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친구 A와 B가 있었다. 그리고 최근, 이들 중 누군가와 연락을 끊었다. 과연 나는 누구를 차단했을까?

 

A는 평소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수강하던 강의에서 자유주제 과제를 교수가 내주자 페미니즘에 관한 리포트를 작성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공감한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난겨울 연세대학교의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폐지 및 총여 관련 규정 파기와 후속 기구 신설안’ 투표 결과가 ‘찬성’임을 확인하고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대학의 소수자 인권 보호가 불명확해졌다며 말이다. 그는 총여가 필요한 이유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며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정의했다.

 

ⓒ 고함20

 

반면에 B는 나를 포함한 주변 친구들에게 각종 여성 혐오(이하 여혐) 발언을 남발했다. 불편함을 이유로 바지를 고집했던 내게 ‘넌 왜 다른 여자애들처럼 치마 안 입어?’라며 종종 질문했다. 이어서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지. 치마 사주면 입을 거야? 사줘?’라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여기서 그쳤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치마’ 다음에는 친구들과 나의 ‘살’이 그의 표적이 되었다. ‘돼지’부터 시작해 ‘살쪘다’, ‘굴러다니겠다’, ‘얼굴 터질 것 같다’까지. SNS에서든, 면전에서든 그는 우리를 그렇게 표현했다.

 

처음의 질문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보자.

과연 나는 이 둘 중 누구와 관계를 단절했을까?

 

 

사실 A와 B는 동일 인물이었다.

그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활발한 환경에서 대학을 다녔다. 전공 학문의 특성과 여성이 다수인 학과 덕분이리라. 학과의 높은 여성 성비는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유도했다. 그리고 젠더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학과목이 따로 개설되어 있을 만큼 전공 학문은 페미니즘과 연관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런 축복받은 환경에서 그가 얻은 것은 고작 화려한 언변을 뒷받침해줄 자기과시용 지식에 불과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선언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그는 간과하고 있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선언만으로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것. 진심으로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했다면 그는 정체화 이전에 스스로를 먼저 되돌아봤어야 했다. 하지만 철저히 실패했고 자신에게만은 무한히 관대했다.

 

그의 페미니즘은 타인을 비판하는 잣대로만 작용했다. 누군가를 저격한 날카로운 지적은 끊임없었지만, 그 잣대가 결코 자신에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그가 총여 존립 찬성의 목소리를 낼 동안에도 친구들과 나는 그로부터 ‘돼지’라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던 것처럼. 여성 혐오적 언행은 변함없었다. 그는 그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자신의 모습에 완전히 도취되었을 뿐이다. 여성 해방의 역사는 줄줄이 꿰지만 여혐 발언을 일삼는 ‘끔찍한 혼종’은 이렇게 탄생했다.

어쩌면 그에게 페미니즘은 여성주의 기류가 강한 학과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 가운데 하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여성들의 목숨을 내놓은 투쟁을 그런 식으로 가벼이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 사회의 그 누구도.

 

그러니 네가 부끄러움을 안다면, 이제 ‘페미니스트 코스프레 짓’은 그만두길.

 

 

글. 쩰리(foruosdir11111@naver.com)

특성이미지. ⓒ 애니메이션 <마징가Z>