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라딘> 포스터 ⓒ네이버 영화

 

올여름 극장가에는 의외의 바람이 불었다. <알라딘>이다. 첫 공개 당시에는 파란 윌 스미스의 어색하고 강한 인상, 신인배우들로 이루어진 캐스팅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알라딘>은 익숙하면서도 신나는 노래, 찰떡같은 캐릭터와 유머, 극적인 러브스토리로 흥의 민족인 우리나라를 제대로 건드렸다. 이에 5월 말 개봉에도 불구하고 아직 흥행 중이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국내영화 <기생충>보다도 일찍 천만 영화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자스민이 술탄이라고?

이렇게 <알라딘>이 흥행한 이유에는 영화의 즐거운 장면들이 한몫했지만, 빠뜨릴 수 없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캐릭터 ‘자스민’의 변화다. 1993년 원작 애니메이션의 자스민은 진정한 왕자를 기다리는 전형적인 옛날 공주였으나, 이번 영화에서는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아그라바 왕국 최초의 여성 술탄으로 거듭났다. 특히 새롭게 추가된 노래 ‘Speechless’는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캐릭터의 강인한 목소리로 전달하면서 감동을 더해 많은 여성들의 커버 또한 쏟아지고 있다. 아무튼, 자스민은 왕국의 일인자인 술탄이 됐다. 알라딘이랑 행복하게 결혼도 자스민이 그렇다면야 했고. 근데 어쩐지 찝찝하고 허무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만족이 안 된다. 도대체 왜지…?

 

영화 <알라딘> speechless 스페셜 클립 ⓒ디즈니 유튜브

 

캐릭터만 남고 알맹이는 가라

여기서 <알라딘>의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난다. 영화 속 자스민 혼자만의 얘기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Speechless’를 부르고 술탄이 되는 것 말고는 이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여성 캐릭터만의 이야깃거리가 없다. 자스민의 장면에 알라딘은 지겹도록 자리한다. 자스민은 알라딘을 만나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a whole new world), 알라딘과 함께 자파를 몰아내기 위해 움직인다. 알라딘은 마법에 갇힌 자스민과 그녀의 친구들과 아버지를 구하기까지 한다. 자스민이 여성 술탄이 되고 나서 처음 한 일도 알라딘과의 결혼이다. 캐릭터는 당당하지만, 그 알맹이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에 반해 알라딘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정과 성장, 지니와의 우정, 자파와의 갈등 등 이야기가 다채롭게 이루어져 있다. 물론, 자스민과의 사랑 이야기도 함께.

 

결국 ‘공주처럼’ 남았다

덧붙여서 자스민은 진취적인 공주라기에는 너무 불편해 보이는 ‘코르셋’ 꽉 조인 의상들을 입고 있다. 디즈니 측에서는 세상의 억압을 표현한 의상이라고는 하나… 그럼 술탄이 되고 나서는 옷이 조금이라도 바뀌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거기에다 여성이 사회로부터 받는 압박을 배우도 불편해하는 그런 옷으로 꼭 표현을 해야 했던 걸까. 이렇게 되면 영화를 보고 남는 몇 안 되는 감상은 ‘자스민 너무 예쁘다’ 같은 얘기들이다. 관객들이 먼저 기억하게 되는 건 여성 술탄이 된 자스민 자체가 아니라, 디즈니 공주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자스민의 ‘외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이런 디즈니의 안일한 변명은 화장품 회사와 진행한 콜라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제작자들은 그저 안전하게, 사람들이 자스민을 공주로 봐주길 바랐던 거다. 결국 자스민은 술탄이 아닌 공주로 남았다.

 

‘코르셋’ 꽉 조인 맥(M.A.C) 알라딘 컬렉션 ⓒ파우더룸 네이버 포스트

언제까지 적당하게 할래?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 그 욕심 많은 디즈니가 일부 남성들에게 욕먹어가며 옛날 동화들을 고쳐 나가고 있다. 이렇게 정신 차린 모습을 칭찬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데, 그렇다고 특별히 칭찬할 이유도 없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시대의 변화를 부지런히 좇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알라딘>은 진보라기보다는 디즈니의 뒤늦은 발버둥이다. 디즈니는 <캡틴 마블>처럼 새로운 영웅을 등장시키는 수고로움이 아닌 옛날이야기를 ‘적당히’ 고치는 꼼수를 택했다.고 사람들에게는 이 적당한 발버둥이 더 입맛에 맞았다. 그러나, ‘대충 페미니즘 노선 맞추고, 노래 하나 단독으로 넣어주고, 자스민 술탄 만들어 놨으니까 된 거 아니냐’는 식의 변명은 이제 뻔하다.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당연히 여성만의 이야기가 존재해야 한다. 우리의 파이를 늘리기 위해서는 겉만 번지르르한 캐릭터가 아니라 안이 꽉 찬 알맹이가 필요하다. 술탄에 만족하지 말자. 아니, 술탄이 아니어도 좋다. 좀 더 과하게 여성의 파이를 요구하자. 그래야 우리가 speechless 하길 바라는 세상에 소리칠 수 있다.

 

글. 채야채(chaeyachae@gmail.com)

특성이미지.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