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탈정치화는 새롭지 않다. 1990년대 대학은 정치성을 띠는 것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총학생회는 학생 복지를 강조하며 공약으로 내걸었다. 2019년 현재, 공약은 무슨, 총학생회는 ‘멸종위기종’이라 불리며 후보자가 없는 일이 태반이다. 영화 「1987」 속 팔뚝을 흔들며 투쟁을 외치는 수많은 무리의 대학생은 찾기 힘들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총학생회 세력은 더 이상 없다. tvN 토론 대첩에 토론 고수로 출연한 진중권 시사평론가는 대학생 탈정치화를 비판하며 “운동(Movement)해야 한다”며 일갈했으나 와 닿지는 않는다. 대학 탈정치화의 단면과 대학 내 학생기구 총학생회는 어떠한 모습인지 살펴봤다.

 

 

“저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 대파, 아니 양파!” – 총학생회의 탈정치성

 

ⓒ윈브라이트의 블로그

 

지난 4월,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5•18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유가족 폄하 발언을 한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동문 1082명이 함께했다. 그런데 40일 만에 성명서를 철회했다. 해당 성명서를 반대하는 입장이 맞섰기 때문이다. 비판의 내용은 “정치적 행동을 이유로 동문을 규탄하는 것은 여성 네트워크 형성을 저해한다”, “총학생회가 개인의 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등이었다. 대부분 규탄 성명서 발표의 정치성에 대한 거부감과 우려였다. 결국 중앙운영위원회 회의 끝에 성명 발표는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일, 동문들의 비판 또한 뒤따랐다.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동문들은 ‘비정치적인 것이 마치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것처럼 인식되며 대학 내 학생자치기구가 탈정치화를 요구받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혐오의 시대에 기계적인 중립과 평등은 ‘부정의’ 한 것”이라며 “학생회에 탈정치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우리의 대표들이 사회문제를 방관하고 은폐하는 것을 묵인하는 행동”이라고 밝혔다.’

 

서울대학교에서도 정치성 논란은 벌어졌다. 탈정치의 그림자는 이미 드리워 있었다. 지난 2월 서울대 기계전기 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대학 건물 기계실 4곳을 점거하고 파업했다. 그런데 총학생회는 첫 번째 입장문에서 “노조의 정당한 파업권을 존중합니다. 다만, 도서관과 같이 학생들의 학업과 연구에 직결되는 시설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며 도서관을 파업 대상 시설에서 제외해줄 것을 연거푸 요청했다. 학생 복지와 소통이 총학생회의 최우선 목표였다. 노동자와 손잡는 일은 정치적이고, 연대는 거창했다. 비판이 계속되자 총학생회는 입장을 번복했고, 파업은 6일 만에 끝났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정치적 입장을 피해 ‘학생들이 우선’을 말했다. 하지만 ‘강약약강’의 정치성은 꼿꼿이 고개를 들었다.

 

 

대학생들은 총학생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일보 설문조사(19.2.13~19.2.18)에서 응답자들(대학생 518명)은 ‘총학생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5점 만점)’으로 ‘학교 당국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막고 학생의 의사 참여 기회를 확대하려는 대의기구(4.71)’, ‘반값 등록금, 학내 노동자 파업, 제3캠퍼스 건립 등 학내 이슈에 대한 투쟁 조직(4.40)’, ‘독자성과 자율성을 갖고 학생들의 일은 스스로 해결하는 학생 자치 기구(4.35)’ 순으로 꼽았다. ‘부조리에 맞서 사회 구조 개혁, 정의 등을 외치는 사회 운동 단위(3.86)’는 후순위였다.

 

정치성을 거부하고, 합리와 중립을 이야기하는 총학생회가 소위 ‘대세’다. 그러나 과연 학교 당국의 독단적 의사결정을 막고, 학생 의사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일은 정치적이지 않은가? 투쟁 조직, 학생들의 일을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자치 기구는 중립적인가? 정치성을 향한 거부감은 어쩐지 모순적이다. 대학 탈정치화의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까 생각해보자.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총학생회 탈정치화 – 총학생회 탈정치화의 결과

 

ⓒ한국일보

대학의 탈정치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대학생이 갖는 두려움은 이것이다. 정치성 부정의 결과는 탈정치가 아니다. 철저한 정치적 결과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오늘날의 대학에서 총학생회의 탈정치화는 오히려 학생들의 이익 추구를 어렵게 하고 있다. 총학생회 부재 2년차인 한양대학교는 올해 일부 단과대의 새내기 새로 배움터를 위해 학교 본부와 맞서 싸웠다. 성공회대학교는 비상대책위원회 끝에 총학생회가 들어섰으나 강사법 시행 대응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총학생회의 역할은 다양하다. 학생자치기구로서 총학생회는 학생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한다. 총학생회는 마땅히 대학 본부와 다투고, 대학의 일원이 원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입장을 가져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나아가 대학에서 발생하는 소수자, 노동자 문제에 앞장서야 한다. 대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무를 함께하는 것이다.

 

정치성의 프레임은 손쉽게도 씌워진다. 대학 탈정치화는 소리소문없이 밀려와 알 수 없는 정치에 대한 거부감을 심어줬다. 하지만 이는 학생의 요구와 이익을 주장하는 총학생회를 기죽게 하는 말일 뿐이다. 우리에게 ‘정치적’ 총학생회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적 요구와 정치적 연대, 정치적 외침은 더 나은 대학과 사회를 위한 것이다. 대학부터 탈정치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정치와 그 속의 연대, 건전한 다툼이 넘치는 사회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글. 돌(onlykmh8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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