혀야 하는 걸까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야 할 만한 이유는 없는데.

 

좋든 싫든 우리는 앞으로 한참을 더 같이 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될 진 모르겠다. 그저 엄마가 말하지 않는 비밀을 굳이 알아내려고 하지 않기를, 나보다는 자신에게 좀 더 관심을 쏟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일보

 

저는 그렇게 완벽한 딸이 아니랍니다

 

“엄마랑 아빠는 너만 믿고 사는 거 알지?”

 

나는 늘 모부님 인생에 남아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아무도 내게 완벽한 딸이어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들에게는 별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할 일만 하는 아이여야 했다. 언니가 유난히 지독한 10대를 지나서일까. 어느새 나라는 딸은 사소한 실패조차 이해받지 못하게 되었다.

 

정말 모부님이 내 어두운 모습에 관심이 없었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확실한 이야기는, 나는 아직도 당신들에게 휴학이라는 한 단어도 제대로 꺼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 나는 쉬어서는 안 됐다.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와중에 공부도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놓치지 않아야 했거든. 인간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하고, 진로 설정이 완벽해야 하는 것은 덤이었고. 그래서 나중에는 용돈을 많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당신들의 ‘사소한’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쉴 틈이 없어야 했다.

 

그렇게 무시당해온 내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해 마음에서 마구 엉켜버린 문장들이 가득했다. 나를 눌러온 중압감, 그 무게중심에는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인제 와서 당신들이 내게 주었던 모든 가치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나를 자랑하듯 남들 앞에 보이기 전에 내 속을 먼저 물어볼 수는 없으셨을까, 하고 투정 섞인 말을 여기에나마 적고 싶었다.

 

나는 이번 어버이날에도 늘 그랬듯이 모부님께 감사하다고 말할 생각이다. 또 완벽한 딸의 모습에 한 걸음 다가가겠지만… 엄마, 아빠. 저는 그렇게 완벽한 딸이 아니에요.

 

© MBC 다큐멘터리 <엄마처럼 안 살아> 화면갈무리

 

결국은 불효녀가 된다

 

엊그제 밤에도 꿈을 꿨다. 엄마에게 아웃팅되는 꿈. 매번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나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꿈에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엄마가 나와 애인 사이의 관계를 알아챈다. 꿈에서의 엄마의 반응은 솔직히 나쁘진 않다. 담담한 척하지만 속으로 요동치는 게 보일 뿐이다.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건 오히려 내 쪽이다. 난 늘 나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하다가 꿈에서 퍼뜩 깬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난 점점 엄마에게 숨기는 게 많아졌다.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딸로 지내기엔 점점 지쳤던 것도 같다. “요즘 세상에서 그 일은 돈을 벌기 힘들다“ 혹은 “요즘 세상에서 네가 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다“ 등의 말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접어두곤 했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까지 접고 싶진 않다. “요즘 세상에서”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충분히 알기에, 엄마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점점 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났다. 함께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대화가 사라지니 같이 있는 게 불편했다. 집에서 쉬는 날에도 혼자 침대 속으로만 파고들었다.

 

효도라는 게 뭘까? 나는 엄마에게 말을 하든, 하지 않든 결국 불효녀가 된다. 가족이라는 건 뭘까? 나는 이 가족에 어떤 균열이 찾아오는 게 두려워 자꾸 나를 숨겼다. 한집에 살아도 나를 이해해달라 말하지 못하는 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모와 화목한 사이로 지내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잘 싸우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난 오늘도 애매한 그 중간을 택한다. 잘 지내는 것도, 싸워보는 것도 아닌, 내가 아닌 딸의 모습으로.

 

 

글. 다정(tsb02319@gmail.com), 채야채(chaeyachae@gmail.com), 총총(ech752@naver.com)

특성이미지. ⓒ고함20

(*필자가 나열된 순서는 글이 기재된 순서와는 관련없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